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일 화요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사도권의 참 목적

[바울의 객관적인 자기 사랑]

 

성 경: [고후 10:12-18]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13) 그러나 우리는 분량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밖의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 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16)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고후 10:12]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 본문에서 바울은 적대자들을 가리켜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들이 자찬(自讚)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아마 자기들을 내세우기 위한 추천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적대자들은 추천서의 권위에 의존하여 자기들이 진정한 사도임을 과시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만 바울은 스스로를 추천하지도 않고 추천서에 의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5: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적대자들은 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은 사도라고 자랑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사도이다.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그들은 비교를 통해 자기의 우월성을 과시하려 하지만 바울은 그런 것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 사실 적대자들이 만든 표준이나 척도, 즉 인간적인 지혜, 사도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려는 위압적인 태도, 수사학적인 웅변술 등은 당시에 어느 정도 일반성을 갖는 것이었다(Barrett)).

 

그러나 바울은 그런 기준들을 이미 오래전에 하찮은 것으로 버렸다.

 

(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전 2: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바울이 보기에 그런 척도들은 천박한 것이었고 그 척도를 가지고 자신을 추정하고 과시하는 것이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후 10:13] 그러나 우리는 분량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 - 바울은 적대자들의 자랑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선교의 영역을 무시한 것이므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계''길이를 재는 막대기', '줄자'라는 뜻인데 규범이나 표준의 의미로도 쓰이고,

 

(6: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일정하게 한정된 영역을 가리키기도 한다.

 

(10:14-16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밖의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 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16)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본절에서 이 말은 후자의 의미이며 바울이 여기서 문제 삼는 것도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선교 영역의 준수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고,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에게 이방(異邦)을 선교 영역으로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도 합의된 바 있다.

 

(2: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이런 한계에 입각하여 바울은 다른 사람이 복음을 전한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

 

(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바울이 고린도에 이르러 복음의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한계를 지키면서 행한 것이었다.

 

 

[고후 10: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 본절에는 두 가지 요점이 제시되어 있는데,

 

첫째는 바울이 고린도에 갈 자격이 있고 고린도는 바울이 정당하게 선교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고린도에 복음을 처음 전한 사람은 바울 자신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바울의 적대자들이 남의 선교 영역에 손을 뻗치고 있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게다가 이들은 참 복음이 아닌 것을 가지고 들어와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했다.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0: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밖의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 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밖의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 바울은 결코 남이 수고한 것의 결과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고린도 교회는 다른 어느 누구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 때 바울이 최초로 복음을 전하여 설립되었기에 고린도에 교인들이 있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신 결과였다.

 

그러나 적대자들은 남의 선교 영역에 들어와서 바울의 업적이 자기들의 것인 양 자랑하였다.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 바울이 바라는 것은 자기가 복음을 전파하여 믿음을 갖게 된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과 비례하여 자신의 선교 영역이 더욱 확장되기를 바라는 것이었고,

 

(15:23-24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그것과 더불어 복음으로 말미암는 그의 영향력이 확대되기를 원했다.

 

이로써 그는 자기에 대한 성도들의 존경도 심화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그의 선교 영역을 준수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었다.

 

(16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고후 10:16]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너희 지경을 넘어 - 본문의 의미는 고린도 지역을 넘어 로마와 서바나에 이르는 지역에까지 복음을 증거하려 한다는 것이다.

 

(19: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15: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2-24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그 지역들은 남의 선교 영역이 아니며 그 누구도 복음을 증거하지 않은 불모지(不毛地)였다.

 

 

[고후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

 

본절은 고전 1:31에서와 같이,

 

(고전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9:22-24를 인용한 것인데,

 

(9:22-24 너는 이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 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떨어지고 거두지 못한 뭇 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내용은 사람이 자기가 가진 바 지혜나 용맹이나 부함을 자랑치 말고 하나님 아는 것을 자랑하며,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안다면 자신을 자랑하기보다는 자신을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누구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이고 참된 사도라면 그는 자기를 자랑하기보다는 자기를 통해 섭리하신 주님을 자랑할 것이다.

 

바울은 적대자들의 허위적 자랑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업적을 정당화 하였지만 그는 그런 것이 궁극적으로는 어리석은 일임을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절은 바울이 자랑하는 자가 된 것은 주를 더 자랑하기 위함이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고후 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 본절 '자랑'에 관한 주제의 핵심이 드러나고 있다.

 

바울은 진정으로 자신을 통해 인정받아야 할 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대자들이 자기들이 만든 기준을 가지고 자신들을 자랑하는 행위가 어리석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므로, 결코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12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참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사도는 자신이 언젠가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을 알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자중하는 자이며 사람들로부터 안정 받기보다는,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하는 자이다.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 앞에 전개되는 일들을 똑바로 보아야 하며, 이러한 기준에 의해 바울과 적대자들 중 누가 진정으로 권위있는 사도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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