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화요일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리스도의 일꾼

 

성 경: [고전 4:1-5]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전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

 

바울은 3:23의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후토스'('그와 같이')를 사용하여 '일꾼'이라는 것과 '비밀을 맡은 자'라는 두 가지의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본문에서 '후토스''그러므로', '그런즉', '이와 같이'등의 접속사로 사용되었으며, '로기제스도'('여기다')와 함께 쓰여 '하나님의 것'이라는 결론을 토대로(3:23) 새롭게 판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개역성경은 '마땅히'라는 말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일꾼 된 것과 비밀을 맡은 자 된 것의 당연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일꾼 - 여기서 '일꾼'은 본래 '노예'에 가까운 신분을 의미한다.

 

고대 전함에서 노를 젓는 가장 하급 노예를 '휘페레테스'라고 불렀는데, 바울은 3:5에서 사용한 '디아코노이'('사역자들', ministers)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Barrett).

 

'휘페레타스''일꾼'이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하였으나,

 

(1: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13:5에서는 요한을 칭할 때 '수종자'라는 의미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13: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특히 본절에서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할 것은 자신의 위치를 보다 겸손하게 나타내려 한 것 같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신분적인 지위에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노예적 개념은 오히려 바울의 지도자 됨을 더 선명하게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비밀을 맡은 자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만 천국의 '비밀'을 나타내시고 다른 자들에게는 숨기셨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13: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비밀'이라는 말은 초대 교회 속에서 신성한 의식이나 성례전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관계된 엄밀한 지식이나 숨겨진 하나님의 경륜을 뜻하는 의미로 쓰여졌다.

 

(1:26-27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특별히 임무를 받은 자들 외에는 숨겨진 것이기에 비밀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비밀을 맡은 자들에게는 '계시된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Lightfoot).

 

이런 의미에서 바울과 같은 당시의 지도자들은 '계시된 진리의 교사들'이라고 칭할 수도 있다.

 

한편 '맡은 자'는 한 집안의 행정 관리 및 재정을 맡아 관장하는 지배인 또는 관리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직분의 행정적인 면을 강조하여 마치 바울을 비롯한 지도자들을 교회의 행정관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바울은 교회의 구성원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는 영적 청지기로서의 위치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일꾼'이라는 단어는 가장 낮은 노예적 신분을 나타내는 반면,

 

'맡은 자'는 중간 관리인, 또는 위엄과 권위를 가진 직분이라는 점에서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종으로서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사명은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구원의 신비, 인간의 지혜로는 깨달아 알 수 없는 영적 진리를 그리스도께로 부터 위임받아 전하는 일을 맡았다는 점에서 같은 직분임을 뜻한다.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 바울은 지도자의 겸손과 권위를 동시에 강조한 후에 이에 덧붙여서 '히나'('하기 위하여')가 이끄는 또 하나의 목적절을 제시한다.

 

어떤 사본에는 '너희는 충성을 구하라'는 뜻을 포함한다. 이렇게 해석하더라도 의미상 큰 차이는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충성'이 청지기의 필수 불가결한 자질이라는 점이다.

'충성'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피스토스'는 문자적으로 '신실성이 발견되는 것'을 뜻한다.

 

청지기는 주인 앞에서 신실한 자로 인정받아야 하며 완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된다.(Lenski)

 

특히 '충성이니라'에서 수동형 '휴레데'를 사용하여 나타낸 것은 '충성되다'라는 인정이 개인이나 인간들의 판단에 있지 아니하고 주인이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단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청지기는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뿐이며 자신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신실할 따름이다.

 

특히 본절에 사용된 충성의 의미는 구별된 몇몇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원리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4:11-12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딤후 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 당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바울을 비롯한 교회의 지도자들을 주관적인 소욕(所慾)을 따라 함부로 판단했다.

 

그들의 판단은 마지막 날에 공력을 따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법정적 선언과(고후 5:10)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판단이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바울은 '아나크리노'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판단이 심판이라는 의미보다는 편견에 의한 분별 또는 식별(discern)을 의미하는 것으로 취급한다.

 

당시 교회의 비난과 배척은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되는 심판대의 공정성과 위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그야말로 매우 작은 일에 불과한 것이었다.

설령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바울을 칭찬하며 천사와 같이 높였다고 할지라도, 바울은 아무런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오직 주인에게 충성할 자세를 가졌으며 '인간의 판단', '하나님의 판단'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닫고 자신의 선한 양심조차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판단의 기준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의 판단은 사도 바울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선포한 것이다.

 

 

[고전 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 한 인간의 업적에 대하여 판단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울은 앞절에서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라고 말한 이후 자신의 허물없음을 스스로 언급한 것이 궁색한 변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롬 7:19에 기록된 바와 같은 죄인의 고백을 염두에 두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바울은 원치 않는 바 악을 행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책망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울은 사실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자들을 책망하기 위하여 하나의 가정적인 전제를 제시하였다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도적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태만이나 과오(過誤)를 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Lenski).

 

이를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 - 바울에게 있어서 의롭다함을 받은 '칭의'의 개념은 언제나 수동태로 나타난다.

 

본절의 '의롭다 함을 얻지' 역시 수동태로서 의롭다고 판결하시는 그리스도의 판단을 시사하고 있다.

 

사도의 직무에 충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신을 의롭게 하지 못한다는 고백은 철두철미하게 '이신득의(以信得義)'에 근거한 것으로 자신의 충성도를 자랑하거나 비하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심판자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이행한 일을 정직한 것으로 판단하지만 심판자는 그 심령을 감찰하시고 판단하신다.

 

(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안에서 ''를 인정하시는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바울이 궁극적인 최후의 심판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점검한 것은 복음의 사역자 된 모든 시대의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삶의 태도이다.

 

복음의 사역자는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는가를 살피는 삶 가운데서 칭찬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따라서 우리는 본절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초월성(超越性), 모든 판단의 근거를 그리스도께 두는 바울의 겸손한 신앙 인격을 엿볼 수 있다.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 마지막 날의 심판은 그리스도에게 모든 권위가 위임된 것으로써 혐의에 대한 조사도 그리스도께서 하시며 판결도 그분께서 행하신다.

 

인간 행위에 대한 고발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죄인을 고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의 '판단'은 합당한 이해와 관찰 없이 조급하고 경솔하게 남을 평가하는 죄인의 판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한편 바울은 천사들을 판단할 수도 있는 인간의 권위가,

 

(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성되는 최후의 날까지 유보되어 있음을 시사하며 주님께서 오실 ''와 그의 '심판'을 강조하고 있다.

 

본절의 ''는 일정한 기간뿐만 아니라,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한 순간의 시각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약속된 시간'(an appointed time)으로서의 '최후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는 전장(前章)에 나오는 '그 날'(3:13)과 동일한 말임을 알 수 있다.

 

(3: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그런데 이 최후 심판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심판하게 될 이 날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도래하기 때문이다.

 

(25:31-46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5:24-3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 본절은 그리스도의 심판의 내용이다.

 

어두움 속에 숨겨진 악한 세력의 일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모두 드러날 것이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진 모든 비밀조차도 밝히 드러날 것이다.

 

(10: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어두움 속에 숨겨진 인간 행위의 무질서는 그리스도의 밝은 빛에 의하여 모두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어설픈 판단은 그 때까지 유보되는 것이다.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 주여,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들도 바울의 삶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복음의 순수성은 점점 잃어가고

 

교회내의 제도적 권력과

정치적 편견과

세상적 권력과 명예를 버리고 새롭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잃어가는 사역자들과 교회들이 회개하고,

초대교회의 모습을 되살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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