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0일 금요일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우상 제물에 관한 규칙

 

성 경: [고전 8:1-6] 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고전 8:1] 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 '에 대하여'라는 표현은 7장의 결혼 문제와 마찬가지로,

 

(7: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고린도 교인들이 서신이나 구전을 통하여 우상 제물에 대한 문제를 바울에게 제기했음을 시사한다.(Morris).

 

당시의 고대 도시들에서는 종교적 제의(祭衣)에 사용된 음식물들을 사제들이 처분하였으나 다 처분하지 못하고 남은 제물들은 시장에서 판매하였다.

 

제의에 사용되지 아니한 고기도 있었으므로 교인들이 거리낌 없이 시장에서 음식을 사먹을 수 있었는데 사실 제물과 순수한 음식을 구별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본절에 언급된 음식은 제의에 올랐던 제물들로서 분명하게 논의될 수 있는 성격을 지녔다.

 

고린도 교회에서 우상의 제물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서로 상반된 견해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로부터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은 우상 숭배로 인하여 오염된 음식을 먹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또 다른 무리들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도살이나 우상 제물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Barrett).

 

바울은 이들 두 주장에 의하여 발생한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먼저 그들의 지식이 편견이나 교만에 빠져 분쟁을 유발시키는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을 지적하고, 성숙한 인격과 사랑을 강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결국 그들의 문제는 사랑이 없는 지식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었다.

 

(9-13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고전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 바울은 사랑과 지식을 비교하면서 먼저 지식의 불완전함을 증명한다.

 

본절에서의 '지식'(그노시스)'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을 시사하지만,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과 직결되기도 한다.

 

(요일 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즉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그러나 고린도의 지식있는 자들은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짐으로 인하여 오히려 자신을 오류에 빠지게 하는 우()를 범하였다.

 

그들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그 지식을 당면한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마땅한 지식', 곧 덕을 세워주는 사랑을 소유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고전 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

 

'사랑하면'이라는 표현을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조건문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Barrett).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그의 백성을 아신다는 사실이다.

 

(딤후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인정하실 때에, 그 백성의 삶에는 사랑이 나타날 것이며 또한 그 속에서 하나님은 증거 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학습의 과정을 통해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 속에서 구체적인 전인격적 반응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모든 외형적인 아름다움은 그것이 고상한 지식이라 할지라도 무가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전 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 바울은 여기서 앞절에 비하여 상당한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우상의 실체를 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

 

즉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인격적 실체가 아니므로 아무런 능력도 없는 것이며 실제적으로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바울은 10:20에서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 이라고 규정하여 우상의 배후(背後)에는 정신적인 것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바울이 본절에서 우상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은, 우상 그 자체는 허상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바울은 여기서,

 

(1)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과

(2) 참된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41:24 과연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10:14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고전8: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 바울은 계속해서 우상의 허구성에 대해 언급한다.

 

본절에서 '신이라 칭함을 받는 자'가 있음을 인정했는데 이때의 ''은 당시의 그리이스 신화에 나타나는 이방 신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신앙하는 대상을 일컫는다.

 

그런데 여기서의 ''(퀴리오스)는 당시의 여러 종교들이 신앙의 대상에 대하여 사용하던 일반적인 용어이다. (Morris).

 

따라서 '많은 신'(데오이 폴로이)'많은 주'(퀴리오이 폴로이)사이에는 의미상의 차이가 없으며 많은 우상들이 이방인들의 경배의 대상이 된 것을 풍자적으로 비유한 것에 불과하다.

 

본 구절은 이러한 풍자(諷刺)를 통하여 당시 사람들이 섬기던 이방신들이 비실재적인 존재임을 지적하고 있다.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

본 구절에서 바울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신이며 우리의 기원은 그분이심을 강조하고 있다.(Calvin).

 

여기서 하나님의 창조자로서의 속성과 유일하심이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이 앞에 언급되어 있는 이방의 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하나님께 대하여 '아버지'란 표현을 쓴 것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권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간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의 인격적인 사랑을 나타낸다.

 

더욱이 본 구절에서 중요하게 제시되는 전치사 '에크'('로부터'), '에이스'('안으로'), '디아'('을 통하여'), 11:36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이는 우리들뿐만 아니라 '모든 것'(타 판타)의 기원과 존재 목적과 최종적인 귀결과 중보적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음을 명백히하는 표현으로 피조물인 이방의 우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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