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30일 월요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오라

  

산 돌이신 예수

 

성 경: [벧전 2:4-8]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벧전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 저자는 본문에서 '버린''택하심을 입은'을 대조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배척당한 진정한 메시야임을 드러낸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는 예수를 메시야로 영접하여야 할, 자칭 건축자들인 유대인들이 오히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실을 가리킨다.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9: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예수께서는 비록 유대인들에게는 배척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지라도,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았다.

 

'택하심을 입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을지라도, 하나님께는 존귀함을 받았음을 시사한다.

 

(2:22-24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영광을 가리킨다.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2: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무지와 불순종으로 인해 배척 당하셨으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높이셔서 교회의 영원한 기초가 되게 하셨다.

 

'산 돌'은 실제로 유대인들 사이에 메시야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모퉁이의 머릿돌

 

(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생명수의 반석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기초석

 

(고전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심판의 돌'로 비유되었다.

 

(2:34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이러한 비유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이신 예수를 비유하는 '산 돌',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한 사실이며 예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교회의 초석이 되심을 시사한다.

 

한편 '나아와'는 현재 분사로 사용되어 그리스도인이 예수께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서 한 번만 나아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끊임없이 나아와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반석에서 물을 마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앞에 나아올 때는 언제든지 그로 말미암아 신령한 물을 마실 수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본절은 예수께서 비록 사람에게는 버림받았을지라도 메시야로서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의 구원의 반석이 되심을 시사한다.

 

 

[벧전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너희도 산 돌같이 - 베드로는 앞절에서 그리스도를 산 돌에 비유하였으나 본절에서는 산 돌을 그리스도인들에 비유하고 있다.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 '신령한 집'은 저자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을 제사직에 연결시키는 것으로 보아 성전 곧 교회를 의미한다.

 

(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56: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한편 '세워지고'는 예수께서 직접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된 동사와 동일하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단지 교회에 나아올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에게 나아와서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산 돌이 되며 거듭난 자들과의 연합을 통해 교회를 이루게 됨을 강조한다.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베드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제사장에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가진 산 돌이라는 사실에서 진일보하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사직을 수행하는 제사장이 되었음(만인 제사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제사장적 역할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이어야 했던 것을(19:6) 이루지 못했으나,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교회가 그 이상(理想)을 실현했으며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그 직무를 감당하게 되었다.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벧전 2: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경에 기록하였으되 - 베드로는 앞서 진술한 자신의 가르침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증명한다.

 

이제까지 논증한 진술 곧 그리스도께서 산 돌이신 것과 그에게 나아가는 자도 누구든지 산 돌인 것이 성경 안에 이미 확증(確證)된 사실임을 시사한다.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9: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 본절은 사 28:16의 인용이다.

 

모퉁이 돌은 건축물의 벽과 벽 사이를 잇는 건물의 기초요 중심되는 돌이다.

 

이것은 '모퉁이 돌'이 벽과 벽을 연결하여 건축물을 지탱하는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퉁이 돌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도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셔서 교회를 이루심을 시사한다.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한편 '시온에 두노니'는 요긴한 모퉁이 돌로서의 그리스도의 독특한 위치가 하나님에 의하여 이미 확정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독특한 지위가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하며,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된다.

 

(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9: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 '저를 믿는 자는 다급한 일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의미로 두려움과 공포로 부터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 견고히 서게 됨을 나타낸다.

 

 

[벧전 2:7-8]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베드로는 본문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비교하여 각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어떤 가치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 그리스도는 자신과 연합한 그리스도인에게 크나큰 영광이요 보배가 되심을 시사한다.

 

한편 베드로는 믿지 않는 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지니는 가치에 대해 두 가지 인용문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1)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 본문은 시 118:22의 인용이다.

 

(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버린'은 문자적으로 '거절당한'이란 의미로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그리스도께서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거부당하신 사실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되었을 뿐만 아니라,

 

(118: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예수께서도 친히 그 예언을 확인하셨다.

 

(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20:17-18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여 버렸으나, 하나님은 배척당한 예수를 영광의 자리로 높이셨다.

 

'퉁이의 머릿돌이 되고'는 사 28:16을 반영하는 것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심을 시사한다.

 

(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12: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0:17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2)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 본문은 사 8:14의 인용이다.

 

(8:14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부딪히는 돌'은 길가에 있는 불필요한 돌들처럼 보행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방해물을 암시하며, '거치는 반석'은 덫이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나 덫이 되며 심판의 돌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자체가 장애물이나 덫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믿지 않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불신앙 함으로 걸림돌이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덫이나 장애물'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들의 불신앙이다.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본문 역시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진술이다.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는 문자적으로 '순종치 않아 말씀에 넘어진'이라는 의미로 믿지 않는 자들이 넘어지는 원인이 순종치 않는 불신앙에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에서 '이렇게''넘어지나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문은 믿지 않는 자들의 불순종에 대한 형벌이 예정되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