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5일 수요일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벨사살 앞에 선 다니엘 2

 

(5:18-29)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19)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20)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21) 사람 중에서 쫓겨나서 그의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살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에 이르렀나이다

22)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23)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24)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26)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29)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1)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베풀어졌던 하나님의 섭리를 서술한다.

 

(18-19절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19)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어떤 이방 왕이 가질 수 있었던 것 이상의 영광과 명예와 권세와 나라를

느부갓네살은 소유했었다.

느부갓네살왕은 그의 영광을 그의 비범한 행동과 용기에 의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성공을 그 자신의 재주에게 돌렸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에게 광활한 왕국과 권세와 영광을 주신 분은

왕의 주요, 신중의 신이요, 가장 높은 하나님이었음을 말했다.

 

어떤 영광이 외부로부터 주어질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주목하라.

 

"나의 힘과 내 손의 능력이 이런 부와 출세를 나에게 주었다" 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간에게 능력을 주셔서 부를 얻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주셨던 힘은 이제 여기서

능력과 권위라는 면에서 크게 존경할 만한 것으로 서술된다.

 

[1] 그의 능력은 아주 강력해서 불가항력적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권세였다. 그는 소향무적이었다.

그는 여러 나라들을 위협함으로써 진압하고 지배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모든 백성들이 그 앞에서 두려워 떨었기 때문이었다.

 

힘은 무엇이며, 그 힘의 두려움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것은 야수의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 세계에서도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세계의 야만적인 일부분이다.

 

[2] 그의 권위는 절대적인 것이어서 제약받지 않았다.

 

그에게 갑자기 주어진 권세는 적대자가 없었고,

절대적이며 전제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와 함께 입법상이든 행정상이든 그 권세를 나누어 갖지 못했다.

 

징벌하는 데 있어서도 그는 임의로 정죄하거나 방면하거나 하였다.

그는 꼭 같이 무죄하거나 꼭 같이 죄있는 자라도

하나는 임의로 살리며 다른 한 사람은 임의로 죽였다.

 

jus vitae et necis - 즉 생사여탈의 권세는 전적으로 그의 손에 있었다.

 

상을 분배하는 데 있어서도

그는 임의로 승진을 허락하거나 거절하였다.

그는 순전히 자기 기분에 따라 보상을 행했다.

 

"그는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다".

 

그러나 그것은 ex mero motu - 즉 전부 자기의 기분에서 나오며,

stat pro ratione voluntas - 즉 그의 뜻은 합리적인 것을 나타낸다.

 

그런 것들은 동방 제국들의

국가체제였으며, 그들의 왕의 태도였다.

 

(2) 다니엘은 벨사살왕 앞에 느부갓네살왕이 범한 죄를 열거한다.

 

[1] 느부갓네살왕은 그의 아랫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하였고,

점점 더 전제적으로 억압하였다.

그는 권력을 남용하였고, 이성과 평등으로가 아니라

열정과 기분에 의해서 행동하였다.

그는 종종 무죄한 자를 정죄하고 유죄한 자를 방면했으니

이런 것은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이었다.

그는 공로있는 사람들을 퇴장시키고

가치없는 사람들을 승진시킴으로써 그래서 국가에 해를 끼치게 하였다.

 

절대 권력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대단히 어렵고 희귀한 일이지만,

그 권세를 악하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주목하자.

 

캄덴(camden)의 기랄두스(Giraldus)라는 시()에는

영국의 헨리 2세에 대한 진귀한 예를 말한다.

 

나는 똑 같이 해로운 일을 행할 수 있었던 권세를 가진

그에 대해서 아무도 악의를 갖지 않았다고 기쁘게 말할 수 있다.

 

-Glorior hoc vno, quvd nunquam vidimus unum,

Nec potuisse magis, nec nocuiss eminus-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2]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무례하게 행동하였고, 점차 교만해지고 강퍅하여졌다.

 

(20절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그의 뜻이 높아졌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그의 죄와 타락이 시작되었다.

 

그의 마음은 교만으로 강퍅하여졌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과 명령에 대해서도 강퍅했다.

그는 고집이 세었고 완고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회초리도 그에게 계속적인 인상을 못했다.

 

교만은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죄이며,

회개와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큰 죄임을 주목하자.

 

(3)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왕의 교만과 완고함으로 초래된 하나님의 심판을 회상시킨다.

 

어떻게 그가 그의 이성을 빼앗기고 왕위가 폐한 바 되었으며

 

(20절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사람들 가운데서 쫓겨나 들나귀와 함께 거하게 되었는지를 회상시킨다.

 

(21절 사람 중에서 쫓겨나서 그의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살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에 이르렀나이다).

 

이성의 규칙에 의해서 백성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던 그는

그 자신을 지배하기에 충분한 이성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인간이 비이성적이 되고 이성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이성을 박탈하시며,

인간이 권세로 억압하고, 권세를 악하게 사용할 때,

하나님은 권세를 빼앗는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느부갓네살왕은 그가 종교의 근본 원칙,

즉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지배하신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짐승처럼 살았다.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것은

이성에 의한다기 보다는 신앙에 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열등한 피조물들의 주인이 되는 것보다는

위대한 창조주의 백성이 되는 것이 훨씬 더 명예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왕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국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하며, 또 알게 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하나의 impoerium in imperio - 즉 제국 안의 제국이다.

 

그는 자기가 원하시는 자면 누구든지 통치자로 세우신다.

그는 상속자들을 만들 듯 군주들도 만든다.

 

3.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니엘은, 벨사살왕에 대한 탄핵을 한다.

 

다니엘은 손가락이 분벽에 쓴 글을 읽기 전에 벨사살의 죄를 그에게 폭로한다.

 

다니엘이 비난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벨사살왕이 그의 아버지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심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22절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였소."

 

만일 우리들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지 않는다면,

그의 섭리와 교훈에 동의하는 것이 오히려 커다란 모욕이 된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반대로 위대한 사람들에게서 그는 그들의 마음이 겸손해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특히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심판 받았는지를 알고 나서도

여전히 완고하고 강퍅하다는 것은

우리 마음의 교만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임에 주목해야 한다.

 

만일 자녀들이 자기 부모의 사악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고

그 결과가 얼마나 유해하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서도

부모의 사악한 전철을 밟는다면

그것은 자녀들의 죄를 보다 더 가증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교만하지 않는가?

 

(2) 벨사살왕은 그의 아버지 느부갓네살왕보다

더 뻔뻔스럽게 하나님을 모독하였다는 것이다.

 

(23절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적의 포위 중에 있으면서 이렇게 야연을 베푼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당신은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殿)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뿐만 아니라

마치 우상들이 보고, 듣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보다 더 우세한 것처럼,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 ,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였나이다".

 

계속해서 죄를 지으려고 결심한 죄인들은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신을" 좋아한다.

 

그것은 그들이 죄를 감추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비록 그들이 선택한 신일지라도,

그 앞에서는 모든 감추인 것이 드러나게 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받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3) 그는 하나님의 창조와 보호의 목적에 부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책망이다.

우리는 여기에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를 숙고해보자.

 

[1] 창조주와 보호자의 소유주와 시혜(施惠),

그리고 지배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존.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의 호흡이 최초로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손 안에서 여전히 우리는 호흡하고 있다.

 

우리의 생명 속에 영혼을 관장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만일 그가 우리의 호흡을 거두어 가시면 우리는 죽는다.

 

우리의 시간도 그분의의 손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의 척도가 되는 우리의 호흡도 그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존재하고 활동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살고,

하나님에게 의지하여 산다.

하나님 없이 우리는 살 수 없다.

 

인간의 길은 인간 자신 안에 있지 않다.

또한 인간의 명령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모두의 길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심장은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심장은 비록 왕일지라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2]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그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헌신해야 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를 우리 본분으로 삼아야 한다.

 

[3] 이런 의무에 있어서의 우리들의 태만함.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그르쳤기 때문이다.

이것은 벨사살왕에 대한 고발이다.

그것은 다른 입증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잔치의 악명 높은 증거로 명백히 드러났고

그 자신의 양심도 무죄를 주장하지 못할 정도였다.

 

4. 다니엘은 벽에 쓰인 글자를 읽는다.

 

"당신이 거룩한 것들을 짓밟을 만치 불경건의 극치에 이르렀을 때

그리고 신성모독적인 우상 숭배의 축제에 흠뻑젖어 있었을 때에

당신이 감히 모독한 하나님께로부터 보냄받은 손가락이 분벽위에 글을 썼나이다", 라고

다니엘은 말한다.

 

(24절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당신의 죄를 기록하시며, 당신이 지은 죄를 받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13:26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

 

죄인들의 죄가 하나님의 전지(全知)의 책에 쓰여지는 것처럼,

죄인들의 운명은 하나님의 율법책에 쓰여진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그리고 그 책들이 펼쳐질 때가 가까이 오고 있으며,

그들 죄인들은 그 책들에 의해서 심판받게 될 것이다.

 

그 벽에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라고 쓰여 있었다.

 

(25절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글의 의미는 "그가 세셨고 그가 저울질하셨고 그들은 나눈다" 는 것이다.

 

갈데아의 박사들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 글에 나타난 "" 분이 누구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1) 메네.

 

이 말은 반복된다. 이 말은 히브리 사람들이나 갈대아 사람들에게 모두 "그가 세어서 끝나게 했다'는 뜻이다.

 

다니엘도 그렇게 해석한다.

 

(26절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하나님께서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끝나게 하셨다.

하나님이 이 나라의 존속 연 월일을 계수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계수되었다. 이제 그 기간은 종료 되었다.

이제 네 나라는 항복하지 않을 수 없다. 네 나라는 여기서 끝이다".

 

여기에 바벨론 왕국의 종말이 나타난다.

 

(2) 데겔.

 

이 말은 갈대아 사람들에 의하면 "너는 저울질 받았다'는 뜻이며,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너는 너무 가볍다" 라는 뜻을 나타낸다.

 

왕과 그의 행동들은 조금도 틀림없이 저울질 당했다.

하나님은 마치 금세공(金細工)인이

자기가 극히 정밀한 저울로 단 금의 무게를 아는 것처럼

아주 정밀하게 그의 참된 성격을 완전히 아셨다.

 

하나님은 맨 먼저 그의 행동을 숙고하시고 그 경우의 공과를 참작하신 뒤에야 심판하신다.

 

"그러나 너는 부족함이 보였다. 너는 그런 신뢰를 받을 만한 가치도 없다.

너는 헛되고 가볍고 공허한 인간이다.

너는 무게도 없고 사려도 깊지 못한 사람으로 드러난 것이다 ".

 

(3) 우바르신,

 

이것은 바르신, 혹은 베레스로 번역되어야 한다.

히브리어에 있어서 바르신은 바사인들을 의미한다.

갈대아 사람들에게 있어서 바레신은 "나눈다" 는 뜻을 가진다.

 

다니엘은 이양자의 의미를 서로 결합시킨다.

 

(28절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데와 바사 사람들에게 나뉠 전리품으로 준바 되었다.".

 

이제 이것은 죄인들의 파멸에도 적용될 수 있다.

메네, 데겔, 베레스는 곧 바로 죽음과 심판과 지옥으로 상징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서 죄인들의 날들은 세임을 당하고 끝날 것이다.

죽음 후의 심판에서 그들은 저울질당하여 그들의 부족함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심판 후에 죄인은 조각조작으로 잘려서

악마와 그 사자들에게 먹이로 준 바가 될 것이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충고와 권면을 했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회개하도록 충고하거나 격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명령은 발했고 벨사살에게는

회개할 여유가 허용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벨사살왕이 절망적인 자기 형편을 듣자

다니엘에게 화를 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의 이성적인 양심에 의해서 죄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 사실에 대하여 반대할 수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벨사살왕은 다니엘에게 약속한 보상을 주었다.

 

"다니엘에게 자주옷을 입히게 하여 금사슬로 그의 목에 드리우게 하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았다".

 

(29절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왜냐하면 비록 그 글에 대한 해석이 왕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지라도

그것은 다니엘의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진 않으면서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크게 존중하는 자들은 적지 않다는 데 주목하자.

 

다니엘은 이런 칭호들과 명예를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그것을 거절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왕의 선한의지의 기념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다니엘이 미소를 지으며 이 하사품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칭호와 관작이 수여자와 함께

곧 사라지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밤새 나왔다가 밤새 사라진 요나의 박넝쿨과 같았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어리석게도 이런 것을 크게 기뻐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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