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라
성 경: [고전 7:17-25]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고전 7: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그대로 행하라 - 이 구절은 결혼 생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의 영역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들에게 주신 능력과 소명은, 그것이 종교적인 것이든지 또는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필요로 하는 사회적인 것이든지 간에 서로의 화평을 도모하는 곳에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스스로 만족하라는 자족의 의미라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삶을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주권을 중시하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Morris, Barrett).
[고전 7:18-19]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 -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하여 새사람이 된 자들에게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초대 교회에서 이방인의 할례 문제는 교회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우 불만족스러운 처사였다.
특히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가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 바울의 견해는, 대부분의 선교지에서 오해의 원인이었으며 교회 분쟁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또한 헬라의 생활 방식에 적응한 유대인 중에는 할례의 흔적을 감추려 하거나 없애려 하는 자들도 있었다.(Lenski, Farrar).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의 주장은 보다 설득력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생활의 이기적 유익을 위하여 할례를 행하기도 하고 없애버리기도 하는 할례의 의미는 더 이상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다.
여기서 '계명'은 모세의 율법과 같은 법적 규제가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형편과 처지를 따라 복음에 순종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자신이 처해있는 생활 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유대주의적 관행(慣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요 15:12-14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고전 7:20]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 그 부르심 그대로 - '부르심'은 17절에서 사용된 '소명'이라는 주제와 다른 관점에서 사용되었다.
신약 성경에서 '클레시스'('부르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실제로 부르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본절에서는 이 세상에서 처해있는 처지까지도 포함한다.(Boice).
또한 앞절들(17, 18절)과 비교해 보면 앞 구절에서는 소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였으나,
(17-18절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본절에서는 부르심을 받은 '그 때의' 상태에 역점을 두고 있다.
[고전 7:21-22]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
고린도 교인들의 신분이 대부분 낮은 사회적 지위에 있었다는 것은, 바울의 다른 진술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26-27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그들의 사회적 신분은 교회 내에서 서로 시기하고 무시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실제로 이러한 신분의 차이로 말미암아 고린도 교회 내의 분쟁은 더 심화 되었다.
그러나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자요 더 이상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종이나 자유자의 신분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속했느냐 속하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이다.
특히 22절에 사용된 그의 역설적 표현은 노예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자가 되고, 자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중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들 양자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종인 동시에 자유자라는 뜻이다.
그 근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차라리'라는 부사가 단순한 반전이나 양자택일의 유익을 시사하는 뜻으로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현실적인 노예 신분을 버리고 자유인이 되라는 표현은 아니다.
오히려 이 말은 '자랑스럽게', 또는 '자신있게'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종의 직분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라는 의미이다.
(2) '사용하라'는 부정 과거 중간태로서 '너 자신을 위해 사용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노예 된 상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에게 유익이 되게 하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근거들 때문에 주 안에서 자유자가 된다는 것은 현실 신분의 종된 상태에서 벗어나라고 종용(慫慂)하는 것이 아니고, 비록 신분이 종이긴 하나 주 안에서 자유자이므로 자유자로서 살고, 궁극적으로 주님의 종 된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다.
[고전 7: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 값으로 사신 것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의 피로써 산 바 되었다는 것을 전제하는 구절이다.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당시에는 노예를 값으로 사고 파는 것이 관례였으며, 일반적으로 값을 치른 노예는 문서상으로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더 이상 이전 주인의 노예 상태로 있지 않았다.
본절에서는 이러한 사회 상황을 비유로 하여 성도들을 값으로 샀다고 말한다.
성도들을 값으로 산 것은 금이나 은과 같은 현실적인 재화로 산 것이 아니라,
(벧전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역사적이고 단회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그로 말미암아 산 바 된 자들은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고전 7:24]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 '하나님과 함께'는 '하나님과 동행 한다' 또는 '하나님의 곁에'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그의 신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신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듯이,
(갈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모든 성도들의 신분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밝히며, 그 가운데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살아갈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로 하여금 노예 신분을 계속 유지하라는 희생의 요구라기 보다,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임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삶이 질서 속에서 그리스도에게 봉사하는 과정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고전 7: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 처녀의 결혼 문제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매우 신중하다.
그는 사도적 권위나 주께로부터 받은 계명을 강조하지 않고 주의 자비와 자신의 신실한 양심을 앞세운다.
이렇게 하여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모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중심이 주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Morris).
한편 '처녀'(파르데논)는 때로 '성경험이 없는 남성'을 의미하기도 하였지만,
(계 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28절에서 남자의 장가가는 것을 따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절의 '처녀'는 부모의 견해에 따라 결혼 문제가 결정되는 당시의 '미혼여성'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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