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접전
성 경: [삿 20:24-29]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8)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29) 이스라엘이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삿 20:24-25]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 이처럼 본 구절은 두 번째 전투에서도 이스라엘이 패배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 볼 때 2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여호와 앞에서 날이 저물도록 흘린 눈물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회개의 눈물이 아니라,
자신들의 패배로 인하여 여호와를 원망하는 눈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들은 한 번의 패배를 통해서도 바른 자각을 얻지 못하고 동일한 실수와 범죄를 반복한 것이다.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삿 20: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거듭 패배를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자손들은 보다 근원적으로 패인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스스로를 돌아보아 교만하고 완악했던 모습들을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이전까지는 병력의 수효만을 믿고 하나의 요식(要式) 행위로 하나님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모든 해결책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겸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즉 그들은 '고난'을 통하여 자신의 죄악된 실상들을 직시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도우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세를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히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마음을 비운 자에게 당신의 권능과 지혜와 위로로 채워 주실 것을 약속하였다.
(시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약 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 벧엘에 이르러 - '벧엘'의 문자적인 뜻은 '하나님의 집'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집'을 표현할 때는 '벧하엘로힘'으로 기록하며 '벧엘'은 항상 지명을 나타낸다(Pulpit Conmmentary).
▶ 저물도록 금식하고 - 첫 번째 전투에서 패했을 때에 그들은 여호와 앞에 나아가기에 앞서 '스스로 항오를 벌였다'.
(22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반면에 이번에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자세를 취하였다.
즉 그들이 또다시 힘으로 베냐민 지파와 전쟁하려고 했다면 힘을 쇠잔케 하는 금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성경에는 회개를 위해 금식한 경우가 많이 있으며,
(삼상 7: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욜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행 9: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기 위해 금식한 예도 여러 번 있다.
(출 34: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욜 1: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에 4:1-3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를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3)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 번제와 화목제 - '번제'(Burnt Offerings)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를 기원하며 드리는 제사이다.
그리고 '화목제'(Peace Offerings)는 하나님과 예배자 사이의 화목과 친교를 도모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다.
이 두 제사는 모두 예배자가 자원하여 드리는 자원제(自願祭)이다.
[삿 20:27]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 그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 혹자는 본 구절을 근거로 하여 사사 시대에 이미 실로의 성막이 영구히 벧엘로 옮겨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 18:1;삼상1:3;2:14;3:21;4:3에 의하면 하나님의 언약궤는 엘리 제사장 당시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길 때까지 실로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수 18: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그 땅이 이미 그들의 앞에 돌아와 복종하였음이나;
삼상 1:3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2:14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3: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4:3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따라서 하나님의 법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실로에서 벧엘로 옮긴 것임이 분명하다(Hengstenberg, Keil & Delitzsch, Lange).
한편 그들이 언제 하나님의 법궤를 그곳에 옮겼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두 번의 전쟁 패배 이후에 실로에서 벧엘로 옮겨온 듯하다(Hengstenberg).
[삿 20:28]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 본 구절에 등장하는 비느하스(Phinehas)는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부디엘의 딸을 통하여 얻은 아들이다.
(출 6:25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부디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고 그가 비느하스를 낳았으니 이들은 레위 사람의 조상을 따라 가족의 어른들이라).
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때에 모세와 함께 광야에서 이미 활동하기 시작했다.
(민 25:7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때문에 그가 제사장으로 지낼 때는 사사 시대 초기임이 분명하다.
이로 볼 때, 본장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의 발생 연대 역시 사사 시대 초기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 세 번째 전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승리를 보증하는 이같은 약속을 주신 것은 26절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화목제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일반적으로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화평을 누리기 위한 목적으로 회개하고 서원함으로 드려진다.
그러므로 본 구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승리의 관계가 다시금 회복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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