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애받는 다니엘
성 경: [단 1:8-16]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 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4)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6)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우리는 다음 사실을 살펴보면 더욱 많은 만족을 얻게 된다.
Ⅰ. 다니엘은 요셉이 전옥(典獄)에게 총애를 입은 것처럼,
(창 39:21 이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환관장에게 총애를 받았다.
(9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그는 환관장에게 긍휼을 얻었다. 물론 다니엘은 총애받을 만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재주와 싹싹한 성품은 환관장의 눈에 들었을 것이다.
그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였다.
(9:23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알리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환상을 깨달을지니라).
그러나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의 장점 때문에 호감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은사임을 생각하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이다.
호감을 얻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그리고 그들이 선한 이해를 얻는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이다.
시편 말씀은 여기서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저희로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 (시 106:46).
젊은이들은 호감을 얻는 길이 충실함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Ⅱ. 다니엘은 자기 신앙을 계속 견지하였다.
갈대아인들은 그의 이름을 고쳤지만, 그의 본성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그들은 자기들 좋은 대로 그 이름을 고쳐 불렀지만
다니엘은 여전히 참 이스라엘인의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는 왕의 진미나 왕이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리라고 굳게 결심했다.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그는 그런 것을 입에 대지도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다니엘이 자기 의사와 이유를 자기 동무들에게 전달했으므로
그들은 일치해서 꼭 같은 결심을 한 것 같다.
(11절 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대적의 감정이나 괴팍함, 혹은 심술에서가 아니라, 양심의 원칙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 자체가 불법적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1. 그들은 그것이 죄가 될까봐 미심쩍어하였다.
돼지고기처럼 그들의 율법에 명백히 금지된 음식도 때때로 나올 터였다.
아니면 그들은 그 음식이 우상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진 것이거나
우상의 이름으로 축사된 것일까봐 두려워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음식에 의해서 다른 민족들과 구별되었었다.
(레 11:45-46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46) 이는 짐승과 새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땅에 기는 모든 길짐승에 대한 규례니).
그리고 이 경건한 젊은이들은 낯선 이방 땅에 있었으므로
특수 민족으로서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비록 귀족으로서의 위엄을 지킬 수는 없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으로서의 긍지는 잃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었던 것이었던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에 있을 때,
그들은 바벨론의 죄에 동참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주목하자.
그들 앞에 이 음식을 내놓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같이 보였다.
포로이기에 그들은 얻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먹어야 했고
주인의 뜻에 거역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만약 그 명령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릴 경우,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야 했다.
비록 하나님의 섭리가 "잡아 먹으라" 고 할지라도
양심은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니이다"(행 10:14)라고
까지 하는 것이다.
2. 비록 그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을지라도, 범죄의 원인이 될까봐
그들은 자신을 경계하였다.
그들은 그런 진미로 식욕에 탐닉함으로써
죄스럽고 욕정적으로 되며 바벨론인의 쾌락을 사랑하게 될까봐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저들의 진미를 먹지 않게 하소서" (시 141:4)라는 다윗의 기도를 배웠고,
"그 진찬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간사하게 베푼 식물이니라" 라는
솔로몬의 교훈(잠 23:3)을 배웠다.
그들의 결심은 이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감각의 기쁨을 갈망하거나 즐기는 일에는 죽은 자같이 되고,
거리를 두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모든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칭찬할 만한 일이다.
지혜와 경건에 뛰어나려는 사람들은 늦기 전에
"몸을 억제하여 복종시키는" 훈련을 배워야 한다.
3. 그들은 고량진미가 예루살렘이 곤란을 겪고 자기들이 포로가 된
이 때에 적합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술잔에 담은 포도주를 마실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요셉의 재난을 이토록 슬퍼하였다.
비록 그들의 현관에는 귀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들이 이처럼 비천하게 된 때에 왕의 진미를 먹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겸손케 하는 섭리 아래에서는 겸손해지는 것이 우리에게 어울린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나를 나오미라고 칭하지 말고 마라라고 칭하라" (룻 1:20).
재난이 주는 은총을 생각해 보자.
이 젊은이들이 포로로 되어 갔으면서도 왕의 진미로
자신을 더렵히지 않으려고 했던 반면에
예루살렘에 남은 방백과 귀족들은 부패하여 우상에게 제사한 물건으로
몸을 더럽히고 있었음을 예레미야의 설명에서 알 수 있다.
고난의 심연에서 고결함을 보존하는 사람들이,
형통의 정점에서 불의를 보존하는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훌륭한가!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다니엘이 행한 위대한 일은
죄의 오염으로 자기를 더럽히는 일을 피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외면적인 곤란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결심을 하고 난 다니엘은
"왕의 환관장에게 자기를 더렵히지 않게 하기를 구했다."
그는 몸을 더럽히기를 강요당하지도 않으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유혹당하지도 않으려고 이렇게 사정한 것이다.
또한 미끼가 자기 앞에 놓이지 않게 하려고 했다.
그는 자기 몫으로 정해진 왕의 진미와 붉은 포도주를 보게 하지 말아달라고 구했다.
유혹을 가까이 접근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목에 칼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보다(잠 23:2)
유혹을 멀리하는 것이 더 안전한 것이다.
(잠 23:2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우리는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는 자들을 이용해서
죄를 짓지 않도록 조처하는 것이 그들의 호의를 최대한 활용하는 길이다.
Ⅲ. 하나님은 놀랍게도 여기에서 그를 인정하신다.
다니엘이 왕의 진미와 술을 먹지 않게 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
왕의 환관장은 만일 그와 그의 친구들이 지정한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동무 소년들만 못하게 될 경우
자기가 왕의 진노로 효수당할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반대하였다.
(10절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다니엘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키면서 시험해 주기를 간청한다.
그는 나아가서 부하 감독관에게까지 시정해 본다.
(13절 "당신의 종들을 열흘동안 시험하소서. 그 동안에 채식을 먹게 하고 술대신 물을 먹게 하여 우리가 얼마나 더 건강해지는가를 보소서").
사람들은 그들이 시험해 보지 않는 한,
소박한 음식과 식이요법이 몸의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믿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그들은 시험대에 올랐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열흘을 채식과 물로써 살았다.
이것은 귀한 집의 젊은이들에게는 조악한 식사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것을 탄원하긴 커녕 반대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열흘이 지난 마지막 날에 그들은 다른 소년들과 비교되었고,
그들은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보다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15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절제한 결과라고 하겠지만
결국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축복은 채소를 먹는 것이 살진 소를 먹는 것보다 낫게 할 것이다.
(잠 15: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것으로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않는다는 것이 나타난다.
만약 하나님이 말씀만 하신다면 채소와 물도 극상의 영양식이 될 것이다.
우리를 죄의 오염에서 순수하게 지켜 주는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보자.
죄스런 쾌락은 뼈를 썩게 하는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은 몸에 양약이 되며)골수로 윤택케 하고, 만족과 평안을 가져다준다.
(잠 3: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Ⅳ. 감독하는 자는 그에게 호의를 보였다.
그는 그들의 양심을 거스르면서 까지 먹도록 강요하지 않고
그들이 요구한 채소와 물을 주었다.
(16절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그들은 이 음식을 즐겼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한다고 해서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본 자들은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보잘 것 없는 것으로써 자제하고 만족한 위대한 본보기가 있다.
에피큐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에 따라 사는 사람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그러나 판단에 따라 사는 사람은 결코 부유하지 못할 것이다.
한창 때 이렇게 소박한 음식으로 절제한 이 소년들의 극기심은 놀랍다.
다음을 살펴보자,
1. 그들의 절제는 탁월한 봉사를 가능케 하는 데 기여하였다.
절제를 통해서 그들은 그들의 정신을 맑고 분명하게 유지할 수 있었고,
명상에 적합하게 되었으며 시간과 사고력을 굉장히 많이 비축하였다가
가장 잘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2. 그들의 절제는 그들을 견인분발의 인물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극기는 그들을 궁핍에 익숙하게 훈련시켰고,
자기부정과 금욕의 삶을 가능케 하였다.
또한 하나님께 죄를 짓느니 보다
차라리 사자굴과 맹렬한 풀무 불에 뛰어들 수 있게 하였다.
*메튜헨리의 주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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