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논리
바울의 부활론
고린도전서 15장 1-58절
(1) 천연에 있어서의 부활
성경 :〔고전 15:35-41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개역한글판)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말한다. 사자가 어떻게 하여 다시 살리신 바 되는가 어떠한 신체로 그들은 올 것인가고.
36) 무지한 자여 네가 심는 것은 먼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지 않는가?
37) 또 너희가 심는 것은 뒤에 이르러 생겨날(돋아 날)것의 몸을 심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알갱이 씨앗뿐이 아닌가? 밀에 있어서나 또 다른 곡류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38) 그런 것을 하나님은 자기 뜻에 따라 이것에 몸을 입혀 주신다. 씨앗마다 그 각각의 몸을 입혀 주신다.
39) 모든 육체는 동일한 육체가 아니다. 사람의 육체가 있다. 짐승의 육체가 있다. 새의 육체가 있다. 물고기의 육체가 있다.
40) 하늘에 속한 육체가 있다. 땅에 속한 육체가 있다. 하늘에 속한자의 영광은 땅에 속한 자의 영광과 다르다.
41) 해의 영광 있다. 달의 영광 있다. 별의 영광 있다. 이 별과 저 별이 각각 그 영광을 달리한다(35-41,일본어성경).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는 복음이 의거하여 서는 근저이다.
부활 없이 그리스도교 없다.
부활 없이 우리들의 신앙은 무익하다.
부활을 부정하는 결과는 그리스도교 전부를 파훼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말한다.
가령 부활은 사실이라 해도 사자(死者)가 어떻게 하여 다시 살리신바 되는가?
그는 어떠한 신체로 다시 세상에 오는가?
부활의 사실은 인정한다 해도 그 학리적 설명은 어떤가?
부활의 논리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말한다. 사자가 어떻게 하여 다시 살리신 바 되는가 어떠한 신체로 그들은 올 것인가고.(35).
바울은 이 질의에 대답하여 말한다.
너 무지한 자여. 사리를 해득하지 못하는 자여.
네가 심는 것은 먼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너는 부활의 진리를 의심한다 해도 하지만 이것은 네가 일상으로 네 전원에 있어서 목격하는 바의 사실 아니랴? 부활의 원리는 식생의 원리이다.
너는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 지를 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하여 부활하는지를 모른다고 한다.
나는 너를 무지한 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네가 식생에 대하여 아는 바 있고 인생에 대하여 아는 바 없기 때문이다.
무지한 자여 네가 심는 것은 먼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지 않는가?(36).
씨앗은 씨앗으로 자라나는 것 아니다.
씨앗은 땅에 내려가 붕괴되어 그 가운데 있는 생명은 새로이 체의를 형성하여 다시 지상으로 나와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사람이 다시 살아남도 이에 다를 바 없다.
부활은 읽어서 글자 그대로 구체의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 아니다.
부활은 신체의 형성이다.
구체의 붕괴와 동시에 소멸되지 않는 생명이 새로이 성분을 수용하여 신체를 형성하여 나타나는 일이다.
이는 네가 밀에 있어서도, 또 다른 곡물에 있어서도 목격하는 바로서 별로 이상히 여기는 것 아니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사람의 부활이라는 것도 이 원리의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동일한 원리는 전우주를 일관한다.
잘 식생을 아는 자는 잘 인생을 안다.
봄볕이 다시 오는 때 식생의 맹아를 즐기는 자는 부활의 복음을 듣고서 환희 작약하여 이를 맞이할 것 아니랴.
또 너희가 심는 것은 뒤에 이르러 생겨날(돋아 날)것의 몸을 심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알갱이 씨앗뿐이 아닌가? 밀에 있어서나 또 다른 곡류에 있어서도 그러하다.(37).
밀은 밀이다. 조는 조이다. 돌피는 돌피이다.
그것이 땅에 떨어져 부식하는 때, 밀의 씨앗은 조의 씨앗에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씨앗의 부식과 동시에 식물은 그 고유의 성을 잃지 않는다.
밀은 밀로서 생겨 나온다. 돌피는 돌피로서 생겨 나온다.
사람은 사람이다. 짐승은 짐승이다. 새는 새이다.
그것이 무덤에 내려가 진토되는 때, 사람의 육체는 짐승의 육체와 다를 바 없다.
사람과 짐승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람인 것이다.
짐승은 짐승으로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짐승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물 각자에게 그 특유의 형체 있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마음) 따라 생물마다 그 각각의 독특한 몸을 입혀 주신다.
이는 성서의 생물관이다.
세상의 생물학자는 이에 대하여 많은 이의를 가지리라.
하지만 나는 이렇게 배우고 또 이렇게 믿는다.
그리고 학자도 또 마침내 성서의 이 견해에 복종치 않을 수 없기에 이르리라.
그런 것을 하나님은 자기 뜻에 따라 이것에 몸을 입혀 주신다. 씨앗마다 그 각각의 몸을 입혀 주신다.(38).
육이라 해서 모든 육은 동일한 육이 아니다.
사람의 육(육체)있다. 짐승의 육이 있다. 새의 육이다. 고기의 육 있다.
한가지로 이는 질소질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로 이는 근육의 섬유와 지방과 연골과의 혼성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분을 한가지로 하는 육류는 이것을 조성하는 동물의 종류에 따라 그 성을 달리하는 것 아닌가?
말씀 마시라. 동일한 성분은 동일물을 형성할 뿐이라고.
생명은 기계적 동력이 아니다.
그 활동의 결과는 수리로서 산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 그것이 이미 학리 이상의 것이다.
생명은 동일한 것을 가지고서 이종(移種)의 것을 만든다.
너는 영체 있음을 듣고서 의심하는가?
그렇다면 어찌하여 동일한 성분으로 이룩된 이종의 육체 있음을 보고 의심치 않는가?
기적은 사람의 부활에만 한하지 않는 것이다.
잘 동물을 아는 자는 사람의 부활을 듣고서 놀라지 않을 것이다.
모든 육체는 동일한 육체가 아니다. 사람의 육체가 있다. 짐승의 육체가 있다. 새의 육체가 있다. 물고기의 육체가 있다.(39).
지상의 물체는 천자만태이다.
하지만 부동이별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물체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있다.
그리고 하늘의 것은 땅의 것과 다르다.
또 천체 각자 그것의 질을 달리한다.
해의 광휘 있다. 달에 달의 광희 있다. 별의 광채가 있다.
이 별과 저 별과는 그 광채를 달리한다.
별은 별이라고 해서 동일한 빛과 빛깔과 광도로서 빛나는 것이 아니다.
금성은 수성과 다르다. 안드로메다성은 비가성(직녀성)과 다르다.
하늘에 억만의 별이 있다해도 이는 동형 가운데 이룩된 주물 같은 것이 아니다.
잘 이것을 연구하면 궁창은 마치 봄의 산야와 같다.
백화(百花), 색을 다투고 천림 무늬를 수놓는다.
우리들이 이것을 바라볼 때 어찌 하나님의 의장의 무궁하심에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하늘에 속한 육체가 있다. 땅에 속한 육체가 있다. 하늘에 속한자의 영광은 땅에 속한 자의 영광과 다르다.
41) 해의 영광 있다. 달의 영광 있다. 별의 영광 있다. 이 별과 저 별이 각각 그 영광을 달리한다.(40-41).
어떻게 다시 살리신 바 되는가? 고 묻는가?
이것을 식물 발생의 현상에 있어서 보라.
사람의 부활의 방법은 씨앗 싹틈의 방법과 다름없다.
구체는 지중에 부식하고 생명은 그 존재를 계속하여 신체를 조성해서 다시 지상에 나타난다.
어떠한 신체로서 오는가고 묻는가?
즉 부활 체질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가?
이것을 조화의 천자만태임에 대하여 생각하라.
물고기의 육은 그 성분에 있어서 사람의 육체와 다름없다.
하지만 고기의 육은 이것 때문에(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육체가 아니다.
별이라고 해서 모든 별은 동일한 별이 아니다.
하나님은 의장에 부하시다.
그는 썩은 육의 몸 이상으로 또 썩지 않을 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자녀이다. 뒤에 어떻게 될 것인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 나타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닮을 것을 안다.(요한제1서 3:2)
나는 아직 부활체의 체질에 대하여 아는 바 없다.
하지만 그러한 신체가 있을 것을 알고 또 그것이 우리의 지금의 육체보다는 훨씬 거룩한(하나님을 닮은) 것임을 안다.
우리들은 이미 우리들 속에 혈기 이상의 생명 있음을 안다.
그리고 이 생명을 간직하기에 족한 그릇은 이 육체 이상의 것이 아닐 수 없다.
짐승의 육은 사람의 영을 거하게 하기에는 족하지 못하다.
사람의 육은 천사의 영을 거하게 하기에 족하지 못하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미 천사의 영 비슷한 영이 거하는 바 있다.
사람의 영을 거하게 하기 위해 사람의 육을 만드신 하나님은 천사에 흡사한 영을 거하게 하기 위해 특수한 몸을 만드시지 않으랴?
내가 영체라 부르고 싶어하는 바의 것은 이것이다.
이는 하늘에 속한 것이매 땅에 속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영체에도 또한 천차만별 있음은 모든 별이 그 광채를 달리함과 같을 것이다.
천사 미가엘은 천사 가브리엘과 그 영광을 달리함 같이, 성도는 영체가 옷 입혀져 하늘에 들어간 후에도 각각 그 영광을 달리할 것이다.
금강석의 빛을 가지고서 빛나는 자 있으리라.
마노, 비취, 진주의 광채로서 빛나는 것도 있으리라.
그리고 궁창을 장식하는데 봄의 산야의 이채로서 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을 장식하는데 상광 찬란한 그의 성도로서 하실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있는 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뒤에(장차) 있을 신천지를 완성치 않으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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