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과 예언의 사용
성경:〔고전 14:21-25〕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이 절에 바울은 다른 제목에서 이 주장을 추구하고 논리를 전개한다.
Ⅰ. 고린도 교인들이 사용한 방언들은 사람들에게 나타난 자비가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온 심판의 표시였다.
(21절 율법(구약)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사 28:11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신명기 28장 46, 49절과 비교하라.
(신명기 28장 46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징과 훈계가 되리라, 49 곧 여호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가 날아오는 것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이상의 두 곳을 바울은 언급하는 것 같다. 둘 다 위협의 방법으로 전달되었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해석하는 것으로 가정된다. 이와 같은 견해의 의미는
‘다른 방언으로 교훈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증거이다’라는 것이다.
확실히 바울의 말은 이런 의미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표시를 좋아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깨닫지 못하는 방언으로 교훈을 받으며 가르침으로는 유익을 얻지 못한다. 방언에 맡기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치료할 수 없는 자로 포기함을 나타내신다."
기독교인들이 방언에 빠지며 교회가 방언에 도취되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나 고린도의 설교자들은 그들의 성령의 감동을 방언으로 나타내기를 열망했다.
Ⅱ. 방언은 신자보다 불신자에게 주는 표적이다.
(22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방언은 불신자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교회에 들어오도록 하는 영적인 은사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된 사람은 자신의 말로써 유익한 교훈을 들어야 한다.
방언의 은사는 기독교를 전파하고 교회를 모으며 기독교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진리를 불신자들이 분명히 깨닫는데 적당하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의 모임에서 방언을 하는 것은 시대적으로나 장소에 있어서나 부적당하다.
다음을 주목하자.
은사가 올바르게 사용되기 위하여 은사의 목적을 아는 것이 옳다.
바울의 경우와 같이 불신자들을 믿게 하는 데는 방언의 은사가 필요하나, 이미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방언의 은사를 자랑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왜냐하면 회중에게 아무 유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를 확신시키지도 못한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교훈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듣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Ⅲ. 기독교인들의 신임과 명성은 기독교인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예언을 더 낫게 여기도록 요청한다.
1.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이 예배하기 위하여 모였을 때에 목사나 공중예배를 주관하는 사람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한다면, 불신자들이 들어와서 그들은 모두 미쳤다고 생각하며 야만적인 광분자들이라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올바른 지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그러한 신앙적인 예배를 수행하며 지각과 이해를 무시한 교가 어디에 있겠는가?
교회의 목사들이 자신이나 회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하고 설교하고 종교적 의식을 수행한다면 이방인들이 얼마나 조소할 것인가?
다음을 주목하자.
기독교 신앙은 근엄하고 논리적이다. 교회의 목사들에 의하여 야만적이고 무의미하게 만들어지면 안 된다. 혼미하게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과 인격을 더럽히게 된다.
2. 방언을 말하는 대신에 목회하는 사람들이 단순하게 성경을 해석하며 이해할 수 있고, 적당한 언어로 설교하며 복음의 위대한 진리와 규율을 전한다면 이방인이나 무식한 사람들이 와서 깨달아 기독교인으로 개종할 것이다.
(24-25절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그의 양심이 움직이며 마음의 비밀이 나타나며 듣는 진리에 의하여 죄를 인식하며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회중에 한 사람이 될 것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소박하게 그리고 적당히 가르쳐지는 성경의 진리는 양심을 일깨우고 심금을 울린다. 불신자들이 교회의 목사들을 미친 사람들의 무리로 여기고 그들의 신앙을 광란으로 간주하는 것보다 순수한 설교와 가르침이 얼마나 더 명예로운 일이겠는가?
방언은 신자와 그들의 신앙에게 경멸을 초래하게 된다. 찬양을 받기보다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이 교회를 교화하고 교회의 명예를 유지시키고 듣는 불신자들을 회개시킬 것이다.
기독교의 모임의 신앙 행사는 신자들을 가르치고 불신자들을 회개시키고 변화시키도록 하여야 한다.
목회는 은사나 재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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