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바울의 긍정적 사랑(2)
여정 변경에 대한 답변
성경: [고후 1:21-24]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23)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고후 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 견고케 하시고 -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의 관계는 신실하신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진실만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을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세우신 분이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이실진대, 그리고 그들의 믿음을 강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더욱 풍요롭게 하실 분이 하나님이실진대 양자 사이에 사소한 일로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본문에 함축된 의미이다.
▶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 '기름을 부으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리사스'는 `기름을 붓다', '신성하게 하다'는 뜻의 헬라어 동사 '크리오'에서 온 말로 구약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크리스토스)와 같은 어원을 갖는다.
또한 구약에서 기름을 붓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람들을,
(선지자 - 왕상 19: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왕 - 왕상 1:39 제사장 사독이 성막 가운데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양각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 왕 만세를 부르니라;
제사장 - 출 29:7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
구별하여 소명을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 하나님께서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름을 부었다고 하는 것은 위의 두 경우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그들의 기름 부음 받음은 하나님께서 사명을 부여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사명은 그리스도의 기름 부음 받음 즉 그리스도의 소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것은 육체적인 것이나 개인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의해 확증받는 것이다.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 우리에게 인치시고 - `인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프라기사메노스'는 '공문서의 효력을 보장해 준다'는 의미가 있다. 즉 이 인(印)은 봉인된 서류가 변조되거나 수송 중에 내용물이 변경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며 또한 소유권의 표시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성령으로 인(印)치셨다는 것은 성도들을 당신의 소유로 확인하셨다는 것이며(set his seal of ownership on us, NIV)
성도들에게 구원의 궁극적인 확실성을 부여해 주셨다는 것이다.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 보증으로 성령을 - '보증'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라본'은 히브리어 '에라본'에서 유래한 상업적인 단어로
(창 38:18 유다가 가로되 무슨 약조물을 네게 주랴 그가 가로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더라)
어떤 물건을 매입하기 위하여 지불해야 할 대금의 총액 중 '첫번째 분납금'(down payment)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당신의 소유로 삼기 위해서 보증금을 지불하셨다.
사람에게 있어서 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을 지불하는 것이 반드시 소유를 확정지어 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형편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며 또 그 마음도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보증금을 지불하셨다는 것은 곧 그분의 완전한 소유(所有)가 되는 것을 뜻한다.
성도들은 완전한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것은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성령께서 증거 하신다.
(롬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갈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고후 1:23]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 바울은 자신의 여행 계획이 어떠했고 그 계획이 왜 바뀌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가,
(15-17절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보내줌으로 유대로 가기를 경영하였으니
17)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자신의 여행 계획이 근거하고 있는 복음과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자기의 진실성을 먼저 확인시킨 뒤,
(18-22절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여행 계획을 재 변경시킨 사유를 밝히고 있다.
먼저 그는 자신의 영혼을 걸고 거의 맹세에 가까운 표현으로 자신의 진실성을 자신있게 주장하고 있다.
바울은 가끔 그의 주장을 강력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롬 1: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빌 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살전 2: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이러한 문구는 당시 헬라 문학에서 사용되던 저주문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바울의 문구는 구약에 보편적으로 사용된 맹세문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다.
(룻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삼상 14:44 사울이 가로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삼하 3:35 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해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매).
여기서 바울이 감히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은, 맹세가 아니라 그의 전 생애가 하나님 앞에 밝히 드러나 있다는 그의 신앙적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 바울이 계획을 바꾸어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은 결코 바울 자신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고린도 교인들을 아끼는 마음 때문이었다.
만약 바울이 그들을 아끼는 마음이 없이 본래의 계획대로 고린도를 찾아갔다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마음 아픔뿐이었을 것이다.
(2:2-3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에는 벌을 받아야 할 만큼 바울을 근심되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5-7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은 그들을 징계할 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러기보다는 그들 스스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했다.
(2: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이것은 목회자로서의 바울이 매우 지혜롭고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고린도의 문제교인들은 바울의 인내와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을 왜곡(歪曲)하여 도리어 그를 비난하였다.
[고후 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 - 여기에는 바울의 목회관이 나타난다.
'주관한다'는 것은 '지배한다'는 뜻이며(lordover), 이는 바울이 자기의 복음 전도에 의해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지배자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신앙적 기쁨을 위해 돕는 봉사자로 나아가기를 원했음을 말해준다.
여기에는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그의 신학적 이해가 깔려 있다. 즉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신앙을 갖게 된 성도들에 대하여 일정한 사도적 권위를 가지기는 하지만,
(10:2-8 또한 우리를 육체대로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을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려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3)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고전 5:4-5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딤전 1: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궁극적으로 신앙인의 실존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만 규정된다고 보았다.
또한 신앙은 지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인 만큼, 바울은 그들 스스로가 신앙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선의 목회라고 보았다.
이처럼 바울이 사도적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고린도 교인들의 기쁨을 위해서 봉사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자신의 육체적 이익을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비난하는 자들의 주장이 어불성설(語不成說)임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