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4일 화요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영원한 사랑

고린도 전서 13:8-13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여기에서 바울은 사랑을 권장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그렇게나 자랑한 은사보다 얼마나 더 좋은가를 보인다. 그들은 사랑을 전연 무시하고 제거하였다.

 

. 사랑은 더 오래 존속한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그것은 영원한 은혜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자랑하는 은사들은 잠간 존속한다. 은사들은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잠간 동안 이 세상에 있다가 천국에서는 대치된다. 사랑만이 남게 된다.

"예언도 폐하고" 즉 올 일의 예언이나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일이다.

"방언도 그치고" 배우지 아니하고 언어들을 말하는 능력이다. 하늘에는 오직 한 방언만 남게 된다. 절대적으로 고요한 곳에는 방언의 혼란이 없다.

"지식도 폐하리라." 완전한 그 곳에는 거룩하고 행복한 영혼은 무지함이 아니다.

무지한 것과 일치하는 행복은 얕은 행복이다. 바울이 여기에서 언급하는 지깃은 보통의 수단은 넘는 초자연적인 신비한 지식이다. 그러한 지식도 사라진다. 어떤이는 보통 지식으로 이해한다. 이런 지식은 없어진다.

지식 자체는 남게 된다. 바울이 여기에서 제시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은사에 대립하여 사랑의 은혜를 말한다. 사랑은 더 오래 존속하기 때문에 더 귀하다. 다른 은사가 없어져도 사랑은 남는다. 세상의 지식은 다 무용하여 천국에는 자리가 없어도 사랑은 그곳에 들어간다. 촛불은 태양의 빛으로 희미하게 된다.

 

. 이 은사들은 다 불완전하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9) 우리의 가장 좋은 지식과 능력은 다 우리 자신처럼 불완전하고 순간적이다.

영감으로 얻은 지식도 부분적이다. 영감을 받은 사도들이나 사람들도 하나님의 일이나 보이지 않는 세상의 얼마나 적은 부분을 알고 있는가. 이들 은사들은 불완전한 이 세상에서만 유용하고 교회에 불완전한 것들과 함께 없어지나 사랑은 영원히 존속하게 된다.

 

. 저곳의 교회의 상태가 얼마나 좋은가를 보인다.

완전한 상태이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10). 목표가 달성되면 수단이 필요 없게 된다.

미래 생활에서는 방언과 예언과 영감을 받은 지식이 필요 없다. 교회는 지식과 거룩함에 있어서 완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인식되어지고 영광스러운 마음은 잠시적인 지식과는 다르게 알 수 있다. 두 상태의 차이가 비교된다.

 

1. 현재의 상태는 어린이의 상태이고 장래의 상태는 어른의 상태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 아이와 같이 말하다는 방언으로 말함이고, 어린 아이와 같이 깨닫고는 evfro,noun -sapiebam - 즉 내가 예언을 하고 천국의 비밀을 배웠으나 어린 아이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곳과 천국의 차이이다. 어린이는 어른에 비교하여 얼마나 불명료한 개념과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이성이 성숙하면 어린이의 생각을 무의미한 것으로 버리게 된다. 우리가 천국에 도달하면 이와 같이 행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게 되면 자랑하던 어린이의 우매함을 버린다.

 

2. 천국의 상태와 비교하면 이곳의 사물은 어둡고 혼란되어 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즉 수수께끼 같이 - evn aivni.gmati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사물을 가까이 그리고 분명하게 보며 우리의 지식은 애매와 실수가 없게 된다.

하나님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여 주며 주께서 나를 아시는 것과 같이 주를 안다. 단지 보시기만 하여도 우리는 알려진다. 주께서 그의 눈을 돌리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신다.

우리도 그를 바라보아,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요일 3:2).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 알게 된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변화인가! 어두움에서 빛으로 구름에서 구주의 태양으로 옮긴다(36:9).

다음을 주목하자. 하늘의 빛만이 모든 구름을 걷히게 한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황혼에서 산다. 완전하고 영원한 밝은 날이 올 것이다.

 

. 사랑의 우월성을 종합한다.

바울은 사랑을 다른 은사보다 더 좋아하며 다른 은혜보다 더 좋아한다. 즉 믿음과 소망보다 더 귀히 여긴다(13).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참 은혜는 어떤 은사보다 좋다. 믿음, 소망, 사랑은 기본적인 세 은혜이다. 그 중에 사랑이 제일이다.

사랑은 신령한 것이요, 영혼의 행복이다. 하나님 안에 있는 만족한 휴식이며 성도의 거룩한 기쁨이다.

사랑은 영원한 역사이며, 믿음과 소망은 없어진다. 믿음은 신령한 계시에 촛점을 두고 증거한다. 소망은 장래의 축복을 붙들고 소망한다.

믿음은 천국에서 봄으로써 삼키어 버리고 소망은 여지가 없다. 사랑은 신령한 완성 자체와 피조물의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붙든다.

이들이 저 세상에서 빛나며 그곳에서 사랑이 완성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의 마음이 불붙고 영원한 헌신으로 빛나기 때문에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한다.

성도만 있고 완전한 성도가 됨으로 성도를 완전히 사랑한다. 얼마나 축복된 상태인가. 사랑의 훌륭한 은혜여! 모든 은사보다 우월하고 모듣 은사의 완성이다.

믿음과 소망이 종결될 때에 사랑은 밝게 빛난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다.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곳에 사랑이 절정에 달하고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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