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자에 대한 용서와 위로
성 경: [고후 2:5-11]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고후 2: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 본절에서 거론되는 핵심적인 논리의 주제는
'바울을 대적하여 문제를 일으킨 자가 누구였으며 그가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이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바울의 서신들에서 찾아낼 만한 근거 자료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먼저 5-7절과,
(5-7절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7:12에 근거할 때,
(7: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사람이 고린도 교인 중 한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외부에서 고린도로 여행 온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다음은 이 문제의 인물이 행한 일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 과거에는 고전 5:1 이하에서 언급되고 있는 근친상간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으나(Tertullian),
현재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런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전자의 견해는 3, 4절에 언급된 서신이 고린도전서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전제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최근 학자들은 이 적대자의 행위가 바울의 두 번째 고린도 여행 즉 가슴 아픈 방문과 관련하여 바울을 모욕하고 바울의 권위를 무시한 행위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Barrett, Lowery, Harris).
그런데 이 행위가 바울 개인에 대한 도전 행위일 뿐만 아니라 전체 교회에 대한 문제 행위로 여겨지는 것은 바울과 고린도교회 사이의 특수한 관계 때문일 것이다.
고린도교회는 전적으로 바울이 전한 복음에 근거해 있다. 그리고 바울의 복음 사역과 그의 인격과 사도적 권위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바울에 대한 도전은 그의 인격과 사도권에 대한 도전이며 교회 전체에 대한 적대 행위였던 것이다.
▶ 어느 정도 너희 무리 - '어느 정도'라는 표현은 대적자에 대한 바울의 태도가 상당히 완화되었음을 반영한다.
바울은 대적자의 문제가 해결된 상황에서 가능한 한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리하고자 했을 것이다.
'너희 무리'는 문자적으로 '너희 모든 무리'라는 뜻이다(all of you).
이것은 바울을 대적했던 자가 고린도인이 아닌 외부에서 유입(流入)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고후 2:6]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 많은 사람에게서 - 이것은 고린도 교회의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이 적대자를 반대하여 바울을 지지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아울러 본문에 표현된 `많은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 소수의 사람들은 적대자의 처벌을 반대하는 그룹과 더 엄한 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격한 그룹으로 나뉘었거나 아니면 중징계를 주장하는 하나의 그룹만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후자일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Harris).
▶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 여기서 '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티미아'는 신약에서는 이곳에만 나오고 외경 지혜서 3:10에 한 번 나오는 것으로 법적인 의미에서의 '처벌'을 뜻하는지 아니면 단지 잘못된 행위에 대한 '책망' 또는 '비난'을 뜻하는 것인지 결정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혹자는 전자의 의미를(Farrar), 혹자는 후자의 의미를 주장한다(Barrett).
그런데 '에피티미아'와 어원을 같이하는 '에피티만'이 신약에서 30회 사용되는 중 한 곳에서만 징계의 의미로 사용되고
(유 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나머지에서는 '비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과(Barrett),
소수의 교인들만이 엄한 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을 가능성이 높은 점을 고려할 때,
(7절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후자의 뜻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고후 2: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 저를 용서하고 - 바울은 앞에서,
(5절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적대자가 끼친 근심을 '어느 정도'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묘사함으로써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했다. 이제 바울은 한걸음 더 나아가 용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바울이 적대자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그의 명예를 존중해 주는 것으로 바울이 이제 그를 용서했음을 말해준다.
'용서'의 뜻은 '용서'라는 행위의 무조건성을 잘 나타내 준다. 즉 하나님의 용서가 인간의 의에 대한 급부(給付)가 아니라 인간의 불의에도 불구하고 은혜로서 주어지는 선물인 것처럼 바울이 지금 말하는 용서도 그런 것이라는 사실이다.
▶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 바울이 적대자를 용서하라고 한 것은 그의 영혼이 끝내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아마 그 적대자는 고린도 교회의 많은 교인들로부터 책망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반성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하지 않고 엄한 징계를 내린다면 그는 좌절하여 영영 교회에서 낙오되어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가 비록 바울의 권위에 손상을 입히고 교회에 해를 끼쳤지만 가능한 한 용서하고 권면하여 회개하고 새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고,
(눅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교회가 따라야 할 도리였으므로 바울은 이것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다.
[고후 2: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
바울은 적대자를 사랑하고 용서해야 하는 당위성을 한 영혼이 지나친 낙심 가운데 좌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회적(牧會的) 이유에서 찾고 있다.
이제 고린도 교인들은 그 적대자에게 사랑을 공개적으로 확인시켜 줌으로써 그의 슬픔을 덜어주고 그를 용서하였음을 확증해 주어 그로 하여금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만 했다.
[고후 2: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하여 - 본문은 바울이 '눈물의 편지'를 썼을 때,
(3-4절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주요 관심사가 적대자를 처벌하는 데 있지 않고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을 확인하고 바로잡아 주려는 데 있었음을 말해준다.
바울이 알고자 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여전히 바울의 가르침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하는 것과, 그들이 적대자로 말미암은 시험에 얼마나 잘 견디어 내는가 하는 것이었다.
본절의 `증거'로 번역된 헬라어 '도키메'가 '시험'(試驗)을 의미한다는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나타내준다.(the test).
[고후 2:10]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 너희가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 이것은 바울이 용서를 권면하면서도 결코 강요하지 않고 고린도 교인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바울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도 피해자였으므로 적대자를 용서할 것인가의 여부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용서해 주기를 바랐고 그들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지만 자기 자신은 이미 용서를 했다.
본문의 '네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이라는 표현은 가정(假定)이 아니라 이미 용서한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고린도 교인들이 용서하면 자신도 용서할 것이라고 진술하고서 곧이어 자신은 이미 용서했음을 말하는 데엔 분명 모순된 부분이 있는 듯 하나 여기에는 적대자를 용서해야 하는 당위성과 고린도 교인들도 바울의 뜻에 순종하여 용서하리라는 확신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더욱이 바울이 용서한 것은 자신의 관대함을 자랑하기 위함이나 순간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고린도의 교인들을 위하여 한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증인으로 보시고 인정하는 가운데 행한 진실된 것이었다.
[고후 2: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은 회개하고 있는 적대자를 용서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용서하지 않는 것이 곧 사단에게 속는 것이므로 속지 않기 위해서는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단의 목적은 기독교 신자를 유혹하여 자신의 종으로 삼는 것이다.
본문의 경우, 범죄 한 자의 마음을 낙담케 하여 완전히 좌절에 빠지게 하는 것이나, 피해자인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에 복수심을 유발시켜 범죄자를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나, 그리하여 용서하라고 권하는 바울과 용서하고자 하지 않는 교인들 사이에 분란을 야기 시키는 것도 모두 사단이 꾀하는 것이다.
▶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 그러나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은 사단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사단이 그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어떤 사악한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그 궤계를 저지(沮止)시키는 것이 사도로서의 직무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