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6일 목요일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해석이 없는 방언

 

성 경 [고전 14:6-14]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고전 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

이 모든 것을 방언으로 말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사도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도 청중의 언어로 말하지 않으면 덕을 세울 수 없다.

새로운 계시나 옛 계시의 설명이나 교훈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는 무익하다. 알지 못하는 언어의 성경 해석은 이용되기 전에 통역이 되어야 한다.

 

[고전 14: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

 

생명 없는 악기(樂器)같은 것들도 곡조의 분별을 표시하지 않는다면, 듣는 사람들에게 그 소리의 뜻을 알려 주지 못한다.

 

알아듣게 하기 전에는 듣는 자들에게 무익한 소리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생명 없는 도구들의 소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씀 뜻은, 곡조를 분변 있게 내지 않은 "" 소리나 "거문고" 소리는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고전 14: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

 

전쟁 때엔 나팔 소리로써 군인들에게 경고를 준다. 그것은 곡조로써 뜻을 표시하여 듣는 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고전 14: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

 

"허공에다 말함"은 효과 없이 말한다는 뜻이다.

 

[고전 14: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

 

여기 "소리"란 말은 목소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의 방언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전 14: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 곧 피차간 야만의 관계란 뜻이니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고전 14:12-13]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 , 신령한 은사를 구하여야 되나, 남들에게 유익 끼치기를 목표하라는 뜻이다.

 

그리하려면 방언하는 자는 통역하는 은사도 받아야 된다.

 

[고전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

 

방언은 지능(知能)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높은 층계에 속하는 영으로 한다. 그러므로 그 방언을 하는 사람 자신도 지능으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그러나 바울은 "나의 영"과 나의 "마음"을 엄격히 구분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15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바울은 타당한 이유로써 이 충고를 하고 있다. 만약 모르는 방언으로 기도하면 그의 영은 기도하고 그의 마음은 신령하게 참여하지만 그러나 그의 이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공중 기도를 하는 사람은 알 수 있는 말로 기도하며, 다른 방언이나 청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하면 안 된다. 가장 이해하기 쉽고 분명한 언어가 예배와 신앙 활동에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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