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0일 금요일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讒訴)하니라

  

참소(讒訴)받은 세 사람 2

 

성 경: [3:8-18]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讒訴)하니라

9)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10)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모든 사람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11)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자기들의 결심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금 신상에 절하지 않겠노라고 대답한다.

 

(16-18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우리는 여기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백절불굴의 정신과 활달한 마음을 보게 된다.

우리는 이들을 세 소년이라고 부른다(실로 이들은 어린 사람들이었다)

(1:4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세 용사,

즉 세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가장 존재한 자 중 첫 삼인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삼하 22:8 이에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이들은 금 신상의 숭배자들을 향해 과도한 격분을 터뜨리거나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며 그들을 모욕하거나 능멸하지도 않았다.

또 경솔하게 시험을 억지로 떠맡거나 순교를 자청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불의 시험에 정식으로 불림을 받자 용기를 가지고 훌륭히 행동했다.

 

그것은 선한 명분을 위해 고난당하는 자에게 어울리는 행동이요. 용기였다.

이 우상을 만든 악한 왕도 이들 만큼 담대하지 못했다.

우상을 쳐서 증거한 이들은

왕을 폭군이나 우상 숭배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노여워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들의 침착과 냉정은 본받을 만하다. 그들은 침착하게 답변한다.

 

1. 그들은 은혜와 아량으로 죽음을 멸시하며 자기들이 처한 곤경을 일소에 부친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께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그들은 음흉하게 대답을 거부하거나 입을 다물고 서있지 않았다.

그들은 이 일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왕에게 말했다.

그들은 왕의 요구에 따르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왕은 그들이 따르지 않는다면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므로 사건은 이미 확정된 터에

논란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본문은 이렇게 읽는 게 더 낫다.

 

"우리는 왕께 대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답변을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준비를 하고 나왔습니다."

 

(1) 그들은 그 일에 대해 심사숙고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왕의 명령에 따라야 할지 않을지 생각하느라고 망설이지 않았다.

그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사람들은 그들이 결심하기 전에 잠깐 동안 숙고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을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계명으로 죄와 의무가 즉시 결정되고

무엇이 옳은지가 명약관화한 터에 생사를 숙고할 필요가 없었을까?

 

죄를 피하려고 하는 자들은 유혹과 담판해서는 안 된다는 데 주목하자.

우리를 유혹하거나 위협하는 것이 명백한 악일 때

우리는 이성보다는 분노와 혐오감으로 그것을 배척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셨듯이 서서 그 유혹을 생각하지 말고

"사탄아, 물러가라" 고 말해야 한다.

 

(2) 그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궁리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변자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도록 호출된 이상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10: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그들은 직접적인 대답을 요구받았을 때 회피적인 대답을 궁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왕의 비위를 맞추는 듯한 인상도 주지 않는다.

그들의 답변에는 아첨으로 보이는 말이 전혀 없다.

그들은 참소자들 처럼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란 말로 시작하지 않는다.

기교적으로 환심을 사려는 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말이 명백하고 솔직하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는 왕에게 대답하려고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흠정역).

 

의무를 자기의 주된 관심사로 삼는 자들은

사건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2.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했다.

 

(17절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들로 하여금 죽음을 초개처럼 여길 수 있게 한 것도

바로 이런 확신과 신뢰였다.

그들은 온갖 두려움과 위세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을 멸시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바로 그 믿음으로써 그들은 죄짓기보다 고난을 택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다.

 

그들은 믿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분을 바라본 때문이다.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만일 그럴 것이면, 만일 우리가 곤경에 처한다면,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는다 하여 풀무불에 던짐을 당해야 한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1)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진 않지만 무신론자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며

우리는 그를 충실히 선봉 합니다."

 

(2) "우리는 이 하나님을 섬깁니다. 우리는 그의 명예를 위해 헌신합니다.

우리는 그의 일에 종사하고 우리의 보호와 공궤와 보상을 그에게 의지합니다."

 

(3) "우리는 이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사야 어떻든 우리가 풀무 속으로 던지우지 않도록

방지하거나 아니면 풀무 가운데서 우리를 구출하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끝까지 후원해 주실 능력이 있으시며

그들을 대항하여 무장한 모든 괄세를 통제하고 위압하실 능력이 있으시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하나님이 그런 능력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주여, 주께서 원하시면 할 수 있나이다."

 

(4)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내실 것이라고 바랄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토록 많은 우상 숭배자 앞에서 그들을 구출하신다면

하나님의 위명이 여간 높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느부갓네살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고 도전한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자기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원수의 모독을 침묵시키기 위해서도 기적을 나타내신다.

 

(74:18-22 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19)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원히 잊지 마소서

20) 그 언약을 눈여겨 보소서 무릇 땅의 어두운 곳에 포악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나이다

21) 학대 받은 자가 부끄러이 돌아가게 하지 마시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주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소서

22) 하나님이여 일어나 주의 원통함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

 

32:27 혹시 내가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함이라).

 

"그러나 하나님이 설사 우리를 극렬한 풀무를 가운데서

구출하지 않으신다고 하더라도 왕의 손에서는 건져내시리이다".

 

느부갓네살은 다만 육체를 괴롭히고 죽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뒤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면 그들은 느부갓네살의 영향을 벗어나며 그의 손에서 구출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 동안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하시리라는 확신과

하나님께 대한 선한 생각은 고난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주목하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신다면

우리는 사람이 우리에게 행할 일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우리에게 아무리 악한 일을 자행한다한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망으로부터 또는 사망 중에서 구출하실 것이다.

 

3. 그들은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자기들의 원리를 고수하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18절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풀무불에서 구출하시는 것을 적합치 않다고 생각하셔서

(그가 구출하실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만)

 

우리를 왕의 손에 떨어지게 하시며 왕의 손에 의해 엎드러지게 하시더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들은 자기의 신앙 고백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왕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왕께 굴복하지도 않을 것을 맞대 놓고 직접 고했다.

그들이 만일 혈육과 상의했더라면

왕께 순응하라는 속삭임을 많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때는 죽음 곧 사망을 달리 피할 길이 없던 때가 아닌가!

 

(1) 그들은 하나님을 포기하거나 하나님 예배를 단념하라고 요구받지 않았다.

 

이 금 신상을 신으로 인정하는 것은

구두 고백이나 선서가 요구된 것도 아니요

단지 엎드려 절하라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공경심을 남몰래 간직한 채

이 일을 행할 수도 있었다.

 

림몬의 당에서 절한 나아만처럼,

 

(왕하 5: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이들도 내심으로는 이 우상 숭배를 혐오하면서 절할 수도 있었다.

 

(2) 그들은 우상 숭배의 길로 떨어지지 않을 터였다.

 

그들에게 요구된 것은 단 한 번의 행동뿐이었다.

그것은 단 일 분이면 끝날 행동이었다.

위험만 지나고 나면 그들은 나중에 이에 대한 유감을 표시할 수 있었다.

 

(3) 이 일을 명한 왕은 절대적인 권력의 소유자였다.

 

그들은 그 절대권 아래 있었다.

그들은 왕의 신하인 동시 포로이기도 했다.

설사 경배한다고 해도 그것은 순전히 강압과 위협에 의한

타의적 행동이어서 우상 숭배에 대한 변명이 될 터였다.

 

(4) 왕은 그들의 양육자요 은인이었다.

 

그는 그들을 키우고 가르쳐서 중용하였다.

비록 우상 경배 행위가 지나친 양보 즉 양심의 양보가 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그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순종해야 마땅하였다.

 

(5) 그들은 이방 나라로 쫓겨난 몸이다.

 

이렇게 쫓겨난 자들에게는 그 추방이 사실상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삼상 20:19 너는 사흘 동안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기질상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려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로 간주되었고

그것은 심판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다.

 

(4:28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그들의 풍조에 휩쓸린다고 해도 그들이 정상 참작을 받은 것은

그 흐름이 너무 세찼기 때문이다.

 

(6) 그들의 왕들과 방백과 조상들 그리고 제사장들조차

하나님의 전에 우상을 세우며 거기서 우상을 경배하지 않았던가?

 

우상에게 절할 뿐만 아니라 제단을 세우며 향을 피우며

희생을 드리다 못해 자녀까지도 바치지 않았던가?

 

열 지파 모두가 오랫동안 단과 벧엘에서 금 송아지 신들을 섬기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이들이 자기 열조보다 신앙을 더 엄격히 지킬 것인가?

 

Com munis error Facitjusjus - 즉 모든 사람이 행하는 것은 옳은 일임에 틀림없다.

 

(7) 그들이 만약 왕의 명령을 따른다면 자기 목숨과 지위를 보전할 뿐만 아니라

바벨론에 있는 동포들에게 굉장히 많은 도움을 오래도록 줄 수 있는 터였다.

 

그들은 젊은이였고 자라나는 세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세상적 설득에 대답하고 그들을 침묵시키는 데는

하나님의 단 한 마디 말씀이면 족하다.

 

"너는 아무 형상이든지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

 

그 세 사람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죄짓느니 보다 고난을 당해야 하며

선한 것을 얻기 위해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불의(不義) 가운데에서 살아나느니 차라리 성실 속에서 죽겠다고 결심한다.

 

고국에 남아있는 동포들이 선택에 의해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던 반면,

바벨론에 있던 이 세 사람은 강제에 의해서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은 우상의 나라에서 우상 숭배를 열렬히 반대하였다.

 

실로 이 모든 것을 참작하면

풀무불에서 그들을 구출한 것이 자연계의 큰 기적이듯,

이 죄 많은 우상 숭배로부터 그들을 구출한 것은

은혜의 세계에서 큰 기적이었다.

 

이들은 이전에 왕의 진미로 자기들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용감히 결심한다.

보다 작은 사례에서 자기 부인으로 하나님과 의무에 확고히 집착하면

보다 큰 사례에서도 그와 같이 할 수 있는 준비와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는 데 주목하자.

 

이 점에서 우리도 어떤 구실로든 우상을 숭배하거나

우상 숭배자의 연합을 운위하지 않기로 결심해야 한다.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