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9일 일요일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은사와 교회의 질서

 

성 경 : [고전 14:26-33]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고전 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

 

"찬송시"란 것은 원시 교회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은 회원들이 부를 수 있었던 시가(詩歌)였는데(5:19;3:16), 구약 시편을 말함이 아니다.

 

1:46, 68, 2:14 ,29; 딤전 3:16; 4:8, 5:9, 7:10, 11:5, 12:10, 15:3, 19:1, 6 참조. 벤드라드(H.D.Wendland)도 이와같은 뜻으로 해석하였다(Die Briefe an Korinther, p.114).

 

"가르치는 말씀"이란 것은, 교리(敎理)나 도덕면(道德面)에서 교훈을 베푸는 것을 말함이다.

 

"계시도 있으며", 이것은, 그때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있었던 직접 영감(直接靈感)에 의한 진리 섭취를 말함이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신자들은, 위에 열거(列擧)된 무슨 은사든지 오직 건덕(建德)을 위하여 행용(行用)하여야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자도 다만 건덕(남들을 유익하게 함)을 위하여 할 뿐이다. 건덕은 결국 사랑을 의미하는 행위이다.

 

 

[고전 14:27-28]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방언을 하는 자들은,

 

(1) 공중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한 사람씩 차서(次序)있게 할 것이고,

(2) 또한 회중이 알도록 하기 위하여 그 말하는 방언을 통역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지시한 것은, 후대 교회보다 그때 초대 교회의 실정에 맞추어 한 것이다.

 

현대 교회에서 이렇게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현대 교회의 방언이 사도들의 역사(役事)로 나타났던 그것과 같은 수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말하기를,

 

"방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데 성령께서 말하게 하는 대로 말한 것이다. 그것은, 하늘 방언인데(천사의 방언은 아님), 죄악의 영향을 초월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또 말하기를,

 

"방언의 이적이 오순절에는 완전하게 나타났으나 그 후에는 불완전하였다. 이것은 마치, 우리 마음에 받는 은혜가 처음엔 중생의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그 후에는 비교적 현저하지 않은 영력(靈力)만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오순절에는 완전한 방언의 이적이 나타났고, 그 후에 지방 교회에서는 비교적 약한 분량으로 나타났다"고 하였다(The Work of the Holy Spirit, pp.134-135).

 

교회 시대(특별히 현대)의 방언 운동에 대하여 한 가지 주의해야 될 것은, 위에 카이퍼(A.Kuyper)가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이 사도적 역사의 완전성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도적 이적은, 병자를 고칠 때 그 취급된 병자가 다 고침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시대의 신유는 그렇지 못하여 어떤 병자는 고치나 어떤 병자는 못고치는 정도이다.

 

오늘날 참된 방언이 있다면, 그것이 그런 정도의 것이라고 인정해야 된다. 사도의 직접 지도가 없는 지금(교회시대)에 있어서 방언의 성격의 진위(眞僞)를 참으로 알 분이 누구이기에 교회에서 방언을 통역에 의하여 공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고전 14:29-31]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이 부분의 말씀은, 초대 교회의 신자들이 직접 계시(啓示)를 받은 일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이 예배 석상에서 그 받은 계시를 회중(會衆)에게 전달할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공중질서(公衆秩序)를 무시하지 않고 전달되도록 할 것이었다.

 

한 집회에 너무 많은 사람이 예언하지 않도록 할 것과 하나씩 하도록 한 것은, 질서 있게 하므로 유익을 받도록 한 것이다.

 

 

[고전 14: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

 

여기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란 말은, 예언하는 자가 받은 성령의 감화를 말함이다.

 

이 감화력(感化力)은 그 예언자의 의식(意識)의 자주성(自主性)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예언자는 의식 없는 사람처럼 난동(亂動)하게 될 처지에 있지 않다. 그는, (29-31)에 기록된 질서를 지킬 수 있는 정상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

 

 

[고전 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 예언을 주시는 하나님 자신이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이신 만큼, 예언자들이 질서를 지켜야 될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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