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일 수요일

나 느부갓네살 왕이 이 꿈을 꾸었나니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 2

 

성 경: [4:11-18]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그 모양이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12)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

13) 내가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 가운데에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14) 그가 소리 질러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15)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어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에서 짐승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리라

16)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17)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18) 나 느부갓네살 왕이 이 꿈을 꾸었나니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 내 나라 모든 지혜자가 능히 내게 그 해석을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라.

 

 

. 느부갓네살은 자기 꿈을 상세히 서술한다.

 

1. 그는 숲 속의 모든 나무보다 빼어나게 무성하고 장엄한 나무를 보았다.

 

그 나무는 땅의 중앙에 있었다.

그것은 바벨론의 통치자 느부갓네살을 표현하기에 안성마춤이었다.

왜냐하면 바벨론은 당시 세계의 중앙에 있었던 때문이다.

 

모든 인방 군주를 압도하는 그의 위엄과 혁혁함은

심히 높은 이 나무의 높이로 상징되었다.

그 나무는 하늘에 닿았다.

그는 자기 주변 사람들보다 더 높았고 따라서 신적 존귀를 받으려고 의도하였다.

아니, 그는 주변 사람들을 힘으로 압도했다.

 

그가 거느린 강력한 군대는 파죽지세로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휩쓸었다.

그러므로 그의 막강한 군대는 이 나무의 견고함으로 표현되고 있다.

점점 커지는 그의 유세는 열방의 화제꺼리가 되고

만인의 시선을 한 몸에 모았기에

(어떤 이는 시기의 눈으로 봤고 어떤 이는 경이에 찬 시선을 보냈을 것이다).

 

이 나무의 모습은 땅 끝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이 나무는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갖고 있었다.

 

(12절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

 

그 아름다운 잎사귀는 느부갓네살의 화려하고 웅장한 긍정을 의미한다.

그의 궁정은 나그네들의 경탄과 그 나라 백성의 영광이었던 것이다.

 

이 나무는 보기에 장관을 이루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용도도 매우 컸다.

 

(1) 보호에 이용된다.

 

그 가지는 짐승과 새들의 피난처가 된다.

통치자는 그 백성에게 더위와 풍우를 피하게 하는 피난처가 되어야 하며,

 

(4:6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그들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자신이 위험을 당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지 궁리해야 한다.

 

가시나무는 자기를 나무들 위에 군림하게 한다면

그들더러 와서 자기 그늘에 피하게 하겠다고 청한다.

 

(9: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충성을 유도하는 것은 곧 보호이다.

세상의 군왕은 그 백성에게 마치 큰 나무의 그늘과 같다.

 

(32: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아니 바위는 견고하긴 하나

차갑기 때문에 그들은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인다고 한다.

 

(17: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그 날개 아래는 안전한 뿐만 아니라 따뜻하기도 하다.

 

(2) 양식을 얻는 데도 사용된다.

 

앗수르인은 백향목으로 비유되었다.

 

(31:6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 거하였었느니라).

 

백향목은 그늘만 제공할 뿐이다. 그러나 본문의 나무는 열매도 많이 가지고 있다.

 

"그 열매는 많아서 만인의 식물이 될 만하고 무릇 혈기있는 자는 거기서 식물을 얻었다".

 

이 강대한 나라는 광대했을 뿐만 아니라 선을 베풀기도 했을 것 같다.

느부갓네살은 자기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지 않고 부유하게 만들었으며

자기 힘과 세력을 이용하여 부와 교역을 가져왔다.

 

권세를 행하는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는다.

 

(2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권세를 유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참으로 은혜를 베푸는 은인이 되는 것이다.

 

권세자들이 자신의 부와 권력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것은 곧 많은 사람의 의지가 되고 그들을 부양시키는 것이다.

재물이 많아지면 먹는 자도 많아진다.

 

2. 느부갓네살은 이 나무의 파멸에 대해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그것을 완전히 기억했다가 여기에 술회하고 있는데

그는 아마 들은 대로 축어적인 서술을 하는 것이리라.

 

이 판결은 천사가 전했다.

그는 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이 판결을 큰소리로 외치는 것을 들었다.

 

이 천사는 여기서 순찰자 또는 감시자라고 불리우는데

그것은 천사들이 그 본질상 영이기에 졸지도 자지도 않을뿐더러

그 직분상 영들을 섬기며 끊임없이 보살피고 위대하신 주인을 섬길

온갖 기회를 살피기도 하는 때문이다.

 

그들은 순찰자로서 하나님의 경외자들 주위에

진을 치고 그들을 구출하여 자기 수중에 굳게 붙잡는다.

 

이 천사는 사자였으며 거룩한 자였다.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집에 합당하다.

 

(93:5 여호와여 주의 증거하심이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고용되어 그를 수종하는 자는 거룩한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 성품의 순결과 정직성을 보존하여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

 

여기서 이 나무에 선고된 파멸을 검토해 보자.

 

(1) 나무를 벌채하라는 명령이 나온다.

 

(14절 그가 소리 질러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도끼가 이 나무뿌리에 놓여 있다.

아무리 높고 아무리 견고한 나무라도 멸망의 날이 올 때에는 안전할 수가 없다.

 

그 나무를 피난처로 삼던 짐승들과 새들은 쫓겨나 흩어지게 된다.

나뭇가지는 절단되고 잎은 우수수 떨어지며 열매는 흩어진다.

 

세상의 번영은 절정기에라도 불확실한 것임을 주목하자.

극히 화려한 가운데서 최대의 권세를 과시하던 자들이

자기가 신뢰하고 자랑하던 모든 것을 박탈당하는 일은 비일비재이다.

 

섭리가 바뀌면 걸출하던 자들이 포로가 되고

자기 분수 이상으로 풍족하게 살던 자들이 궁핍하게 되며,

한때 식객과 간청자를 많이 두던 자들이 남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

 

그러나 여호와의 집에 심겨 그에게 열매를 맺는

의로운 나무는 결코 벌목되거나 잎이 시들지 않을 것이다.

 

(92:13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2) 뿌리는 보존되도록 하라는 배려가 베풀어진다.

 

(15절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어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에서 짐승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리라).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어 온갖 일기에 노출되게 하리라.

거기서 돌보아 주는 자없이 풀 속에 파묻혀 잇게 하라.

이전에는 그 가지 아래 피신하던 짐승들이

이제는 그 그루터기 위에서 휴식하게 하리라.

 

그러나 그것이 갈가리 찢기지 않고 오물처럼 짓밟히지 않으며

그것이 아직 더 좋은 날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철과 놋줄로 테두리를 돌려 견고하게 하리라".

 

심판 중의 하나님께서 자비를 기억하고 계시다는 데 주목하자.

그 형편이 극히 사면초가인 것처럼 보이는 고독자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들을 예비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나무는 소망이 있으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며 물 기운에 움이 돋는다.

 

(14:7-9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9)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3) 천사는 직접 그 의미를 느부갓네살에게 설명한다.

 

(16절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이 나무가 뜻하는 인물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는 존귀와 국가와 인간의 존엄을 박탈당하며

이성의 사용을 빼앗겨 짐승처럼 일곱 때를 지나게 되리라고 선고받는다.

 

"그는 짐승의 마음을 받으리라".

 

이것은 현세적 심판 중에서 가장 슬프고 쓰라린 심판이다.

이것은 차라리 죽은 것보다 천 배나 더 나쁘다.

비록 당사자는 거의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다른 어느 누구보다 더 두려운 저주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과하시려는 외적 고난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그 고난을 끈기있게 참으며 이성의 사용과 양심의 평화를

계속 허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자기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처럼 높이는 교만한 폭군들은

인간의 마음을 박탈당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마땅하다.

 

(28:22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시돈아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가운데서 내 영광이 나타나리라 하셨다 하라 내가 그 가운데서 국문을 행하여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지라)

(4) 이 일은 사실성이 확증되고 있다.

 

(17절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심판관으로서 이 일을 결정하셨다.

그는 이 칙령에 서명을 하셨다.

그의 영원하신 계획에 준하여 명령이 발해졌다.

 

[1] 하늘의 천사들이 이를 입증하고 시인하고 갈채를 보냄으로써 동의하였다.

 

이 일은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결정하시고 행하시는 어떤 일에 있어서도

천사의 권면이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계획의 실현에 천사들의 사역을 이용하시듯이

때로는 사람들 모양으로 마치 천사들과 상의라도 하시는 것처럼 묘사된다.

 

"내가 누구를 보낼꼬" (6:8).

"누가 아합을 꾀겠느냐?" (왕상 22:20)

 

마찬가지로 본문은 이 판결의 엄숙성을 의미한다.

 

왕의 어명 또는 비답은 este me ipso - 즉 집의 앞에서라는 말로 되어 있지만,

헌장 따위는

"이름을 부서(副署)한 우리들 앞에서" 란 말로 되어 있다.

 

느부갓네살의 운명도 그와 같이 순찰자들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2] 지상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이 일을 탄원했다.

 

"이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다."

 

느부갓네살의 무거운 멍에 아래서 신음하던

하나님의 고난받던 백성들은 하나님께 복수를 해 주시도록 부르짖었다.

 

그들은 요청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런 대답을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압제받는 자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는 그가 들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22:27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아합 때에도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대해 탄원하자

그의 말대로 우로가 없으리라는 판결이 내려 졌던 것이다.

 

(왕상 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5) 그 의도가 선언되고 있다.

 

이 나무의 벌채 명령이 하달된 것은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인생으로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심판이 집행되어야 하는 것은

생각과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실제로 계시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이다.

 

그 하나님은 세상을 지배하시는 신이시다.

그는 세상 속에 자기 나라를 소유하고 계시며

그 나라의 사무를 처리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대해서 소유하는 바로 그 주권으로

인간 나라를 다스리기도 하시며 자기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신다.

 

높이는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75:6-7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하나님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던 자를 권좌에까지 높이시며

야망에 불타는 자들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신다.

때때로 그는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고

그들로 자기 목적에 봉사시키신다.

 

그는 양떼 속에 있는 다윗을 세우셨듯이 보 잘 것 없는 자들을 세우신다.

그는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방백들과 함께 세우신다.

 

(113:7-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8)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

 

아니, 때로는 악한 자를 세우셔서 패역한 백성에게 채찍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행하실 수 있으시며

행하실지도 모르며

때로는 이렇게 행하시면서 자기 일을 조금도 설명치 않으신다.

 

느부갓네살을 낮추심은 인생들로 이 일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응보의 세계 곧 영들의 세계로 이미 가 있는 자들은 이것을 안다.

죽은 자는 지극히 높으신 자가 다스리신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산 자는 너무 늦기전에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해

이것들을 알게 되어야 하며 명심해야만 한다.

 

이와 같이 느부갓네살은 자기가 보고들은 꿈을

완전히 그리고 신실하게 말한 뒤 다니엘에게 그 해석을 요구한다.

 

그는 다니엘 외에 이 일을 해석할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니엘이라면 이 일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거룩한 신들 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니라".

 

거룩한 하나님이란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적합한 칭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을 안에 두고 있는 자들에게는 많은 것이 기대된다.

 

느부갓네살이 그 나무가 바로 자신의 파멸을

뜻한다고 의식했는지 아닌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그는 허영심에 차서 그것이 자기와 적수 관계에 있는

다른 군주의 몰락을 의미한다고 안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꿈에서 받은 것이 자기 적수의 파멸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즐거운 전망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여튼 그것이 자기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간에 그는 그 꿈의 의미를

알고 싶어 안달이 났으며 다니엘에게 그 꿈의 해석을 의존하고 있다.

 

하나님이 전체적 심판의 경고를 주실 때

우리는 그의 의사를 이해하고 싶어해야 하며

성에서 부르짖는 주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해야 한다.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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