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 입다의 이야기 2
사사기 11장 1-40절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2)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4)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 오려고 돕 땅에 가서
6)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8) 길르앗 장로들이 대답하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게 함이니 그리하면 우리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본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
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반드시 행하리이다
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13)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취한 연고니 이제 그것을 화평히 다시 돌리라
14)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를 보내어
15)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6)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17) 이스라엘이 사자를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컨대 나를 용납하여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 보내었으나 그도 허락지 아니함으로 이스라엘이 아데스에 유하였더니
18)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둘러 행하여 모압 땅 동편에서부터 와서 아르논은 모압 경계이므로 그 경내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19)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용납하여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20)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뿐 아니라 그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2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매 이스라엘이 쳐서 그 땅 거민 아모리 사람의 온 땅을 취하되
22)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사람의 온 지경을 취하었느니라
2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사람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가하냐
24)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
25)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26)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향촌들과 아로엘과 그 향촌들과 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지 삼백 년이어늘 그 동안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나
28)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29)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들에게로 나아갈 때에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게 붙이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하여금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37) 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38) 이르되 가라 하고 두달 위한하고 보내니 그가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40)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우리들은 입다의 경솔을 책하기 전에, 먼저 자기를 그의 지위에 놓고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때는 그의 사사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나라 위해, 하나님 위해, 더구나 자기는 하나의 무명 무속의 무사(용사 a masterless warrior), 창기의 아들이라 해서 크게 천시되던 자, 그가 어찌 이 대임(大任)을 감당할 수나 있었겠습니까.
그가 만약 일보라도 그르치는 때면, 국가는 멸망의 심연으로 빠져들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그는 어떠한 희생을 지불해서 라도, 이 전쟁에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이때에 있어서의 저 입다의 심정을 미루어 헤아리면서, 동정의 눈물을 금치 못합니다.
위에서의 능력은, 그의 몸에 더해졌습니다. 서원은 여호와 앞에 세워졌습니다.
이제 입다의 용기는 평일보다 백배하여, 그는 맹렬히 암몬 사람의 진을 쳐들어갔습니다.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32-33)’고 있습니다.
살벌한 기사를 좋아하지 않는 성서 기자는, 이 경우에 있어서도, 이것 이상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기사는 이것으로 족합니다.
잘랐다든가, 찔렀다든가, 아우성쳤다든가, 부르짖었다든가 등의 피비린내 나는 것은,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사기처럼, 전쟁에 대하여 많은 것을 기록하고 있는 글에서까지도, 성서는 전쟁 그것에 관해서는, 가능한 한 침묵을 지키며, 필요 이상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성서가 성서 된 연유(reason)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대승리로써 끝났습니다. 강적은 정복되었습니다. 백성의 자유는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용사는 개선의 영광을 안고 그 집으로 귀환했습니다.
‘월왕구천(越王句踐), 오를 깨치고 귀환하니 의사, 환가하여 모두 금의’
이 세상의 영예 중에, 개선의 영예보다 나은 것 없습니다.
입다는 이제 암몬인의 왕을 깨치고서 금의를 입고 미스바에 있는 그 집으로 귀가 했습니다.
그런데 보시라. 이 무슨 일이랴!
먼저 첫째로, 그의 집을 나서서 그를 영접한 자는, 그의 딸이었습니다.
딸은 소고(북, 장구 a drum)를 가지고, 춤을 추면서, 그 개선의 아버지를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입다의 무남독녀였습니다.
아아 운명! 이를 본 입다의 마음은 순식간에 환희의 하늘에서, 비애의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는 그의 옷을 찢었습니다.
‘내 딸아’하고 그는 외쳤습니다.
‘너는 실로 나를 망하게 했구나. 너는 내 화근이 되었구나-일역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중의 하나로다-한글역)하고,
그는 계속하여 말했습니다.
아아, 어찌합니까! 서원의 말을 이미 해 놓아, 이제는 철회할 길 없고, 그는 그의 무남독녀를 번제로 여호와 앞에 드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아, 고가의 승리, 적을 깨치고 나라를 구하고서, 그 대가로서 무남독녀를 바치지 않으면 안 되나니 라고요. 이때의 입다의 마음은 산란해져 실오라기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로(과연) 이스라엘 국사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아버지에게서 이 서원한 이야기를 듣고,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아버지 놀라지 마세요.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서원을 세웠사오면, 그와 같이 내게 하여주셔요. 하나님은 아버지를 도와 아버지의 적인 암몬사람을 이기게 하였습니다(36-)일역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한글역)고.
씩씩한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의 적에 승리한 것과 그녀의 나라의 구원을 듣고, 그녀의 몸에 임한 큰 재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기쁘게 아버지와 나라의 희생(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제단 위에 드린 바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녀는 오직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죽음의 준비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무튼 이 일을 내게 용서해 주셔요. 제발 2개월 동안 내게 여가(시간;기간)를 주셔요.
나는 그 동안에 내 동무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내가 처녀로서 종신함을 슬퍼하려 합니다(37-)-일역
’(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한글역)고.
그리고 아버지의 허가를 얻어 산으로 가서, 두 달 된 후에, 그녀의 집으로 돌아오니,
‘아비가 그 서원한대로 딸에게 행(했다)(39-)’는 것입니다.
아마도 서원한대로 입다는 그의 딸을 바쳤으리라는 것입니다.
잔혹하다면, 잔혹입니다. 옛날 아브라함은, 그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하여, 하나님께 드리려는 그 찰나에, 하나님께서는 한 마리의 양을 주시어, 이로 하여금 이삭을 대시케 하신 일이 있습니다. (창세기21장).
하나님은 어찌하여 같은 수단으로써 여기서 입다의 딸을 구원하지 않았을까요?
인신 헌제(a human sacrifice)는, 성서가 엄금하는 바입니다.
입다가 만약 여기서 이 일을 했다고 하면,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성서 주해자는 말합니다.
입다는 여기서 문자대로 그의 딸을 번제로써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라, 옛날 아브라함의 예에 따라, 어린양이든가, 송아지로써 딸을 대신케 하여, 딸의 생명은 보존하고, 딸로 하여금 종생 동정녀로서, 하나님의 성전에 쓰이게끔 하였다고요.
혹은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39절을 그대로 해석할 때, 이것을 문자 이외에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입다는 그의 서원대로, 그의 딸의 몸을 처분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말한 대로, 서원 그것이 이미 잘못이었던 것입니다.
그 성취는 조금도 이상히 여길 것이 못됩니다. 우리들은 입다의 미신을 동정하기로 하십시다. 그의 얕은 생각(imprudence)을 책 하십시다.
그렇지만, 그의 성실을 귀히 여기고, 그의 뜻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번제의 사실은 어떻다 해도, 희생(a sacrifice)의 사실은, 이를 가릴 수(은폐할 수)는 없습니다.
입다는 여기서 개선의 귀로에 있어서, 그의 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그의 뽐내던 마음은 낮추어지고, 자랑하려던 마음은, 낮추어지고, 자랑하려던 마음은 겸손해졌을 것입니다.
입다는 이때, 참된 영예라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어서, 흐려지는 일 없는 기쁨, 부족함이 없는 성공, 눈물 없는 명예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입다는 유랑의 몸에서 일약 일국의 수령이 된 때에, 보상하려 해도 보상할 수 없는 손해에 조우한 것입니다.
(12:7 입다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그러나 6년의 영화는 그에게 있어서 결코 비애 없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는 종생, 개선 당일의 비극을 잊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암몬 사람의 왕을 노려보던 용사의 눈은, 종종 슬픈 희생의 사실을 생각해 내어, 뜨거운 눈물에 젖었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때때로, 길르앗의 수령이 되기보다, 돕 땅에서 그의 무남독녀와 함께 은신하여, 행복한 날을 종생하기를 원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인생 최대의 수확물은 아닙니다. 의무는 행복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의무 때문에, 우리들은 때때로 행복을 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무 때문에 입는 손실은, 결코 손실이 아닌 것입니다.
입다는 그의 행복을 희생하여, 그의 나라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입다의 딸은, 그녀의 생명을 희생하여, 그녀의 아버지의 마음을 거룩하게 했습니다.
희생에 희생, 인생은 희생입니다.
희생 없이 인생은 무의미합니다.
행복은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희생이야말로 인생의 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입다의 고통이 필요했고, 그리고 입다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딸의 죽음이 필요했다면(그리고 나는 필요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성호)을 찬양할 것입니다.
입다는 무익하게 고생하지 않고, 그의 딸은 무익하게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여 사람과 나라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38-40)’고 있습니다.
단순히 애곡의 표창으로 볼 때, 이 규정은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감정만의 애곡은 아니었습니다. 귀한 주의가 포함되어 있는 애곡입니다.
입다의 딸은 나라 위해, 또 나라 위해 싸운 그녀의 아버지 위해, 그 처녀의 몸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해마다 그녀의 죽음을 기억하여 이스라엘의 딸들은 귀한 희생의 정신을 기른 것입니다.
성서에 실린(기재된) 많은 아름다운 이야기 중에, 입다의 그의 무남독녀의 이야기는, 무량의 감개를 우리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 내촌감삼의 (1912년 6월 ‘성서지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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