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사살 앞에 선 다니엘
(단 5:10-17) 왕비가 왕과 그 귀족들의 말로 말미암아 잔치하는 궁에 들어왔더니 이에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의 생각을 번민하게 하지 말며 얼굴빛을 변할 것도 아니니이다
11)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니이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12)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하는 이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 수 있었나이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13)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받아 왕의 앞에 나오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되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14)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15) 지금 여러 지혜자와 술객을 내 앞에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다 그 해석을 내게 보이지 못하였느니라
16)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푼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면 네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걸어 주어 너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
17)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예물은 왕이 친히 가지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뢰리이다.
Ⅰ. 다니엘에 관한 정보가 태후에 의해서 왕에게 전해진다.
이 태후는 아마도 에윌므로닥의 미망인이었다고 추측된다.
그리고 이 태후는 헤로도터스가 비상한 슬기의 소유자로 언급한 유명한
니토크리스(Nitoctis)로 추측된다.
그녀는 왕의 비빈들과는 달리 잔치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2절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흥청거리는 밤을 보낸다는 것은 그녀의 나이나 위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과 귀인들을 경악시킨 소식이 그녀에게까지 전해지자,
그녀는 몸소 잔치 자리로 나왔다.
그녀는 바벨론 박사들의 무능력에 절망하지 말라고 왕에게 간청하였다.
즉 그의 왕국에는 한 사람이 있어 그의 부왕의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 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며 그가 왕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11-12절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니이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12)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하는 이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풀 수 있었나이다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태후는 스스로 그 글을 읽을 수는 없었으나
왕에게 해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알려 주었다.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를 맨 먼저 불렀어야 옳았나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더 생각해 보자.
1. 태후는 먼저 다니엘의 고상한 성격에 대해서 말한다.
즉 그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들어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인간적인 것 이상의 것이 들어있다.
그는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영뿐만 아니라
신의 영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잠 20:27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태후는 자기 나라 말과 종교에 따라서
어떤 인간에게도 이 이상의 찬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다니엘을 다음과 같은 사람으로 칭찬한다.
(1) 놀라우리만치 훌륭한 두뇌의 소유자.
"명철과 총명과 지혜 즉 신들의 지혜와 같은 그에게서 발견되었다."
그는 은밀한 일들을 통찰하고 장래 일을 예견하였으므로
그가 신적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는 꿈을 해석하고, 불가사의한 일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다른 모든 박사들을 능가하는 지혜와 총명을 가졌었다.
그는 수수께끼와 어려운 문장을 해명하고 매듭과 의심을 풀었다.
솔로몬도 이런 종류의 놀랄 만한 지혜를 가졌었다.
그러나 이번 일에 대해서 만큼은
다니엘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지시를 많이 받았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숨겨진 지혜의 보고와 비교될 지혜가 어디 있겠는가?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자가 여기 있다.
(2) 놀라우리만치 선한 마음의 소유자.
다니엘의 마음은 훌륭하였다(한글 개역:민첩하였다).
이것은 그의 지혜와 지식을 더욱 빛나게 했고
그런 은사를 받을 만한 자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보시기에 선량한 사람에게
그의 지혜와 지식과 기쁨을 주시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겸손하고 거룩하고.
하늘의 영을 가진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선함을 갈망하는 헌신적인 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훌륭한 영이었다.
2. 태후는 느부갓네살왕이 다니엘에 대해 품었던 존경심을 묘사한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왕이 그를 술객들의 어른으로 삼으셨나이다".
아마도 벨사살왕은 교만심에서 때때로 느부갓네살왕을 가볍게 말하였고,
그의 정치와 통치 방법, 그리고 그가 선택한 대신들을 경시하며
느부갓네살보다 자기가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었으리라.
그러므로 태후는 그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말한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왕이 그에게 바벨론의 박사들을 지배하게 하였고, 그의 신의 이름을 따라서 그의 이름을 벨드사살이라고 하였나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의 유대인 이름을 계속 사용함으로써
(그 이름은 그가 그의 종교에 대한 신실한 수호로 하여금 표정으로 지킬 것을 결심한 것이었다)
바벨론의 이름을 못쓰게 하였다.
오직 태후만이 그 이름을 기억하였을 뿐이었다.
겸손한 사람들의 선한 봉사를 기억하여
재생시킨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사실을 주목하자.
3. 태후가 다니엘에 대해서 취했던 태도.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드리리아다."
이 말에 의하면 다니엘이 궁정에서 잊혀져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벨사살왕은 다니엘을 잘 몰랐다.
그는 그런 보물이 자기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새로운 왕과 함께 새로운 대신들이 들어섰고 늙은 대신들은 모두 물러났기 때문이다.
아주 쓸모가 있으면서도 오래도록 미천하게 파묻혀 지내며
혁혁한 봉사를 했으면서도 세인의 주의를 끌지 못하고
간과당한 채 살아가는 자들은 부지기수로 많다는 데 주목하자.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서 봉사한 사람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다니엘은 혼자 살았고,
다시 어떤 기회가 그에게 주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궁정 가까이에서 살았고,
만일 어떤 좋은 직무를 행할 기회만 있다면
언제나 불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왕국의 멸망 직전에야 태후를 통해 그를 궁전으로 다시 불러들이도록 명령하였다.
Ⅱ. 다니엘은 왕 앞에서 소개되고 왕은 다니엘에게 그 글을 읽고 해석하기를 요구한다.
"다니엘은 왕 앞에 부름을 입어 나왔다."
(13절 이에 다니엘이 부름을 받아 왕의 앞에 나오매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되 네가 나의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다니엘은 이제 90여세 가까이 늙었다.
그래서 그는 나이와 명예,
그리고 이전의 관직 때문에라도 왕을 자유로이 알현할 권리가 있었을 것이다.
1. 벨사살왕은 거만한 태도로 묻는다.
"네가 우리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다니엘이 유대인 포로였기에 벨사살은 할 수만 있다면
일개 유대 포로에게 신세지기가 싫었을 것이다.
2. 벨사살왕은 그가 다니엘에 대한 찬사를 들었다고 말한다.
(14절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즉 그는 다니엘이 신들의 영을 가지고 있다는 평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찬사를 받을 만한 존재인지 아닌지 시험하기 위해 불렀다고 말한다.
3. 벨사살완은 바벨론의 모든 박사가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들은 이 글을 해석은커녕 읽지도 못했다.
(16절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푼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면 네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걸어 주어 너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
4. 벨사살완은 다니엘에게 바벨론 박사들에게도 약속했던 것과 같은 보상을 약속한다.
(16절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푼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면 네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걸어 주어 너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
지금이나 느부갓네살 시대나 술객들이 그들의 신용을 구축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쩔쩔맸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만일 그들 술객들이 그 꿈과 글의 의미는 이러이러하다고 자신있게 말한다면
누가 그들을 반박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전혀 말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태어날 때 이방의 신탁이 벙어리모양 침묵한 것과 마찬가지다.
Ⅲ. 다니엘의 해석.
그러나 그 해석은 왕의 불안을 해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두려움을 더 증가시켰다고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다니엘은 이제 많이 늙었고 벨사살은 젊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 때보다 더욱 능수능란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책망하는 데 있어서,
특히 권세자를 책망하는 데 있어서는 모든 환경을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훈계의 책망은 생명의 길인 때문이다.
(잠 10:17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1. 다니엘은 그들을 경악케 했던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보여줄 것을 약속한다.
(17절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예물은 왕이 친히 가지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뢰리이다).
다니엘은 왕이 그에게 제의한 보상을 무시한다.
왜냐하면 그는 돈을 위해 점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막 3: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느부갓네살의 사례금을 주었을 때 다니엘은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사례를 흥정하거나 그에게 약속받은 명예를 고려해서
왕에게 그 글을 읽어 준다는 것은 경시하였다.
"왕의 예물은 왕이 스스로 취하소서. 그것은 왕의 것이 된다고해도 얼마 가지 않을 것입니다. 왕의 상급은 가장 갖기를 원하는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나는 그런 것을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그 나라가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것을 보기에 왕의 선물과 상금을 무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보상과 선물을 경멸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의 마지막 때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으로 마음을 두어야 할 좋은 선물이 있다.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쓰레기와 잡동사니 같은 것에 비해서
훨씬 좋은 하나님의 선물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의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봉사를 해야 할 것이다.
2.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경고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그의 아버지인 느부갓네살왕에 대한 하나님의 치리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인식시킨다.
(18-21절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19)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20)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21) 사람 중에서 쫓겨나서 그의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살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에 이르렀나이다).
그것은 미사여구나 유흥을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라
그 글을 해석하기 위한 필연적인 전제였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신 일을 검토하는 것은
하나님의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시고 계신가를 바르게 깨닫게 할 것이다.
*메튜헨리의 주해를 참조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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