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

 

성 경: [고전 2:6-1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 바울은 이미 지혜의 부당성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지혜를 언급한다. 바울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혜''온전한 자'들이 깨닫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온전한 자'(텔레이오이스)에 대해 혹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이(3:1)와 비교되어 영적인 이해에 있어서 성숙한 자를 가리킨다고 한다. (Morris).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그러나 본문의 문맥상, 구원받지 못한 자와 대조되는 구원받은 자들, 즉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단정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아이 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중생하지 못한 자,

 

즉 이 세상의 지혜 있는 자이다.

 

(1:20-23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따라서 십자가의 도를 지혜로 간주하는 자들은,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은 모든 믿는 자를 가리킨다.(Hodge, Mare).

 

바울은 본문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시사해준다.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 - '이 세상의'에는 보다 정확히는 1:20과 같이 '이 세대'를 뜻한다.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그리고 '관원'은 본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사람들'을 가리킨다.

혹자는 이 '관원'이 사단이나 악귀 등을 가리킨다고 한다.(Origen, Marcion)

 

그러나 이 견해는 타당성이 희박하다. 비록 바울이 이 단어를 사단의 개념으로 자주 사용하지만,

 

(8:3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모두 단수형을 사용하였다.

 

더욱이 행 3:17에서는 '관원들'이 무지(無知) 중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언급했고

 

(3: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본장 8절에서도 '이 세대의 관원'이 무지로 인해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언급한다.

 

또한 앞절에서 부터 계속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대조하여 사람의 지혜를 언급하므로 본절에서 갑자기 사단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관원'이란 '이방 세계나 유대 세계의 지도자 일반'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울은 본문에서도 자신이 전파하는 지혜는 세상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고전 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 '오직'은 바울이 언급하는 지혜가 바로 하나님의 지혜임을 가리킨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으며 그 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비밀'(뮈스테리오)이란 오랫동안 감취어져 있다가 드러난 것으로

 

(3: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신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비밀'은 인간이 전혀 포착할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연구해도 그 비밀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도 깨달을 수 없다.(Morris).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 '영광'은 백성들과 함께하신 구약의 영광스런 하나님을 회상해 보는 것과

 

(24: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40:34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14: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나눌 미래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것을 의미한다(Mare).

 

(21:10-11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22-23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결국 이 말은 구원으로 말미암는 모든 유익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뛰어난 모든 것과 복스러운 모든 것까지도 포함한다.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바울은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라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결국 본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라 할 수 있는 구속계획(球贖計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만세전에 이미 구상되었고, 복음을 통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알려진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만세전에 - 이 말은 문자적으로 '영원 전에'라는 의미로 시간이 발생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복음이 후대의 고안물(考案物)이 아니었음을 명백히 한다.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기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 '영광의'(독세스)라는 형용사는 대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사용되었고,

 

(7:2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외경 에녹서에서도 '영광의 주'가 하나님을 지시하였다. (Morris)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여주는 호칭인 '영광의 주'는 바울 서신에서는 본절에만 나타난다.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에게 적용할 수 있는 최고의 호칭을 사용하여, 십자가의 수치와 극명(克明)하게 대조를 보이고 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강조하는 이유는 7절에서 언급한대로 그분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이루실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Grosheide).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 본 구절의 인용 출처를 알아내기가 어렵다.

 

오리겐(Origen)과 그후 몇몇 주석가들은 지금은 분실된 '엘리야의 외경'이나 또는 '이사야의 승천'이라는 외경에서 인용했다고 했다.

그러나 바울이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에만 '기록된 바'라고 함으로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Lightfoot, Hodge).

 

혹자는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주님의 말씀을 인용했다고 하며 사 52:15;65:17등에서 인용했다고 하기도 한다.(Chrysostom, Hodge).

 

그러나 전체적으로 봐서 사 64:4을 대략적으로 언급한 듯 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는 말은 구약의 전체적인 사상을 일반적인 의미로 함축시킨 것같다.

 

한편 '예비하신'이라는 동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7절의 사상을 강조해 주고 있다.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 이 세상의 관원들이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깊은 지혜가 선지자와 사도들,

 

(3: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시되었다.

 

바울이 본절에서부터 16절까지 줄곧 '우리'라는 대명사를 주로 사용한 것은 계시가 바울뿐 아니라 모든 사도들에게 주어진 것임을 시사해준다.

 

 

[고전 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 본절은 인간의 지혜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의 영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적인 지혜와 진리를 이해하려면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본절에서 언급된 ''(프뉴마)은 하나님과 사람의 영을 모두 지칭하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실재적인 인격'을 가리킨다.(Mare).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 이는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알 수 있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대상이 다름아닌 그리스도인임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다.

 

본절에서의 '우리'는 바울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은 자들까지도 포함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본절은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은 목적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는 것임을 설명한다.

 

'은혜로 주신 것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사람에게 단번에 주시는 선물을 가리킨다.(Edwards).

 

본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의 깊음과 인간을 구원하시는 은혜를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것이 성령께서 추구하시는 궁극적인 목표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계시하시고, 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그 계시를 깨닫게 하신다.

 

다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인간 이성의 취약성(脆弱性)과 제한성 때문이다.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 '말하거니와'는 바울은 현재형을 사용하여 본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반복적으로 강조하고자 하고 있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 이 구절은 해석상 난제를 갖고 있다.

 

'신령한 것으로'(프뉴마티코이스)란 단어의 성()에 관한 문제이다.

 

본 구절의 번역은 다음 네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신령한 진리에 신령한 형식을 부여한다.'

(2) '신령한 진리를 신령한 진리로 비교한다.'

(3) '신령한 사람들에게 신령한 것을 해석해 준다.'

(4) '신령한 말로 신령한 진리를 설명하거나 표현한다.'

 

비록 이 네 가지 해석이 모두 타당성이 있기는 하지만, 네 번째 해석이 문맥에 가장 적절하다.

 

바울은 영적인 말 즉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 '육에 속한 사람''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빛과 진리를 받지 못하여 구원얻지 못한 자연인의 상태'를 가리킨다.

 

이들은 복음에 대한 이해가 저급한 수준에 있어서 감각적이고 이기적인 정신을 가지고 단조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 용어가 신약성경과 교부 문헌에서는 성령과 초자연적인 세계와는 대조적인 자연 세계의 생명을 가리키는 말로 종종 사용되었다.

 

흠정역(KJV)에서는 이를 '번성에 속한 사람'(the natural man, KJV)으로 번역했다.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 '미련하게'는 고대 헬라에서 신체적으로 둔하거나 장애가 있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신적인 우둔함을 의미한다.

 

거듭나지 않는 자연인은 모든 가치를 육체적 물질적 기준에서 평가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무익하고 무가치하다고 인식된다.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 '영적으로라야''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분변함이니라'는 법정 용어로서 진술을 듣기 전에 심문받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가 원래 '검사한다', '시험한다'는 의미를 가졌으며 나중에는 '판단하다', '평가하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바울은 육체에 속한 사람은 영적이 아님을 전제하고 성령의 일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이를 분별할 가치 기준도 가지지 못했다고 단언하고 있다.

 

 

[고전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 '육에 속한 사람'과 대조적으로 '신령한 자'는 분명한 가치 기준이 있어서 판단의 주체자가 될 수 있다.

 

'신령한 자''육에 속한 사람'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영에 속한 사람', '영적인 사람'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는 성령께서 내주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모든 가치 기준이 영적이므로 하나님께로 부터 온 계시(啓示)에 의존하여 판단한다. 그러므로 그의 판단은 정확하며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지 않는다.

 

 

[고전 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 본절이 앞절의 내용을 확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은 70인역(LXX)의 사 40:13을 인용한 것으로서

 

(40:13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긍정적인 질문 형식을 취하여 부정적인 답을 유도하는 수사법을 사용하였다.

, 주의 마음을 전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 바울은 앞 부분에서 인용한 구약의 표현 가운데 '주의 마음'과 관련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용어를 도입한다.

 

본절은 주께서 우리를 아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도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영적인 진리와 영적인 지혜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Mare).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모든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이 그리스도를 계시하여 깨닫게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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