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성화(聖化)
성 경: [벧전 1:13-25]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 1: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 '급한 일을 당할 때 취하는 태도'로,
(출 12: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게으른 삶을 반성하고, 목표로 매진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Lenski).
예수께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여 종이 취해야 할 바른 자세를 말씀하셨는데,
(눅 12: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베드로가 동일하게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한 구원의 성취를 소망하는 가운데 긴장된 자세로 인내하며 주님을 기다리도록 권면하기 위함이다.
▶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온전히 근신하여'로 해석한다(Michaels, Bigg). 이 경우 '온전히 근신하여'는 '인내'를 강조한다.
(2)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번역하며 '소망'을 강조하는 것으로 본다. (Selwyn, Lenski).
이 두 가지 해석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가져다줄 은혜를 소망하면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마음을 가다듬고 언어나 행동에 있어서 조심하며 인내 가운데 살아야 한다. (Blum, Stibbs).
[벧전 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전형적인 셈어적 표현이다.
(막 2:1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눅 10: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특별히 셈족 언어에서 '자녀'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상속자'라는 뜻으로 자녀는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권리를 지닌다.
(2) '부모의 인격이나 성품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일 경우 누구의 자녀이냐에 따라 자녀의 인격이 결정된다(Selwyn).
이러한 언어적 배경 속에서 베드로는 수신자들을 향해
'불순종의 자녀'가 아니라,
(엡 2:2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은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순종의 자녀'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통해서,
(롬 1:5 그를 통하여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 가운데서 믿음으로 순종케 하나니;
16:26 이제 나타났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선지자들의 성경을 통하여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며 순종하는 마음을 보이고, 또한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자녀가 되어서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그 성품을 배워가기 때문이다(Michaels).
▶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 여기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ranfield,Selwyn).
왜냐하면 헬라어 단어 자체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의미하며, 바울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의 무지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이다.
(행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엡 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2) 혹자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ichaels, Bigg).
왜냐하면 베드로에게 있어서 '아그노이아'는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행 3:14-17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즉, 이는 이방인이었든 유대인이었든 간에 진정한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죽은 상태를 나타낸다. (Stibbs)
이러한 자는 사욕 즉 자연적인 충동에 사로잡혀(Michaels, Stibbs) 충동대로 방종한 삶을 산다.
그러나 영적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삶, 즉 욕망에 사로잡힌 삶을 버려야만 한다.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
'거룩한 자'는 70인역에서 하나님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칭호로서 '거룩한 자' 혹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나타난다.
(사 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12: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정결함과 도덕적인 완전함을 시사한다. (Blum).
이러한 하나님께서 수신자들을 과거에 처했던 어둠에서 광명한 빛으로 부르셨으며,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되라' 는 '거룩한 자가 되라'는 명령의 의미보다 '거룩한 존재이니 거룩함을 나타내라'라는 의미이다.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한편 '행실'에는 본서에서 '선한 행실',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선한 양심',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정결한 행위'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이것은 '거룩'이 하나님께로의 분리를 의미하나 일상적인 삶의 행동과 연관된 것으로서 세상에서 윤리를 실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벧전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
여기서 '기록하였으되'를 베드로가 인용한 본문은 레위기에 기록된 말씀으로,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살도록 요청받은 말씀이다.
(레 11: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20:26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게 살도록 요청받은 이유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당신을 닮아가도록 그들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구약성경의 이 말씀을 언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요청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복음 안에 산다 할지라도 율법과 무관하지 않으며, 오히려 율법을 완성한 사랑의 원리를 따라 윤리적 삶을 영위해야 한다.
[벧전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 '외모로 보시지 않고'는 편견에 사로잡혀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절대로 편견이나 불공평에 빠지지 아니하시고,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공의로운 심판자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구약시대에서는 생소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기인한 것이다.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눅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보살피시는 분'과,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재판장으로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가르치셨다.
(눅 18:1-7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베드로는 이러한 이해 속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아버지가 되셔서 그리스도인을 보살피실 뿐만 아니라, 공의로 판단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여 위로와 권면을 하고 있다.
▶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 '나그네로 있을 때'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지내는 삶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본향이 이 세상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시민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 세상은 영원한 삶을 영위하기 이전에 잠시 거쳐 지나가는 삶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거할 것처럼 안일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하나님이 원하는 악에서 떠난 거룩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벧전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 너희가 알거니와 - 이는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에 대해 언급할 때나 표준이 되는 가르침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관용구이다.
▶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 '망령된 행실'에는 유대인의 생활양식을 가리키기보다는 이방인의 생활양식을 의미한다(Blum).
더욱이 '망령된'의 헬라어 '마타이아스'는 이방 종교의 특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우상 숭배와 관련되어 사용된다.
(렘 2:5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행 14: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엡 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한편 '구속된 것'의 헬라어 '엘뤼트로데테'는 고대 로마의 노예 제도에서 비롯된 용어로 두 가지를 의미한다(Blum, Selwyn).
(1) 돈을 지불하고 사다.
(2) 속박에서 해방시키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수신자들이 구속받기 위해 치른 대가(對價)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금과 은'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밝힘으로,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신 구속 사역이 완전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
'어린양 같은'에는 침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킬 때 이미 사용한 표현이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께서는 유월절의 어린양과 같이 죄와 허물이 없으신 유일한 분으로서, 그의 구속은 보다 완전하고 귀한 것이다.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
본절은 전형적인 비교 구문인데, 베드로는 이 구문을 통해 '창세 전'과 '말세'를 비교하여 네 가지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1)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창세 전'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진실하게 진행되었다.(Michaels).
(2)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에 대해 '미리 알리신' 내용이 완전했음을 시사하며,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 사역이 일회적으로 완전했음을 시사한다. (Lenski).
(3) 내용상 '창세 전'은 메시야의 신성과 사역을 나타내며 '말세'는 구속과 부활의 증거를 보여준다. (Stibbs).
(4) 인간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인간의 타락이나 죄악도 하나님의 계획을 파기시킬 수 없음을 시사한다. (Michaels).
[벧전 1: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계시하셨으며,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자신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화해시켰기 때문이다.
(고후 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베드로는 본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해를 이룬 하나님에 대해 두 가지로 진술한다.
(1)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분이시다. 곧 예수의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근거가 됨을 시사한다.
(2) 영광을 주신 - 하나님께서 예수를 부활시키실 뿐만 아니라 영광을 주신 것은, 예수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도 미래에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보증해 준다.
(히 2: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 그리스도인에게 성취된 이러한 정결(淨潔)은 '진리'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
'진리'는 그리스도의 화육(化肉), 대속, 부활, 승천을 뜻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여 순종함으로 깨끗하여진다. 이렇게 진리를 통해 죄로 부터 온전히 깨끗해진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형제애를 나눌 수 있게 된다.
한편 '깨끗하게 하여'는 침례를 암시한다고 주장한다.(Blum).
왜냐하면 비록 '침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할지라도, '깨끗하게 하여'와 다음 절의 '거듭난'이 모두 완료시상으로 과거에 단회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 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서로 반목(反目) 상태였을지라도 회개하여 온전히 깨끗하여진 그리스도인은, 과거와는 달리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새로운 품성으로 서로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이면 행했어야 할 덕목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피차가 열정적으로 사랑하여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서로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요일 3:14-18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벧전1:23]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그리스도인의 거듭남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시 33:9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사 55:10-11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벧전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본절은 포로로 끌려가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는 말씀인 사 40: 6-8의 인용이다.
(사 40:6-8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베드로는 이러한 구약 본문을 인용하여 당시 핍박받고 흩어져 방랑하는 수신자들에게(1절) 위로될 뿐만 아니라,
모든 육체의 영광 즉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어질지라도 말씀은 영원하며, 말씀을 통해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인의 구원도 영원함을 강조하고 있다.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 본절은 사 40:8(LXX)의 인용이다.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베드로는 이러한 구약성경의 인용을 통해서 주께서 전한 말씀인 복음이 영원토록 변치않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됨을 진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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