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6일 일요일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마지막 부탁과 작별 인사)

 

성 경: [고전 16:13-18]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 이 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18)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

 

 

[고전 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깨어 - 이는 명령형으로 일시적인 행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태를 유지하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예수께서 세상의 끝 날에 있을 징조를 설명하면서 사용하신 바 있다.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믿음에 굳게 서서 - '굳게 서서''흔들림 없는', '확실한', '의심없는' 등의 의미로 본절에서는 믿음의 상태가 견고함을 가리킨다.

 

한편 '믿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테이'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역사적인 객관적 사실로 인정한다는 것(fides quae creditur)

역사적 사실에 의거하여 주관적 진리로 확신하는 것(fides que creditur)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 교인에게 권면한 내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이해하고 그 위에 든든히 서라는 것이다(Lenski).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 '남자답게''성인 남자' 혹은 '남편'을 가리키는 말로 때로는 힘의 상징으로서의 남성을 가리키기도 했다(TDNT).

 

이 단어는 부사처럼 번역되었으나 동사로 '남자 다워라'는 의미이며 본절에서는 동사로 신앙을 지키는 것을 '남성 다움', 또한 '강건함'과 연관 짓는다.

 

'강건하여라'에는 그리스도인이 갖는 신앙의 힘이 타고난 육체적인 힘과는 달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적인 것임을 보여준다(Morris).

 

 

[고전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사랑으로 행하라 - '사랑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아가페''사랑을 가지고'(with charity)로 번역하기보다는 '사랑 안에서'(in love)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사랑은 그들의 행동을 위한 부수적인 수단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이어야 한다.

 

바울이 마지막 권면에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사랑을 최고의 것으로 본 동시에 최종적인 열매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고전 16: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 스데바야의 회심은 바울이 아덴에 복음을 전했을 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7: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17:34의 누가의 기록이 스데바나의 회심을 뒷받침 해 주고 있다면 본절과 지명의 차이의 보이는 문제가 생기지만, 본 절에서는 스데바나 개인만을 언급하지 않고 그의 가족 전체를 가리켜 아가야의 첫 열매로 지칭한다고 보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키안'은 라틴어의 '파밀리아'(familia)와 마찬가지로 '가족들'뿐만 아니라 '노예들'까지도 포함하였다(Boice).

 

따라서 스데바나가 아덴에서 회심한 이후에 아가야에 돌아와 그의 가족들을 모두 회심시켰다고 볼 수 있다.

 

성도 섬기기로 - 바울이 보다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기 때문에 스데바나의 가족이 어떤 종류의 봉사를 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면 둘로 나눌 수 있다.

 

(1) 혹자는 병든 자나 가난한 자를 돕는 일, 자기 집을 집회 장소로 내어 놓는 일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Godet).

(2) 혹자는 스데바나가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는 일에 많은 연보로 봉사했다고 본다(Edwards, Hofmann).

 

이상의 견해들 가운데 (1)의 견해가 보다 더 옳은것 같다.

왜냐하면 (2)의 견해를 따르면 스데바나가 연보를 시작한 것은 바울이 연보에 대해 가르친 시기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행했다는 뜻이 되는데 연보를 시작한 것이 시기상 그렇게 이르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작정한 줄을 - 이는 '스스로를 준비시켰다'라는 의미로 스데바나의 가정이 자발적이고도 헌신적으로 봉사했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또한 그들이 교회에서 섬기는 직무로 선출(選出)되지도 않았음을 추측케 한다(Morris).

 

 

[고전 16:16] 이 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복종하라 - 이 단어는 스데바나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자발적인 순종을 본받아 자신들을 낯춰 교회와 성도를 섬기기에 힘쓰라는 의미이다.

 

바울이 서신의 끝부분에서 이렇게 권면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나이나 경험이 비슷한 사람들을 존경하는 일을 천성적으로 못하였기 때문이다.

 

고린도 교인의 이러한 결점은 바울의 서신보다 약 35년 늦게 보내어진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서신에도 나타난다(Godet).

 

 

[고전 16: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니라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 이들은 신약성경에서 본 절에만 등장한다.

 

브드나도는 바울의 편지가 있은 지 약 35년 뒤에 기록된, 로마의 클렌멘트의 편지에는 종종 등장하지만 동일인이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에 이런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고, 시간적으로도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아가이고는 다른 곳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노예였거나 노예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혹자는 그들이 스데바나의 노예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하고(Godet, Grosheide), 혹자는 1:11을 근거로 하여 글로에의 종들이었다고 추정한다(Edwards, Lenski). 이 견해들 가운데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분명치 않다.

 

너희의 부족한 것 - 이는 적은 재산을 가리키기도 하고,

 

(12: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물질적 궁핍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후 8:1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또한 믿음의 교훈이 부족하다는 것과,

 

(살전 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사랑을 나눔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본절에서는 물질적인 부족함보다는 사랑의 나눔의 부족함을 가리킨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고린도 교인들을 행한 바울의 충고와 애정을 대신 전해 주었고, 또한 바울에게도 그를 향한 고린도 교인들의 애정을 전해 줌으로 바울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지금은 고린도 교인들과 떨어져 있는 바울에게 그들 세 사람이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이다.

 

 

[고전 16:18]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 스데바나와 함께 온 형제들이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에게 시원함을 준 것은 단지 감정상의 위로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혼에까지 영향을 끼쳐 참 안위를 주었음을 가리킨다(God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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