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2일 일요일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풀무 속의 세 사람

 

[3:19-27]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 하나님의 신실한 세 종은 풀무불 속으로 던짐을 당한다.

 

느부갓네살은 참 하나님께 대해 많이 알고 또 많은 것을 인정했었다.

그러므로 비록 그가 교만과 허영심에서

금 신상을 건립하여 경배를 강요했다고 하나

이 청년들의 말에 그가 새삼스레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전에 이들이 자기의 모든 박사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을 발견했었다).

 

최소한 그는 이들의 우상 숭배 거부를 이유 있다고 생각해 주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1. 그들의 말에 각성하긴 고사하고 그는 열화같이 노하고 한층 난폭해졌다.

 

(19절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그는 분이 가득하고 그들을 향해 낯빛을 변했다.

 

사람이 격정에 빠지면 빠질수록 더 난폭해지고 심지어

안색이 변하여 지혜있고 이성있는 사람에게 큰 수치가 된다는 것을 주목하자.

 

느부갓네살은 이렇게 진노함으로써

옥좌에 앉은 군주의 위엄과 재판석에 앉은 재판관의 존엄을

그물에 걸린 들소의 무서운 분노와 바꾸었던 것이다.

 

격노한 자들이 거울 속에 바친 자기 얼굴을 보기만 한다면

자기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며 그 모든 노여움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게 될 것이다.

 

2. 이들의 자질과 존귀한 직책을 참작하여 처벌을 완화시키기는커녕

느부갓네살은 풀무를 최고로 가열시키라고 명령했다.

 

즉 그는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에 다른 행악자의 처형시보다 칠배나 뜨겁게 하라" 고 명령했다.

 

그는 연료를 평일보다 칠 배나 더 많이 넣으라고 명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죽음을 더 고통스럽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고통을 보다 빨리 끝내게 할테지만

여기에는 왕이 이들의 죄를 다른 사람들의 죄보다

칠 배나 더 악한 것으로 간주하여 그들의 죽음을

보다 치욕스럽게 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성난 폭군의 미련한 실례 속에서 영광을 이끌어내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일이

그들의 죽음을 더 고통스럽게 하긴 커녕,

그들의 구원을 보다 혁혁하게 해 준 까닭에서이다.

 

3. 왕은 이들을 옷 입은 채 결박하여 극렬한 풀무불 속에서 던지라고

명하였고 그 명령은 그대로 시행되었다.

 

(20-21절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그들을 결박한 것은 몸부림치거나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옷 입은 채 결박한 것은 왕의 명령이 급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이들을 보다 서서히 그리고 차츰차츰 태워 죽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한 것은 기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들의 옷조차 그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적이 더욱 많은 평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왕은 마치 그들의 죄에 대한 혐오감으로

그들의 옷도 그들과 함께 태워버리려는 듯이

그들을 고의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였다.

 

이런 죽음은 얼마나 두려운가!

 

(23절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생각만 해도 살이 떨리는데 그런 자를 붙잡다니 얼마나 두려운가!

 

폭군이 그런 형벌을 내릴 만큼 강퍅하다는 것과,

신앙 고백자들이 하나님께 득죄하느니 이런 형벌을 감수하겠다고 할 만큼

담대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둘째 사망은 어떠한가?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저 풀무 속으로 던져버리고 불과 유황불로 영원히 타오르는

불 못으로 던지는 둘째 사망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느부갓네살이 자기 풀무를 최고로 뜨겁게 달군다고 해 보았자

그 속에 던짐을 당하는 자의 고통은 몇 분이면 끝이 날 것이다.

 

그러나 지옥불은 고통만 줄 뿐 죽이지는 않는다.

저주받은 죄인의 고통은 보다 격렬하여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며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한 자는 쉼을 얻지 못하며

중보도 얻지 못하고 고통의 중단도 없을 것이다.

 

(14:10-11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이에 반해 바벨론의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았다고 해서

풀무불에 던짐을 당한 세 사람의 고통은 곧 끝날 터였다.

 

4. 이들을 결박하여 풀무 속으로 던진 사람은

자신이 불꽃에 타죽거나 질식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섭리였다.

 

(22절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이 세 사람을 빨리 불 속에 집어넣되

효과적으로 틀림없이 집행하라는 왕의 명령은 엄했다.

용사들은 이 세 사람을 풀무 가운데 떨어지도록 하기 위해

풀무 입구까지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은 너무 급한 나머지 자기를 보호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

다니엘에 관한 외경에 의하면 화염이 풀무 입구에서 49 규빗이나 치솟았다고 한다.

 

아마 하나님께서 바람을 명하여 불길이 직접 그 용사들에게

맹렬히 닿아 그들을 질식시켰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피해 입은 자기 종들을 위해 신원하시며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에게 복수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범죄 행위 그 자체에서 뿐만 아니라

그 범죄 행위로써도 박해자들을 벌하셨다.

 

그러나 이들 용사들은 잔혹한 일의 하수자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는 더 큰 죄를 범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 용사들은 부당한 명령을 집행했으므로 화를 입어 마땅하다.

이들은 아마 왕의 명령을 쾌히 집행하고 이 일에 종사하게 됨을 기뻐했을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나중 계산을 위해 예비된 셈이었다.

 

교만한 폭군들이 벌 받을 날은 오고 있다.

그 날에는 그들이 범한 잔혹 행위 때문에 벌 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잔혹한 일에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한 데 대해서도 벌 받게 될 것이다.

 

 

. 하나님이 이 세 신실한 종들을 풀무에서 구출하심.

 

이들이 삼키는 불길 한 가운데로 던짐을 당했을 때,

우리는 틀림없이 그들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으며

그들의 뼈가 재가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게 된다.

 

1. 느부갓네살은 그들이 불 속에 거닐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는 놀라 급히 일어났다.

그의 판결을 집행하던 자들의 죽음이 그를 놀라게 한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다음 차례는

느부갓네살 자신일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는 설명할 수 없는 모종의 느낌을 받아 놀라서 급히 일어났을 것이고,

그 세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보려고 풀무로 갔을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에 대해 마음이 극히 강퍅한 자들을

놀람으로 치실 수 있다는 데 유의하자.

 

영혼을 지으신 분은 자기 칼로 영혼에 다가가게 하실 수 있으시며

강대한 폭군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경악한 가운데 그는 자기 주위의 모사들을 불러 묻는다.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 일은 왕의 명령뿐만 아니라 중신회의의 결정에 의해서도 시행된 듯하다.

그들은 왕이 행하도록 명령한 일에 동의함으로써

죄와 비난을 왕과 함께 받으려고 했으리라.

 

그들은

"왕이여, 옳소이다. 우리가 그 일의 집행을 명령했고 그 일은 실시되었나이다" 라고

대답했다.

 

왕은

"그렇지만 내가 풀무 속을 들여다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가운데 다니는구나!“

라고 말한다.

 

(25절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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