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수고와 열심 3
성 경: [고후 11:26-33]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33)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고후 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 여러 번 여행에 - 여행에 해당하는 헬라어 'ὁδοιπορία 호도이포리아'는 해상 여행과 구별되는 육로 여행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후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았다.
▶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 - 바울의 육로 선교 여행은 때로 강을 건너야 했는데 그 당시 반쯤 말라 있던 강물이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순식간에 급류로 변해 여행자에게 큰 위험이 되기도 했다. 바울도 아마 이런 위험을 당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 당시의 헬라와 아시아의 산악 지방에는 산적들에 의한 약탈 행위가 있었는데 아무런 호위 병력도 없이 선교 여행을 하는 것은 이런 위협까지도 각오해야 했다.
▶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 - 바울은 선교를 함에 있어서 유대인 동족들로부터는 배교자로 낙인찍혀 죽음의 위협을 당했고,
(행 9: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
18: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이방인의 토착 종교인들로부터는 훼방자로 죽임을 당할 뻔했다.
(행 16:16-40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17)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침례를 받은 후
34)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고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19:23-41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25)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27)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2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 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 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발명하려 하나
34) 저희는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 동안이나 하더니
35) 서기장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37)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왔으니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거든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아마 바울은 이런 역경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겨나가면서,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는'(4:8-9) 신앙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 - 시내의 위험이라 함은 에베소, 빌립보, 베뢰아등의 도시에서 당한 환난과 핍박을 가리킨다.
(행 16: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19:27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광야의 위험이라 함은 비시디아의 버가와 안디옥 사이에 있는 험악한 광야를 통과할 때, 또는 안디옥에서 루스드라와 더베 사이에 위치한 지역을 지날 때 있을 수 있는 추위와 뜨거움과 배고픔 등의 위험, 그리고 갈라디아의 도시들에 이르기 위해 다루스 산맥을 넘어가는 지역에서의 위험 등을 가리킨다.
▶ 바다의 위험 - 이는 앞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파선의 위험을 가리킨다.
(25절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 거짓 형제 중의 위험 - 거짓 형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과도 구별되는 자들로 아마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과도 연관이 있는 유대적 기독교인들이라고 본다.
그런데 혹자는 단순히 기독교내에 있는 배교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Tasker, Martin)
또 어떤 학자는 이들이 바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권위자들(가령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바울에 대해 나쁘게 고자질했을 것이라고 본다(Hering).
그러나 바울이 배교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갈 2:4을 참조해 볼 때 거짓 형제란 유대적 기독교인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들에 의해 바울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갈 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고후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 수고하며 애쓰고 - 이 두 단어는 중노동을 나타내는 말인데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 외에 육체의 심한 노동으로도 몹시 피곤한 생활을 했다.
(살후 3: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 여러 번 자지 못하고 - 육신의 병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나 많은 일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외부의 위험 때문인지 분명치 않다.
아무튼 그가 의도적으로 자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고자 해도 잠을 잘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은 육신으로 감당하기에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음에 틀림없다.
▶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 주린 것과 목마른 것은 광야의 위험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의 굶주림이 자발적인 금식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그가 복음을 선포하고 그 권리로 얻을 수 있는 재정 보조를 마다했기 때문에 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굶주림에 처했을 것이다.
▶ 춥고 헐벗었노라 - 이는 바울의 재정적인 빈약함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말이다.
이러한 그의 삶은 참으로 자신은 가난해 지지만 다른 사람들은 부유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었다.
[고후 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 - 늘 바울의 마음에 고통이 되는 것은, 자신의 생(生)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오직 목회적 관심, 즉 교회에 관한 염려였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로부터 들려오는 분쟁과 타락의 소식을 들은 때마다 그것의 해결을 위해 고심했으며,
(행 20:29-30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교회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애썼다.
(롬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고전 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고후 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 바울이 당한 고난은 교회 밖에서 오는 것과,
(23-27절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교회 안에서 오는 것의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오는 고난은 근본적으로 그의 성도들이 온전한 신앙에 이르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거짓 사도의 가르침에 현혹된 것이나 바울 자신에 대한 사도적 권위에 대한 도전 등도 결국 이러한 고난을 의미한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 오는 고난은 23-27절에 언급된 것들을 가리킨다.
한편 본절에서의 핵심적인 단어는 '약해지다'라는 말인데,
본절의 약함은 율법이나 조문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신앙과 믿음이 연약한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신앙이 강건하지 못하고 연약한 성도들에 대해서 결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 대해서 동정하고 함께 아파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본절은 바울의 이런 기본적인 태도를 나타낸 것으로 본다. 한편 바울의 이런 태도는 그의 유기체적(有機體的) 교회에 대한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엡 1:22-23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즉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지체도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지체된 교회의 특징이다.
▶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 여기서 '실족'은 '죄에 빠진 것'이나 '걸려 넘어져 믿음을 잃게 된 것'(Barrett)을 가리킨다.
바울의 이 말은 그의 사도적 인격에 깊이 내재해 있는 목회자적 열정을 잘 나타내 준다고 본다.
[고후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 바울은 비록 자신에 대한 자랑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어 자랑했지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인간적인 자랑을 해야하는(16-27절) '어리석음'을 멈추고 다시 본질적인 주제로 돌아왔다.
바울이 말하는 약함이란 육체의 풍모나 신체적인 면에 있어서의 허약함, 세상적인 것을 가지지 못한 약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의 여정을 걸어야 했던 것 등이라고 본다.
(11:23-27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리고 이러한 연약함이 그에게 자랑거리라는 말은 매우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이 말은 바울 자신이 인간적인 면에서 약하면 약할수록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기에 그 연약함이 그에게 자랑거리라는 의미이다.
(1:8-10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10-11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12: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9-10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1: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 주 예수의 아버지 -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의심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고,
(1:12-14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그가 한 말에 대해서 그들이 계속 의심하려고 한다면 별 도리는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가 경험한 사건들은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하여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기의 말이나 행위에 대한 진실성을 호소하는 수단 중 가장 강하게 되었다.
▶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 - 이 말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라는 유대교의 찬양문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유대인들이 조상 대대로 섬겨온 그 하나님이 이제 기독교인들에게 주 예수의 아버지와 동격으로 사용되어,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서로 다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리고 엡 1:3; 벧전 1:3에서도 같은 표현이 사용된 점을 미루어 보아 당시에 그러한 찬양문이 기독교인의 예배나 기도에서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Barrett).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벧전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고후 11: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 - '아레다'(Aretas)는 B.C. 9년에서 A.D. 40년까지 아라비아의 나바데아(Nabataea)를 다스렸던 왕이었다.
이 아레다 왕이 다메섹을 다스렸다는 표현은 역사적인 사실에 비추어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왜냐하면 다메섹은 B.C 63년부터 A.D. 34년까지 로마의 영토에 편입(編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Harris).
그러나 A.D. 34-62년 사이에 로마의 황제였던 갈리굴라(Galigula A.D. 37-41)와 클라우디오(Cludius A.D.41-54)의 동전이 다메섹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고고학적 결과를 가지고 아레다가 다메섹을 통치했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러한 추측을 부정한다.
그래서 혹자는 다메섹이 이중의 통치를 받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즉 '아레다'가 로마의 봉신(封臣)으로서 다메섹을 통치했다는 것이다(Tommsan).
또 어떤 학자들은 다메섹이 여전히 로마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고 있었으나 다메섹에는 나바데 아인들의 반자치 구역으로 허용된 영역이 있었고 바울이 당한 사건은 거기에서 있었던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Bruce, Tasker, Hughes, Meyer, Harris).
▶ 방백 - 이는 지방의 '행정 장관'을 지칭하는 말이다.
▶ 잡으려고 - 이것은 행 9:23-25에 나오는 사건을 말하는데,
(행 9:23-25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본 구절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단순히 체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잡아 죽이려고 한 것이었다.
(행 9: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고후 11:33]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 광주리를 타고 벗어났노라 -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바울로서는 그 사건이 그다지 명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바울이 그 체험을 고백하는 것은 이미 바울 자신이 자기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광주리를 타고 들창 밖으로 몰래 도망해야 하는 것은 바울의 약함과 비천함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대해서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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