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9일 일요일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성 경: [고전 10:14-22]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 나는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고전 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그런즉 - 바울은 지금까지 말한 사실들로부터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보기로 고린도 교회의 상황, 즉 우상숭배 축제의 참여에 적용 시킨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 바울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뜨거운 애정을 표현하면서 바른 태도를 취할 것을 급박하게 권면하고 있다.(Lenski, Morris).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 '피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퓨게테'KJV에는 '달아나라'(flee)로 번역되어 있다.

 

죄를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도망하여 멀리 있는 것이다.

 

희생 제사의 축연이 곧 우상 숭배는 아니었으나 그것은 우상 승배의 경계선까지 가는 행위였으며 또한 충분히 우상 숭배에 빠지도록 할 가능성이 있었다.(Godet).

 

그러기에 바울은 여기서 단순히 우상 숭배만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일조차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고전 10:15] 나는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지혜 있는 자들에게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지각있고 총명한 자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권면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양심을 속여 가며 제물의 고기를 먹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분별(分別)하라고 촉구한다.

 

스스로 판단하라 - 고린도 교인들이 실제로 지혜가 있었는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가정하였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에는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고 수용하기를 바라는 심정이 포함된다.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본절부터는 '성만찬'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신약 시대의 성만찬은 구약 시대의 화목제사 뒤에 있었던 '축제'와 상응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린 후 그의 가족들과 함께 성전 뜰에서 신성한 축제를 가졌다.

 

거기에는 제사장도 같이 참여하였다. 제단에 드려지지 않고 남은 재물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먹었는데 재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주시는 은총과 화해의 보증이 되는 행위였다.(Godet).

 

마찬가지로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졌다는 화해의 표식이 된다.

 

신약의 교회에서는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에 시행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성찬이 시행되었으며, 이러한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된 몸임을 확인한다.

 

즉 주님의 살과 피로 상징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하며 주님과 교제를 나눈다는 의미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신자들과 서로 하나 된 지체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축복의 잔은 - '축복'(율로기아스) 이라는 말은 '찬사''복을 비는 것'을 뜻한다.

 

유대인들 술잔을 들 때 복을 기원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월절에 마셔야 하는 네 잔 가운데 세 번째 잔이 '축복의 잔'이었다.

 

참예함이 - '참예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교제'(communion)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의 떡과 잔을 받아 먹고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떼는 떡은 - 여기에서 바울은 성만찬의 원래 순서와는 달리 ''보다 ''을 먼저 언급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을 강조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잔과 떡은 그리스도의 피와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것을 먹고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살과 피를 먹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전 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본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그들이 떼어 먹는 떡이 한 덩어리인 것처럼, 비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할지라도 실상 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 몸이니 - 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뜻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Meyer, Godet, Osiander).

 

왜냐하면 16, 17절에서 한 떡을 떼므로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한 덩어리의 떡을 떼는 의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모든 교인들이 하나의 신비한 영체(靈體)를 이루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고전 10: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 - 이것은 혈통(血統)에 의한 민족적인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된 '영적인 이스라엘'과 상반된다.

 

이로써 앞 구절에서 언급한 성찬의식을 유대인의 의식과 대조하려 하고 있다.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제단 위에 태워서 드리고 남은 고기를 제사장과 제물을 드리는 자들이 성전 뜰에서 나누어 먹었다.

 

(7:15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바울은 여기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주의를 다시 구약으로 돌려서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물을 먹은 것과 고린도 교인들이 우상 축제에 참여하여 제물을 먹는 것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 - 제물은 제단 위에 드려지는 것이므로 제물을 먹는 것은 제단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또한 제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그러므로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제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의 행위가 되었다.

 

바울은 이에 비추어 이방 신전에서 열리는 우상의 축제에 고린도 교인들이 참여하여 같이 제물을 먹는 것은 곧 이방의 신()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고전 10: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 바울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상'이든 '우상의 제물'이든 모두가 거짓임을 강조한다.

 

우상은 실재(實在)하지 않는 것이며,

 

(고전 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우상의 제물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의 제사는 여전히 우상 숭배였으며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

 

 

[고전 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 앞구절에서 우상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본절에서는 그 우상 배후에 영적인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귀신임을 시사한다.

 

당시 헬라인들이 섬기던 신들은 쥬피터(Jupiter), 아폴로(Apollo), 비너스(Venus) 등 신화에 근거해 의인화된 신들로 실재(實在)하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신화적 존재들의 배후에는 사악한 힘, 곧 사단의 세력이 역사하고 있음을 바울은 지적한다.

 

우상 자체는 결코 신()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배후에는 살아서 활동하는 영적인 존재들이 있다.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귀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다이모니오이스''하급의 신', '잡신' 등을 의미하는 '다이몬'에서 나온 파생어로서 바울서신에서는 본절과 딤전 4:1에서만 나온다.

 

(딤전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본절은 신 32:17,

 

(32: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그대로 바울이 인용한 것이다.

 

(96:5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106:37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에게 제사하였도다).

 

귀신과 교제하는 자 - 본절에서는 우상 그 자체와 친교를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둠의 세력과 결탁된 악한 영들과 짝이 된다는 뜻이다.(Grosheide).

 

 

[고전 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주의 잔과 귀신의 잔 - 바울이 17절에서는 ''을 앞에 두어 강조하고 있는 반면, 본절에서는 ''에 강조를 두어 ''을 앞에 두었다.

 

이렇게 하여 ''''이 모두 중요함을 균형있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주의 잔''귀신의 잔'과 대비시킴으로 명백하게 구분 짓고 있다.

 

당시에 헬라인들은 자기들의 신전에서 향연을 베풀 때,

 

첫 째 술잔은 '쥬피터'(Jupiter)에게

두 째는 쥬피터와 '님프'(Nymphs)에게,

세 째는 '쥬피터 소터'(Jupiter Soter)에게 바쳤다.(Godet).

 

또한 술과 고기 등 모든 음식은 우상의 이름으로 축복되고 봉헌되었다.

 

(삼상 9:12-13 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섰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에 들어오셨나이다

13) 당신들이 성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라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금시로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이러한 술잔을 드는 것은 곧 악령의 세력에 굴복하는 것이고 복의 근원이 우상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성찬에서 주의 잔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임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주의 상과 귀신의 상 - '주의 상'에서는 주님께서 주인이시고 그에 참예한 자들은 그의 손님이 된다.

 

'귀신의 상'에서는 귀신이 주인이 되고 참석자들은 귀신의 객()이 된다.

 

'주의 상''귀신의 상'''과 마찬가지로 서로 배타적이다.

 

그러므로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듯이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동시에 참여할 수 없다.

 

(고후 6:14-18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전 10: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 '노여워하시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젤루멘''질투하게 하다'(to provoke to jealousy)는 뜻으로 '질투하다'에 해당하는 '젤로오''곁에'라는 의미의 전치사 '파라'의 합성어이다.

 

'젤로오'는 좋은 의미로는 '부러워하다'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어서(TDNT) 하나님의 열심에 대해 묘사하기도 한다.

 

(39:25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지라)

 

'질투'는 사랑과 신뢰에 대한 배신을 당하여 유발되는 감정으로 인간이 갖는 분노 중에 가장 강렬한 것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는 분노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절하다. (Hendriksen).

 

구약 시편에서도 '질투하다'에 해당하는 '카나'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으며,

 

(78: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32:16, 21에서는 다른 신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키게 하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32: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 본절은 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수사적 의문문을 사용하여 반어적 표현으로 당연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절대적이므로 그 어떠한 것보다도 강하시고 그 무엇도 그분을 굴복시킬 수 없다.

 

본절의 질문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린도 교인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단정하고 질문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이미 정한 마음을 거슬려서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Grosheide).

 

바울의 이러한 질문을 통해 고린도 교인들은 이미 결정한 것을 확고히 하고 그들이 지은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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