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부탁과 작별 인사
성 경: [고전16:19-24]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고전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 아시아의 교회들 - 바울이 말하는 '아시아'는 현재의 터어키 지역에 위치한 당시의 로마령 아시아를 가리킨다.
바울이 본 서신을 쓴 장소는 에베소였으나 아시아의 교회라고 표현하고 있다.
에베소가 소아시아에 속해 있기는 하나 아시아 지역에는 라오디게아, 골로새, 히에라볼리도 있었다.
(골 4: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본절에서 아시아 전교회를 대표해서 인사를 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한 견해들이 있다.
(1) 비록 바울이 소아시아 전지역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 지역의 교회 대표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었기에 그들을 대표하여 인사했다는 견해이다(Grosheide, Lenski).
(2) 에베소가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이고 에베소 교회는 그 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교회이기에 대표성을 띠고 인사했다는 견해이다(Godet, Edwards, Robertson, Plummer).
이상의 두 견해는 모두 타당성을 갖는다.
본 구절은 바울이 에베소에 있으면서도 가까이 있는 모든 아시아의 모든 지역 교회들을 염두에 두고 사역하였음을 보여준다.
▶ 아굴라와 브리스가 – 이 둘은 부부로서 아굴라가 남편이고 브리스가가 아내이다.
이들은 고린도 교회를 세울 때 많은 도움을 주었고,
(행 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바울과 함께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Boice).
(행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또한 그들은 신앙의 깊이가 있어서 아볼로와 같은 사람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행 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한 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이들 부부에 대한 기록이 신약성경에 6번 정도 나오는데, 4번이나 아내인 브리스가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는 점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신앙생활에 있어서 남편 아굴라보다 아내인 브리스가가 더 열심이였던 것으로 추측된다(Morris).
[고전 16: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 '거룩하게 입맞춤'으로는 동양 사람들에게 있어서 화합, 애정, 존경의 표시로 이마나 볼에 입맞추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의 말씀이 신약성경의 서신서에 많이 나오고 있다.
(롬 16: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후 13: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살전 5: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벧전 5: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지만 '입맞춤'이 단순히 동양의 문화 양식만을 따른 의미로서 행해진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 더 깊고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
적어도 초대 교회에서 이 의식이 행해지는 데는 세 가지 의미가 있었다.
(1) '평화'의 표시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고 화해가 이루어졌듯이 교회와 교회, 신자와 신자 사이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화가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Edwards).
(2) '하나 됨'의 표시로 이제까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외인이나, 혹은 비록 복음을 받아들였다 할지라도 배도한 형제들에 대하여 그들의 회개에 따라 한 형제로 받아들임을 다시금 허락하는 표시였다(Lenski).
(3) '부활'의 표시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상기하여 굳세게 믿음을 지켜 나가자는 격려의 표시였다(Robertson, Plummer).
[고전 16: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 친필로 - 바울은 보통 자신의 편지를 구술하여 대필자로 하여금 적게 한 것이 대부분이다.
(롬 16:22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하지만 맨 마지막 문구나 인사말은 친히 바울이 기록하였다.
(갈 5: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골 4: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후 3:17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
바울이 이렇게 한 이유는 이 편지가 바울 자신의 것임을 확인시키기 위함이었다.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 바울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저주'를 대비시켜 주님께 대한 사랑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저주'는 어떤 사건과 관련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노여움 아래 맡겨진 것'을 의미한다(Boice).
본 절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르치는 바는 주님께 대한 사랑도 없이 자기 생각과 행동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할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다(Lenski, Edwards).
▶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 바울은 '저주'에 이어 곧바로 '소망'의 말을 잇는다.
본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라나다'는 아랍어 '마라나타'의 음역이며, 어떤 사본에서는 '마란아다'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아랍어 '마란아타'의 음역이다.
양자는 시제 상의 차이를 보이는데,
전자의 경우 '우리 주님이시여 오시옵소서'(our Lord, Come!)라고 번역할 수 있고,
후자의 경우는 '우리 주님께서 오셨다'(our Lord has come)라고 번역할 수 있다.(Chrysostom).
계 22:20에 나오는 헬라어 번역 '에르쿠퀴리에'('오소서 주여')는 명령형으로 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본 절에서는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한데
전자의 경우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역점을 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그리스도의 초림에 역점을 둔 것이다.
여기서 후자의 표기를 따라 완료형으로 해석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심판을 담당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담고 있고, 예언적 과거(prophetic past)의 용법으로서 미래적 사건을 과거시제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명령형으로 사용된 경우는 주의 재림을 촉구하는 의미로 모든 분쟁과 불의를 종식(終熄)시켜 고난을 없애주실 것을 소원하는 의미가 된다(Godet, Lenski).
[고전 16: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
'은혜'는 아무런 공로 없이 주어진 주님의 선물을 가리킨다.
바울이 이 문구로 고린도 교회에 문안 인사를 끝맺는 것은 고후 13:13에서도 나타난다.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본 절에서는 고린도 교인들의 미숙한 신앙 행동들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고린도 교회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1:4)가 더욱 깊어지고 계속되길 소원하는 바울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6: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
'그리스도 예수의 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너희 무리'라고 할 수도 있다.
바울은 본서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록하였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자신의 사랑을 모든 성도에게 쏟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한편 '너희 무리'라는 표현을 통해 바울은 그를 대적하고 따르지 않는 모든 교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사랑을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Mo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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