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31일 화요일

근본주의, 신복음주의, 신정통주의, 자유주의(근본적인 침례교회 믿음) : 이황로 목사(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2022. 5...

내가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내 앞으로 불러다가 그 꿈의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더라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

 

성 경: [4:4-10]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5) 한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였으니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으로 말미암아 번민하였었노라

6) 이러므로 내가 명령을 내려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내 앞으로 불러다가 그 꿈의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더라

7) 그 때에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가 들어왔으므로 내가 그 꿈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나 그들이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지 못하였느니라

8) 그 후에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으니 그는 내 신의 이름을 따라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자요 그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라 내가 그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되

9) 박수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어떤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니 내 꿈에 본 환상의 해석을 내게 말하라

10) 내가 침상에서 나의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높이가 높더니

 

 

느부갓네살은 교만 때문에 자기에게 작용한 심판을 언급하기에 앞서,

받은 따끔한 경고를 기술한다.

 

심판이 이르기 전 그는 경고를 받았고 거기에 정당한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는 심판을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그는 미리 그 일의 어떠함과 결과를 통고받는데

이것은 그 일이 발생했을 때 미리 받은 예언과 그 일을 비교해 봄으로써

그가 그 일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깨닫고 그렇게 발표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그는 세상에는 신의 섭리뿐만 아니라 신의 계시도 있으며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말씀과 일치한다는 것을 믿게 될 터였다.

 

그는 꿈으로써 장래 일을 주목하였는데,

우리는 그의 꿈에 대한 묘사에서

다음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 그에게 이 경고가 주어진 시간.

 

그 때는 그가 자기 집에서 편히 있으며 그의 궁에서 평강할 때였다.

그 때는 그가 애굽을 정복한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그는 전쟁을 승리로 끝맺고 그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 일은 그의 통치 34년이나 35년에 일어났다.

 

(29:17 제이십칠년 정월 초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가 꿈을 꾼 것은 이 무렵이었고 그 꿈은 일 년 후 실현된 것이다.

그 후 칠년 간 그는 정신 질환을 앓고 나서 다시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 무렵에 그는 이 조서를 썼고

2년 간 살다가 재위 45년 되는 해에 붕어(崩御)했던 것이다.

 

그는 오랜 전쟁으로 피로해 있었고 지루하고 위험한 원정을 많이 감행했었는데

이제야 겨우 자기 집에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대적도 없고 악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들 중 가장 강대한 자들이 극히 안전한 가운데

쉬면서 평강하다고 생각할 때조차 그들을 두렵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 꿈에서 받은 인상.

 

(5절 한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였으니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으로 말미암아 번민하였었노라).

 

"한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두려워했다".

 

그는 젊어서부터 전쟁에 드나들면서 전쟁의 위험을 표정하나 변치 않고 보아왔던 자였다.

우리는 하챦은 일이 그를 놀라게 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는 하나의 꿈으로도 그를 공포에 질리도록 만드신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의 침상은 부드럽고 편했을 것이다.

호위하는 자들도 그의 잠자리를 잘 지켰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의 침상에서 한 생각이 그를 편치 못하게 만들었으며

뇌속으로 받은 이상, 곧 자기 상상의 산물은 그를 번민하게 만들었다.

 

세상에서 극히 위대한 자가 자기 영혼에게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12:19)고 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교란자들, 수 만 명에게 고통을 준 자들을

바로 그들 자신에게 고통과 번민을 주는 자로 만드실 수 있으시며

강한 자의 두려움이 됐던 자들을

바로 그들 자신의 두려움이 되게 하실 수 있다.

 

꿈이 몰고 온 경악과 인상에 의해 그는 그 꿈이

평범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으로 보내진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그는 꿈의 의미에 대해 술객과 점성사들에게 묻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는 이제는 전처럼(2) 그 꿈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꿈을 생생하게 기억했으나 그 꿈의 해석과 그 꿈이 예시하는 바를 알고 싶었다.

 

(6절 이러므로 내가 명령을 내려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내 앞으로 불러다가 그 꿈의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였더라).

 

명령은 곧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에게 하달되었다.

그들은 마술과 점으로써 동물의 내장을 검사하거나 별들을 관찰함으로써

장래 일을 예고한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왕은 그들 중 누구라도 그 꿈의 해석을 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해

모두가 출두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이들은 유사한 경우에 이따금씩 왕에게 모종의 만족을 주었을 것이고

그들의 기수(技手)로 왕을 즐겁게 할 만큼 그의 의문에 대답을 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의 기대는 어긋난다.

 

그는 그 꿈을 그들에게 고했다.

 

(7절 그 때에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가 들어왔으므로 내가 그 꿈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나 그들이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지 못하였느니라).

 

그들은 꿈만 말해 주면 어김없이 해몽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2:12-13 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 명하니라

13) 왕의 명령이 내리매 박사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 동무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그들은 그 해석을 그에게 알게 하지 못했다.

꿈 해석의 열쇠는 신성한 예언에 있었다.

 

(31:3 이하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삼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에스겔서에서는 여기의 느부갓네살처럼 암수르인이 교만 때문에

찍히는 나무로 비유되고 있다.

그것은 연구한 적도 정통하지도 못한 책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을 이 꿈으로 어리둥절하게 한 뒤,

다니엘의 해몽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기여케 했다.

 

바벨론의 멸망이 다가올 때

그들의 사술과 진언과 별 보는 자와 점성사들이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라던

이사야의 예언은 여기서 성취되었다.

 

(47:12-13 이제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진언과 많은 사술을 가지고 서서 시험하여 보라 혹시 유익을 얻을 수 있을는지, 혹시 원수를 이길 수 있을는지

13) 네가 많은 모략을 인하여 피곤케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월삭에 예고하는 자들로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케 하여 보라)

 

 

. 왕은 다니엘을 청하여 이 꿈의 해석을 부탁했다.

 

"그 후에 다니엘이 들어 왔다".

 

(8절 그 후에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으니 그는 내 신의 이름을 따라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자요 그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라 내가 그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되).

 

그 는 박수와 술객들이 악하다고 하여 그들과의 합류를 거절했거나,

아니면 그들이 다니엘의 선함을 싫어하여 같이 행동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는 왕이 다니엘보다 자기 술객들이 할 수만 있다면,

해몽의 영광을 받도록 하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박사들은 어른이었으므로,

다니엘은 전처럼 가장 마지막에 자문을 받게 되었으리라.

 

(2:48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세워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을 삼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의 마지막 피난처로 삼고

모든 다른 구조의 가망성이 없어질 때까지는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으려는 자들은 많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을 몹시 칭찬하며 자기가 부여한 이름을 특별히 주목하고

그 이름을 택한 자신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은 좋은 조짐이었다.

 

"그는 내 신 벨의 이름을 쫓아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자이다".

 

그는 다니엘의 드문 재능을 칭찬한다.

 

"그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지라" 고 왕은 그의 면전에서 얘기한다.

 

(9절 박수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어떤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니 내 꿈에 본 환상의 해석을 내게 말하라).

 

우리는 그가 이런 찬사를 듣고 으스대기는커녕,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느부갓네살의 쓰레기 같은 잡신에게로 돌려진다는 데

비애를 느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느부갓네살에게는 이상한 잡물이 섞여있다.

하나님께 대한 찬사가 금방 잡신에게 결부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확신과 배치되는

타락에 동조하는 자들에게서 보통 발견된다.

 

1. 왕은 우상 숭배의 언어와 방언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예배로 전향한 자가 아니다.

그는 우상 숭배자이며 이것은 그의 말에 누설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신들 운운하며 하나의 신을

충분히 여겨 묵묵히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는 전능하신 한 분께 따르지 않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왕이 거룩한 신들의 영이라고 말할 때는 악신도 있고 선신도 있으며

사람들이 악신을 섬기는 것은 재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다니엘은 선하고 자혜로운 신의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만유의 주시라는 것을 재삼 재사 인정했으면서도

 

(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

 

 

3: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고)

 

여기서는 벨이 여전히 자기 신이라고 인정한다.

그는 또 다시 다니엘을 칭찬하는데

그 칭찬은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서가 아니라 박수장으로서 대접하고 있다.

그는 그 지식이 본질상이나 정도에 있어서도 박수들의 지식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느부갓네살이 우상 숭배와 얼마나 밀접했던가를 살펴보자.

그는 다신관(多神觀)을 가지고 있었고, 벨을 자기 신으로 택했다.

 

그는 이 두 가지의 불합리성이 논박의 여지가 없이

증명됐음에도 불구하고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다른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신들이 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 신들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2:11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많은 사람들이 체면상 자기 길을 떠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그 때문에 그릇된 길을 고집한다.

 

느부갓네살의 각성은 얼마나 이완되고

그는 자기의 깨달음을 얼마나 쉽사리 저버리는지 주목하자.

그는 한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든 신들의 신이라고 불렀다.

 

(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

 

그런데 이제는 거룩한 신들이라고 부름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다른 신들과 동렬로 취급한다.

그것이 신속히 실천되지 않으면

그것은 순식간에 망각하고 사라져 버린다는 데 주목하자.

 

느부갓네살은 참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기에

곧 뒷걸음질 쳐서 거짓 신들에 대한 이전의 존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2. 왕은 다니엘에게 대한 큰 평가를 표현한다.

 

그는 다니엘이 참신의 종 오직 하나님만의 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다니엘을 자기 술객들이 갖지 못한 통찰력과 예견력을 가진 자로 간주한다.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라".

 

예언의 영은 원수들이 판단해도

점술의 영보다 능가한다는 데 주목하자.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기술에 대한 공정한 시합에 따라 얻어진 판정이었다.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