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9일 수요일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바울의 수고와 열심

 

성 경: [고후 11:16-21]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18)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 우리가 약한 것 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고후 11: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 바울은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일임을 잘 알고 있다.

 

(10:12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11:1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의 사도직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도 자신의 정당한 업적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매우 조심스럽게 자신을 자랑하고 있다.

 

본절은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진술(1-6)한 이후,

 

(1-6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6)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잠시 다른 주제를 다루다가(7-15) 다시 본절의 주제로 되돌아왔다.

 

(7-15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9)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10)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11)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12)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

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이로써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 일을 결코 쉽게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바울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용납하라고 말한 1절과 모순되게도 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고 설득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1)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자랑은 자랑을 위한 자랑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을 현혹시키는 거짓 사도들의 거짓된 자기 자랑을 폭로하여 결과적으로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적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2)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을지라도 그 자랑은 자신의 지혜와 권위를 스스로 과시(誇示)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고린도 교회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 바울은 그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여기지만 선한 목적을 위해 불가불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 차원에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고후 11: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 바울은 불가피하게 자신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서 자랑을 하지만 그것은 주님을 본받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사도적인 것도 아님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 거짓 사도들의 자기 자랑이 어리석으며 그것에 현혹되는 고린도 교인들이 어리석은 것처럼 바울도 어리석은 자가 되어 자신을 자랑한다. 그래야만 이야기가 서로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어리석은 자와 동일하게 자랑을 하자면 바울은 거짓 사도들과 비교가 안될 만큼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업적이 있다.

 

(22-33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33)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고후 11:18]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본절은,

 

혈통,

 

(22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업적,

 

(10:13-16 그러나 우리는 분량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밖의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 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16)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외적인 권위의 표징(3:1)과 같은 것을 자랑한다는 의미이다.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이것은 결국 자기를 과시하고 인정받기 위한 것들이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없어서 그동안 고린도 교회 앞에서 자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도가 취할 행동이 아니며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하지 않은것 뿐이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상황의 요청에 따라서 자신의 업적을 과장됨 없이 자랑하겠다고 선언한다.

 

 

[고후 11: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 어떤 주석학자도 본절의 '지혜로운 자'라는 표현이 사실적인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풍자적 표현으로 사실상 고린도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간접적으로 꼬집는 것이다. 이로 보아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를 지혜있는 자로 생각했던 것 같다.

 

 

[고후 11:20]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종을 삼거나 - 이 표현은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의 상전으로 행세하며 그들을 노예나 종으로 부렸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갈 2:4;5:1의 내용과 같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자유를 빼앗아 율법의 종 노릇하게 만드는 것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를 다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잡아 먹거나 - 이는 마치 기생(寄生)하는 동물처럼 자기는 노력하지 않고 남의 피와 땀의 결과를 착취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거짓 사도들은 실제로 바울이 씨를 뿌려놓은 곳에 와서 그 결실을 가로채는 자들이었다.

 

사로잡거나 - 이 말은 미끼를 던져 함정에 빠뜨리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은 수사학적 달변으로 교인들을 사로잡아,

 

(6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만들려고 하였다.

 

(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자고하다 하거나 - 이 말은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무시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런데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무시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넓은 의미에서 가짜 복음을 가지고,

 

(4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그리스도의 사도처럼 행세하며 고린도 교인들을 현혹시킨 것이 무시하는 행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며,

좁은 의미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에 이의(異議)를 제기할 때 무시당한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빰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 이것이 은유적인 표현인지 아니면 실제적으로 빰을 친 것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으나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어리석게도 거짓 사도들을 용납한 결과로써 그들에게 당한 무시와 수모의 극치를 보여준다.

 

플루머(Plummer)의 표현대로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을 짓밟고 착취하는 자들에게는 관대하고 인내와 동정심을 갖었고 바울에게는 완고하게 하는 아이러니(irony)를 보여주었다.

 

 

[고후 11:21] 우리가 약한 것 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우리가 약한 것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스스로의 권위를 주장하며 비록 허위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행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약한 자였다.

 

그는 이 약함을 스스로 시인한다. 그러나 이 인간적 약함은 진정한 의미에서 부끄러움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약함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12:9-10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바울은 오히려 강한 자이다.

또한 누가 정말 강한 사도인가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언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에서 나타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23-27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어리석은 자의 수준에서 자랑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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