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1일 토요일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리스도인의 자유

 

성 경: [고전 8:7-13]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고전 8: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 여기서 바울이 언급한 지식은 우상이나 거짓 신들의 존재와 위치에 관해 인식(認識)할 수 있는 지식을 가리킨다.

 

이 지식은 1절에 따르면 우리가 다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른 사람들에게만 국한된다.

따라서 이러한 지식은 교회내에서 조차도 보편적인 지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당시 이방 종교에서는 우상을 숭배하며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중에는 고기를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음식으로 생각지 않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로만 인식하는 자들이 있었다.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 고린도 교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우상이나 우상 제물이 마법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짓 신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오늘날에도 샤머니즘적인 신앙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구복(求福)신앙에 매여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도는 복음의 기본 도리와 그 복음의 능력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10-12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3:1-6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4)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고전 8: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 본절은 식물(食物)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먹는 행위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위한 필수적 요소라고 하는 영지주의적 고린도 교인들의 주장이 근거 없는 것임을 드러내 준다. (Hodge).

 

한편 '세우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스테세이',

 

'가까이 나아가다' - (27: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드리다' -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라고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Morris).

 

 

[고전 8: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거치는 것 - 이 의미는 '길에 떨어져 있는 돌'로서 '장애물'을 가리킨다.

 

본 절에서는 믿음이 약한 형제의 양심에 상처를 준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우상과 타협함으로 죄를 짓도록 만드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행위가 나쁘게 생각되지 않더라도 이것이 초신자들의 양심(良心)에 반대된다면 그들을 실족케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을 나쁜 상태로 이끌 수도 있다. (D. Thomas).

 

 

[고전 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

 

믿음이 성숙한 신자는 장소와 음식의 출처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며 정확한 이해 가운데서 자유롭게 행한다. 하지만 믿음이 약한 자는 우상의 집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그 우상과 교제하며 경배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Calvin).

 

결국 믿음이 강한 자들의 자유로운 행동은 믿음이 약한 신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왜냐하면 약한 신자들을 좇아 우상의 제물을 먹을 경우 강한 신자들과는 달리 양심에 거리낌을 느낄 거리낌 때문이다.

 

 

[고전 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 바울은 본 구절에서 자유가 남용되는 경우를 예로 들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모든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과 구원의 증표가 되지만 그것이 남용(濫用)될 때 형제들을 실족케 하는 빌미가 됨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본절의 '멸망 하였나니'는 약한 자들은 장차 실족하게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지금 현재에 실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Morris).

 

그리고 이 단어가 문장의 앞 부분에 위치하여 강조되고 있으며, 14:15에서도 본절과 동일한 내용을 언급한다.

 

(14: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고전 8: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 약한 형제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행위로 규정된다.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혹자는 이러한 범죄를 그리스도에 대한 모욕이며 그리스도의 피를 무효화시키려 하는 행위라고까지 본다.(Calvin)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지식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형제에 대한 사랑의 결핍은 그것이 선행이든 악행이든 그리스도께 대한 행위로 귀결된다.(Hendriksen)

 

주님께서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25:40).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

 

본절에서 우상의 제물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가 바울 자신의 의지 표명(表明)을 통하여 나타난다.

 

바울의 이러한 결심은 그의 뜨거운 사랑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이것은

 

(1) 인간적으로 보잘 것 없는 형제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며 그를 통해 당신의 사역과 섭리를 이루어 나가신다는 점과

 

(2) 그리스도인의 영속적인 생활 원칙을 밝히 제시해 주고 있다.

 

(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한편 '실족케'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칸달리제이'는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Morris).

 

이 단어는 '스칸달론'에서 온 것으로 원래 '올가미의 덫을 잠그는 나무'를 가리키며 온갖 고난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십자가가 '스칸달론'이 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거치는 것''스칸달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5: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본절에서는 형제로 하여금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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