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4일 화요일

자유에 대한 바울의 모범

  

사도의 의무


성 경: [고전 9:12-18]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고전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 베드로와 아볼로 등, 다른 사도들은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생계비를 보장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혹자는 이러한 이유로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낮은 등급의 사도이기 때문이라는 오해를 하게 했을 것이라고 한다.(Morris).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처음 세운 자로서 자신이 그 어떠한 사람들보다 더욱 물질적인 권리를 요구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한다.

 

범사에 참는 것은 - '참는''덮다', '감추다', '참다'의 뜻을 갖는다.

 

신약 성경에서 바울만이 이 말을 사용한다.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모든 것을 참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은 온갖 종류의 곤궁함을 인내로써 참았다.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 바울은 복음이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권한을 행사하려는 자들과 복음 전파를 통하여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에 의해 잘못 전달될 소지가 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일을 담당한 자가 물질에 얽매여 산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실족함 없이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 스스로 모든 권리를 포기하였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4:2에서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Grosheide).

 

 

[고전 9: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 본절에서 바울은 구약에서 언급된 제사 의식과 이방 제사의 실례를 들어, 신약의 교회가 복음 사역자들에게 물질을 공급할 의무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제단 위에 드려지고 남은 고기 중 일부를 그들의 몫으로 할당받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율범이 규정하는 바였다.

 

(7:6 지극히 거룩하니 이것을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며,

 

8-10 사람의 번제를 드리는 제사장 곧 그 제사장은 그 드린 번제물의 가죽을 자기가 얻을 것이며

9) 무릇 화덕에 구운 소제물과 솥에나 번철에 만든 소제물은 그 드린 제사장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10) 무릇 소제물은 기름 섞은 것이나 마른 것이나 아론의 모든 자손이 평균히 분배할 것이니라,

 

14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

 

18-36 만일 그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제삼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못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죄를 당하리라

19) 그 고기가 부정한 물건에 접촉되었으면 먹지 말고 불사를 것이라 그 고기는 깨끗한 자만 먹을 것이니

20) 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요

21)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 곧 사람의 부정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하고 가증한 아무 물건이든지 만지고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3)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24) 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달리는 쓰려니와 결단코 먹지 말지니라

25) 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희생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26) 너희의 사는 모든 곳에서 무슨 피든지 새나 짐승의 피를 먹지말라

27)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벡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9)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화목제의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려는 자는 그 화목제 희생 중에서 그 예물을 취하여 여호와께 가져오되

30) 여호와의 화제는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31) 그 기름은 단 위에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돌릴 것이며

32) 또 너희는 그 화목제 희생의 우편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

33) 아론의 자손 중 화목제 희생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가 그 우편 뒷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라

34)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취하여 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35)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서 아론에게 돌릴 것과 그 자손에게 돌릴 것이니 그들을 세워 여호와의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한 날

36) 곧 그들에게 기름 부은 날에 여호와께서 명하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신 것이라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니라).

 

그러므로 바울이 자신의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객관적으로도 합법적임을 보여주며 이에 바울이 자신의 권한을 자제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고전 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주께서도 -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제사장들에 관하여 규정하신 것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의 보수에 대해 똑같은 규정을 허락하셨다.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이것은 마 10:10이나 눅 10:7에서 주어진 예수님의 명령을 바울이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10:10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그것은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나는 것으로 생활을 영위 하였던 것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그 복음을 믿는 자들의 현금으로 생계를 꾸려가라는 예수님의 명령이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의 직접적인 명령인 만큼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권위를 가진 증거였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이 없었으나 고린도 교인들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전 9: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 바울은 복음 전파자로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경제적인 보조를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를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죽을지언정 - 바울은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경제적인 짐을 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에 있었을 때 겪은 여러가지 생생한 경험들의 기억으로 격한 감정이 되어 정상적인 방법으로 글을 잇지 못하고 파격구문(破格構文)을 사용했다.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 바울은 아무런 보상 없이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자신을 의심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었고, 또한 혹자의 말대로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축적했다.(Hodge).

 

따라서 물질적인 공급 없이 교회를 위하여 봉사한다는 것은 그가 전한 복음의 순수성을 입증하는 것이었으며 바울의 자랑이요 영광이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일임이라 - '자랑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우케마''자신이 취한 행동에 대하여 도덕적인 가치를 느끼고, 그로 인해 갖게 되는 즐거운 감정'을 의미한다. (Heinrici).

 

사도 바울이 선교 사역을 감당한 것은 그 일을 통해서 갖게 되는 즐거움과 보람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사명이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일이었고,

 

(26:16-18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1: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가 부득불(不得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열정적으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와,

 

(9:1-9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성령에,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사로잡혀 있었고, 날마다 주의 계시에 민감하였다.

 

(22: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즉 그가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 바울은 소명(召命)에 있어서 다른 사도들과 큰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12사도들은 자발적인 믿음으로 그들의 소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완악한 불신앙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의 소명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강압적인 역사였다.(Godet)

 

(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고전 9: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 바울이 자발적인 선택으로 복음을 전파한다면, 그것은 자랑할 만한 것이요 그에 대한 상이 있을 것이다.

 

''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스도스''보상'(reward, KJV)을 뜻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리스도로부터 강압적으로 복음 전도의 소명을 부여받았으므로 거기에 대해 어떠한 자랑거리나 보상이 있을 수 없다.

 

그는 단순히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할 뿐이었다.

 

(26: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 여기의 문자적인 뜻은 '나는 청지기직을 부여받았다'이다.

 

'청지기'(steward)'자유인'(freeman)과 상반되는 말로서, 청지기들은 노예 계급에 속했었다.

 

(12:42-43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노예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고 하여 어떠한 보상도 기대할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을 때 엄한 처벌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본절은 바울이 그의 사도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나는 노예로서 일을 수행할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견지(堅持)하였음을 보여준다. (Godet).

 

바울이 자신의 사명에 대해 이러한 태도를 취한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근거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고전 9: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값없이 전하고 - '값없이'는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대가로 아무런 물질적인 부담을 지우지 아니한 것을 뜻한다.

 

다 쓰지 아니하는 것이로라 - '다 쓰지''남용하다''오용하다'의 뜻이 아니라 '남김없이 소모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것에 대한 부정은 부분 부정이 아니라 전체 부정으로 '일체 사용하지 않다'의 뜻이 된다.(Lenski).

 

바울은 청지기, 즉 아무런 대가를 기대할 수 없는 노예로서 복음 전하는 사명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노예도 주인으로부터 먹을 것과 입을 것은 공급받을 권리가 있었던 것 같이, 바울도 그러한 권리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행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바울은 보상을 바라지 않고 봉사하는 것과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 것 자체를 자랑이며 보상으로 여겼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