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8일 토요일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미래의 산 소망

 

성 경: [벧전 1:3-9]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찬송하리로다 - 전통적으로 내려온 유대인의 송영에서는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일 경우, 술어 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표현하였다.

 

베드로는 아마도 이러한 전통을 따라 표현한 듯하다. (Robertson).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 성부 하나님은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배하시는 대상이며,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Michaels).

 

한편 '그 많으신 긍휼대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시고 아버지가 되시는 근원을 시사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구원하신 것은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을 따라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할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한편 '거듭나게 하사'는 거듭남의 사건이 과거의 역사적인 사실임과 동시에 현재에도 구체적인 사실로 중명됨을 시사한다.

 

베드로는 본서에서 예수께서 이미 사용하신 단어를 다시 사용하므로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고자 했던 거듭남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3:3-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남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소유하신 생명과 같은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 '산 소망'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된 결과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새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으로 4절의 '기업'이나 5절의 '구원'을 가리킨다.

 

'산 소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이미 마련한 것이다.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사나니 - '기업'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레로노미안'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를 정리해 보면 대략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 하나님 나라(25:34; 5:5).

(2) 영생(19:29; 10:17; 10:25).

(3) 구원(1:14).

(4) 약속(6:12).

(5) 축복(3:9).

 

이러한 기업은 '산 소망'과 연결된 것으로, 거듭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따라서 본절의 '기업'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로서 현재에 누리는 것이 아니라,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미래에 주어질 것을 가리키며, 이때 성령은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질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8-23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한편 베드로는 이러한 기업의 온전함에 대해 세 단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을 사용하여 설명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미래에 완전히 소유하게 될 '기업'이 지상의 것과는 달리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임을 시사한다.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 '하늘에'는 복음서에서 '하늘나라'와 연관될 뿐만 아니라 예수의 특정한 말씀, 즉 마 5:12; 6:19,20; 12:33과 연결된다.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질 기업이 영원할 뿐만 아니라, 전혀 손상되지 않으며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함을 시사한다.

 

한편 '간직하신 것이라'는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업을 마련해 두셨음을 시사한다.

 

 

[벧전 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 '말세에'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온전하게 성취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곧 파루시아를 가리킨다.

 

(8:18-25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파루시아 때 성취되는 '구원'은 앞서 언급된 '산 소망'(3), '기업'(4)과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얻어 향유하고 있는 구원의 실현 혹은 종말론적 차원의 완성을 의미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순례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공격하는 사단을 막아주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나타낸다.

 

종말에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완성 때까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는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 할지라도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므로 믿음 안에 거하여야 하며,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종말론적 구원의 완성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 '시험'에는 외부에서 다가오는 시험으로 상위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시련(test)을 의미한다.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런데 베드로가 언급한 '여러 가지 시험'이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암시하는가에 대하여 고전 헬라어에는 나타나지 않고, 마카비 시대와 신약 시대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마카비 시대에 일어났던 고난이나 신약시대의 예루살렘 멸망(A.D.70)을 예고한 듯하다고 주장한다. (Selwyn,Hort).

 

그러나 이러한 추측이 정확한지는 분명하지 않다. (Michaels).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 비록 현재에 고난을 당하여 근심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러한 고난은 '잠시 동안만' 있을 것이며, 그 후 종말론적 구원이 완성되는 파루시아 때에는 현재 당하는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기업이 기다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산 소망 가운데 기뻐할 수 있게 된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 베드로가 시련을 통한 믿음과 금을 비교하여 강조하는 바는,

 

(1) 참된 믿음은 변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2) 금이 불로 연단 받듯이 믿음도 시련을 통해 연단 받는다는 사실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강조점을 통해 고난 당하는 수신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 금이 불에 의해 제련되어 순수해지듯이 그리스도인 역시 시련을 통해 참되고 순수한 신앙을 소유하게 된다.

 

이 참된 신앙이 온전히 밝혀지는 날, 곧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순수하고 참된 신앙을 소유한 자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는 종말론적 보상 혹은 상급으로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기다리는 온전한 '구원'의 모든것을 나타낸다.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7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벧전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

 

베드로를 포함해 수신자 전체가 현재 계시하시는 예수를 보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수신자들이 비록 예수를 보지 못하나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장차 종말론적 보상으로 주어질 영광과 존귀와 칭찬을 현재 볼 수 없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한다.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구원이 지금도 실현 과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참된 믿음의 결과인 미래에 주어질 종말론적 보상은 영원하며 온전한 구원이기 때문에, 현재 믿음을 소유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주어질 상급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과 동일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