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리면서 쓰는 편지
여정 변경의 이유
성 경: [고후 2:1-4]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2:1]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
본문은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하기 이전에 두 번 고린도를 방문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왜냐하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설립을 위해 첫 번째로 그곳을 방문한,
(행 18:1-8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
이후에 쓴 고린도 전서에는 슬픈 방문에 관한 어떤 암시도 없는 반면
본문에는 '가슴 아픈 방문'에 관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에 의해 야기될 바울에 대한 오해와 교회에 발생한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두 번째로 그곳을 방문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를 발송한 이후에 있었던 이 두 번째 방문은,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13:1-2 내가 이제 세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더욱 큰 불신과 마음의 상처만 남긴 방문이었기에 가슴 아픈 방문이었다.
이 가슴 아픈 방문이 1:15,16절의 여행 계획과 관련이 있다고 보며,
(1:15-16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마게도냐로 가는 길에 방문한 것이 바로 이 방문이었다고 본다. 그리하여 되돌아오는 길의 방문은 피차간의 가슴 아픈 만남이 되지 않기 위하여 여행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변경시킬 때 상당한 고심(苦心)을 한 흔적이 엿보이는데 이는 그가 계획의 변경을 서술할 때 '결단했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
[고후 2: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
본절에 대한 개역성경의 번역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 내용은
"나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나를 기쁘게 해줄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 주는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의 뜻이다.
이 말 속에는 바울이 고린도 방문 계획을 변경한 이유가 암시되어 있다. 즉 원래의 계획대로 고린도 방문을 강행하여 지금까지 저지른 성도들의 잘못을 엄단한다면 그것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큰 근심의 요소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지 않고 계획을 변경하여 그들에게 회개(悔改)할 시간적 여유를 줌으로써 훗날 기쁨으로 만나기를 원했던 바울의 깊은 생각이 담겨 있다.
이렇듯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하고 자신에게도 기쁨이 되는 세심한 목회적 배려를 바울에게서 배워야 하겠다.
[고후 2: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 이같이 쓴 것은 - '쓴 것은'에는 서간체의 과거형으로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썼던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고린도전서이거나 전서와 후서 사이에 보낸 것으로 알려진 '눈물의 (준엄한) 편지'일 텐데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Lowery, Harris).
이 편지는 현존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바울이 가슴 아픈 방문을 한 후 기록한 것으로 믿어지며 A.D.56년 봄 디도를 통해 고린도에 보내진 것으로 보인다.
▶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 바울이 씨를 뿌려 거둔 열매인 고린도 교인들은 당연히 바울에게 기쁨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관계가 매우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바울에게 기쁨을 주어야 할 고린도 교인들이 도리어 근심을 끼치는 형편이 되었다.
바울이 진정으로 근심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은 단순히 오해에서 비롯된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염려하는 것은 그들이 거짓 사도들에 현혹되어,
(11: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런 문제에 대해 직접 방문하여 책망하고 문책(問責)하는 것이 피차에 마음만 상하게 할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는 고린도 방문 계획을 취소하고,
(1:15-16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대신 눈물의 편지를 디도를 통해 보냄으로써 회개의 기회를 주고자 했던 것이다.
▶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줄 확신함이로라 - 바울이 겪는 모든 희노애락은 고린도 교인들을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12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지금은 관계가 많이 악화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바울은 자신의 기쁨이 그들의 기쁨이 된다는 확신을 표하는 것이다.
혹자는 본문에서 고린도에는 문제를 야기시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5-6절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11:13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대부분의 교인들은 여전히 건전했다고 추론한다(Barrett).
[고후 2: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 - 이것은 바울이 '눈물의 편지'를 쓰게 된 이유와 그때의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환난'은 `압박', '괴로움'을 뜻하며
'애통'에는 '억압', '고통', '고민'의 뜻이 있어 바울의 심정이 매우 심한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바울이 이토록 깊은 심적 고통을 당했던 것은 고린도 교회안에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고 이들의 반(反) 바울적 논리에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가 동조(同調)하는 데까지 나아갔기 때문이다.
▶ 많은 눈물로 - 바울이 겪고 있는 심적 환난과 애통은 눈물로 씌어진 편지에서 절정을 이룬다.
바울은 가끔 눈물의 편지를 쓰거나 눈물로 호소했는데,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행 20: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이것은 눈물 흘리는 것을 수치로 여겨 참았던 스토아의 학자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 근심하게 하려 한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
이것은 바울의 눈물의 편지가 부분적으로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을 슬프게 했음을 말해준다.
(7: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바울이 눈물로 써보낸 편지의 핵심은, 비록 그들이 바울을 슬픔 가운데 빠지게 했지만 바울은 그들에 대하여 지금도 변함없는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 사랑을 '넘치는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혹자는 이처럼 문제가 많은 고린도교인들을 남달리 사랑하는 데에는 문제아(問題兒)들을 더 사랑하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Farrar, Barrett).
자기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전하고 있는 바울의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회개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7: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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