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5일 토요일

  

불신의 결과

 

바울의 부활론(3)

고린도전서 151-58

 

 

15:12-19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개역한글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분으로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너희 중 사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 있음은 어찌함인가?

13) 만약 사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이다.

14) 그리스도 만약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들의 전도는 헛되다. 너희의 신앙도 헛되다.

15) 또 우리는 하나님 위해 위증하는 자로 될 것이다. 그것은 만약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다시 살아나게 하지 않았을 것인데 우리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그는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했기 때문이다.

16) 만약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 없다면 그리스도도 또한 다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17) 그리고 만약 그리스도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너희의 신앙은 헛되다. 너희는 아직 죄 중에 있다.

18) 또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는 이미 멸망했을 것이다.

19) 우리들도 이 세상에 있어서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바랄 것인가? 우리들은 모든 사람 가운데서도 가장 불쌍히 여길 자이다(일본어성경).

 

 

부활 부정의 결과는 여하할까?

전도의 무효, 신앙의 파괴, 사도들 품성의 훼손, 사자의 절망 이것이다.

 

만약 사자의 부활 없으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허위인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이 허위였다면 사도의 전도는 허위의 전도였다.

 

부활은 복음의 실체이다.

이것을 복음이라 칭하는 것은 여기에 이 대사실과 대희망이 함께 하는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도덕의 창도 아니다. 신철학의 선언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생획득의 권리의 부여이다.

 

실체를 갖추지 않은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 몸을 예비해 두셨나이다](히브리서10:5)라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자는 부활은 없다고 한다. 이는 복음에서 그 실체를 제거해 버리는 일이다. 부활을 무시하는 복음 전파에 종사하는 것은 이는 주는데 실물 없이 자선의 선전에 종사하는 유가 아니랴?(14).

 

부활 없는 전도는 헛되다.

부활 없는 신앙도 또 헛되지 않을 수 없다.

부활의 희망 없는 신앙은 공리의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

 

순도덕이라 하여 그 이름은 매우 아름다운 것 같지만 그러나 능 없고, 생 없는 신앙이다. 참 종교의 귀함은 그것이 고귀하기 때문뿐이 아니고,

또한 그 힘(능력) 강하기 때문이다.

 

부활의 희망을 삭제하면 그리스도교는 무용의 종교로 화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만약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들의 전도는 헛되다. 너희의 신앙도 헛되다.(14).

사도란,

 

그리스도의 다시 살아나신 일의 증인의 별명이다(사도행전1:22).

 

그런데 지금 부활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도는 위증자인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들이 창도해 마지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 참조 : (사도행전 26: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위증자!

너는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은 십계명의 하나가 아닌가?

 

그런데 사도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하니 만일 부활이 부정되는 때면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위증자로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서야만 하는 것이다. 부활이 부정되는 때의 결과란 얼마나 두려운 일이랴.

 

우리는 하나님 위해 위증하는 자로 될 것이다. 그것은 만약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다시 살아나게 하지 않았을 것인데 우리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그는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했기 때문이다.(15).

 

사람 혹은 말하리라.

이 경우에 있어서의 사도의 위증은 위증인줄 모르고서 한 위증이매(사실은 위증이 아닌데도 부활 없다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 말대로라면 위증이 되는 것이다. 역자).

 

크게 문책될 죄는 아니라고 그것 어쩌면 그러리라.

하지만(부활이 없는 것일 때면) 허위를 기초로 하여 많은 희망을 사람에게 주고 거짓 구주를 세상에 전한 죄는 결코 면할 수 없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소사라고 한다면 그만이다.

하지만 영원한 운명을 걸고서 하는 것이 아니면 믿을 수 없는 이 종교로서 허위 미신위에 선 것이라고 할 것인가?

그 전파자의 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미신의 죄는 사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허위의 결과는 의연히 남는다.

 

그리고 사도는 허위를 전하여 이에 의해 그들이 호르게 한 해독의 죄책에서만 면할 수가 없다.

 

부활 부정의 결과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부인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속죄는 공언이 아니다.

죄를 속량 받는 다는 것은 죄를 없이함을 받는 일로서 그 결과는 죽음에서 면하는 일이다.

 

부활 없는 속죄는 무효의 속죄이다. 이름뿐이고 실없는 속죄이다.

부활이 없다고 하면 속죄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속죄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없다는 것과 같다.

 

부활을 부정할 때 그리스도교는 믿을 것 없는 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리스도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너희의 신앙은 헛되다. 너희는 아직 죄 중에 있다.(17)

 

만약 부활이 없다고 할 것인가?

 

세상에 가련한 자로서 그리스도 신자 같은 것은 없다.

그는 이 세상에 있어서 다만 그리스도를 바랄 뿐,

 

그런데 이 소망이 그저 공망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는 미혹된 자이다.

그 생명을 걸고서 미몽의 뒤를 따르는 자이다.

그는 이상향을 바란다.

 

그런데 죽은 후에는 이에 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어찌하여 곧 그리스도 신자 됨을 버리고 세상의 소위 순정윤리학자로 되지 않는가!

 

어찌하여 내세를 강구하는가!

어찌하여 천국을 바란다고 하는가!

 

희망을 달할 길 없는데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바란다는 것은 이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가련한 자 아니랴!

 

우리들도 이 세상에 있어서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바랄 것인가? 우리들은 모든 사람 가운데서도 가장 불쌍히 여길 자이다(19)

 

 

*내촌감삼의 글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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