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지파의 라이스 정복 2
성 경: [삿 18:30-31]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삿 18:30]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 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본 구절에서는 단이 라이스에 정착한 이후, 독자적으로 행한 우상 숭배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 - 여기서 '요나단'은 본래 미가의 집 제사장이었으나, 후에 단 지파의 제의를 받고서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된 '레위 소년'이라는 데에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다(Wycliffe, Keil & Delitzsch).
(14-20절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15) 다섯 사람이 그 편으로 향하여 소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문안하고
16) 단 자손 육백 명은 병기를 띠고 문 입구에 서니라
17)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취할 때에 제사장은 병기를 띤 육백 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18)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취하여 내매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19)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20)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그런데 그 외에는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본문에는 모세라는 이름을 '므낫세'로 읽도록 모세라는 히브리어 문자 사이에 작은 문자 '눈'을 삽입하여 므나쉐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KJV에서는 본 구절을 ' 므낫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
(the son of Gershom, the son of Manasseh)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탈무드나 70인역(LXX), 수리아역 등을 볼 때, 이것은 분명히 '모세의 아들'(the son of Moses)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Keil).
한편 히브리어 성경 필경사들이 이와 같이 '모세'를 '므낫세'로 읽도록 '눈'을 첨가한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1) 모세의 이름을 신성시하던 히브리인들이 '모세'란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명기함으로써 불경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Wycliffe).
(2) 단 지파를 우상 숭배죄로 몰고 간 요나단을 모세와 같은 레위 지파 출신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 본 구절의 의미에 대하여 학자들간에는 상당한 이견(異見)이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바벨론 포로 유수나 디글랏 빌레셀에 의한 앗수르 포로 유수로 생각한다.
(왕하 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17:6 이스라엘 자손이 가만히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25:8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구년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러나 유대인 학자 데이빗 킴치(David Kimchi)나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엘리 시대 때 블레셋이 법궤를 탈취해 갈 때로 생각한다(Keil, Hervey, Lange).
(삼상 4:17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그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일리가 있다.
(1) 31절에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라는 언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실로의 회막은 여호수아 때에 세워진 것으로,
(수 18: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그 땅이 이미 그들의 앞에 돌아와 복종하였음이나)
사무엘 때까지 그곳에 있었고,
* 참고 : (삼상 1, 3장)
4:3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사울 때에는 놉에,
(삼상 21장1-15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바와 네게 명한 바 일의 아무 것이라도 사람에게 알게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여차여차한 곳으로 약정하였나이다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항용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부녀를 가까이만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부녀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의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날 그들의 그릇이 성결치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낸 것이더라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병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9) 제사장이 가로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 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다윗이 가로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고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2) 다윗이 이 말을 그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 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 아기스가 그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그리고 다윗 때에는 기브온에 있었다.
(대상 16:39 제사장 사독과 그 형제 제사장들로 기브온 산당에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 모시게 하여;
21:29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으나).
(2) 미가의 새긴 우상이 앗수르의 침략 때까지 계속 해서 그곳에 있었다면 분열 왕국 시대에 여로보암이 그곳에 다시 금송아지를 세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이 단에 금송아지를 세운 것은 어디까지나 미가의 전통을 따라 행한 것이다(Keil).
(17:3 미가가 은 일천일백을 그 어미에게 도로 주매 어미가 가로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만들 차로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돌리리라).
(3) 이스라엘의 기강이 바로 잡힌 사무엘, 다윗, 솔로몬 시대에까지 한 지파 전체가 그러한 우상 숭배를 계속하도록 용납되었다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 자손이 '사로잡힌 날'이란 블레셋의 침략으로 인해 법궤가 빼앗기고 이스라엘이 내외적으로 연약해졌을 때를 가리킴에 분명하다.
[삿 18: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 이러한 본 구절의 기록은 본서가 사무엘 시대 이후에 기록되었음을 암시해 준다(Goslinga).
왜냐하면 회막이 엘리 시대까지는 실로에 있었으나 블레셋에 의해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긴 이후부터,
(삼상 4:21-22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실로에 없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사무엘에 의해 실로의 회막이 라마로 옮겨졌을 것이라 보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Hervey).
(삼상 7: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 자기 집이 있음이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는 성막이 보관되어 있던 실로였다.
따라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정한 절기 때에나 기타 개인적으로 종교적 의무를 이행할 필요가 있을 때에 실로에 모였다.
(삼상 3: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이러한 관습은 철저히 하나님과의 언약에 기초한 것으로서, 모든 지파가 하나님의 동일한 언약 공동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솔로몬 왕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축될 때까지 실로는 바로 이러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심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단 자손이 단에 신상을 세우고 섬긴 것은 언약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매우 가증한 죄악이었다.
(수 22:16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날 여호와를 좇는 데서 떠나서 자기를 위하여 단을 쌓아 여호와를 거역하고자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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