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4일 월요일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바울의 사역의 신실성

여정 변경에 대한 답변

 

성 경: [고후 1:12-14]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고후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 바울은 사도로서의 자신의 진실성을 굳게 단언함으로써 자신이 성실하지 못하다고 하는 비난에 대해, 윤리적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 앞에서는 윤리적 측면에서 진술했다면 여기서는 신학적 측면에서 자신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육체의 지혜''하나님의 은혜'가 대비되어 제시된다.

 

'지혜'(소피아)라는 말은 본서보다는 고린도전서에 많이 나오며,

 

본문의 '육체의 지혜'에 해당하는 병행구로

 

'세상의 지혜',

 

(고전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3: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인간의 지혜' 등이 나온다.

 

(고전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육체의 지혜'는 자신을 신뢰케 함으로 사리사욕에 빠지게 하기 쉽고 결국은 자기 파멸로 이끌고 간다.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에 반해 '하나님의 은혜'

그분의 자유롭고 능동적인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 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적 삶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끊임없는 보살핌이다.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사역은, 육체의 지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었다.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 바울의 행위가 윤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온전한 것이었음을 그의 양심이 증거한다.

 

'양심'(쉬네이데시스)이라는 말은 당시 고린도 지방에 널리 사용되던 용어였을 것이다.

 

즉 고린도인들은 그들의 도덕적 행위의 정당성을 증언할 때 '양심'에 호소하였던 것이다.

 

(고전 8:7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악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0: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7-29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의 양심'이 고린도 교회에 대한 그의 행위가 참되다는 것을 증언해 준다고 말하였을 것이다(Pierce).

 

한편 혹자는 본 절에 나타난 바울의 자랑은 자신을 드러내려는 공명심(功名心) 때문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를 잘못된 방식으로 자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올바로 자랑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한 의도에서 언급되었다고 한다.

 

(고전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고후 1:13]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 본문은 고린도 교인들 중에 바울의 서신이 진실하지 못하고 모종의 저의가 숨겨져 있다는 적대자들의 논리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었음을 시사하며, 그것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서신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의미 외에는 다른 의도가 전혀 숨겨져 있지 않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고후 1:14]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본절은 다소 완곡어법적(婉曲語法的)인 표현으로 되어 있다.

이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목회가 다소 어려움이 있음을 엿보게 한다.

 

즉 지금은 완전한 상호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에의 기대를 바울이 본절을 통해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 여기서 '대강'(메루스)이라는 표현이 바울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의 수를 나타내는지(Farrar), 아니면 바울을 이해하고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지(Barrett) 분명치 않으나 후자의 의미가 정확하다고 본다.

 

그들은 바울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 온전히 알지 못했다.

 

우리 주 예수의 날에 - 이 날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게 될 날이다.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전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살전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살후 2: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고린도 교인들이 지금은 바울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지만, 모든것이 드러나게 될 심판의 날에는 바울의 진실됨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 - 이는 심판의 날에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간에 상호신뢰의 관계가 형성될 것임을 의미한다.

 

아울러 본 구절은 장래에 고린도 교인들이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임을 바울이 이미 믿고 있고, 또한 그렇게 될 때에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은 바울의 피 땀 어린 사도적 사역에 힘입은 것임(고전 4:4-10;11:1)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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