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0일 목요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문안 인사

 

성 경: [고후 1:1-2]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후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 바울은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 후서, 빌레몬서를 제외한 모든 서신에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밝힘으로써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에 의해 택함받은 열 두 제자들 중 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3:14-19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그가 개심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특별한 계시에 근거하여,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열 두 졔자들과 동등한 사도라고 주장하였다.

 

(11: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2:6-7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그런데 바울이 본서신의 서두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왜냐하면 바울이 본 서신에서 바울이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그를 대적하는 자들이 그의 사도권에 대해 도전해오는 것에 대응하여 자신의 사도됨의 정당성(正當性)을 밝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참고 : (고후 2:14-7:4).

 

디모데 -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소스데네를 공동 발신인으로 언급한 것(고전 1:1)과 달리

 

(고전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우리 형제 소스데네는)

 

디모데를 본 서신의 공동 발신인으로 언급한 것은 디모데가 본 서신의 공동 저자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에게 디모데의 권위를 회복시키기 위함이다.

 

디모데는 바울로부터 고린도에 파송되어 사역 감당했던 일이 있었지만, 그는 나이가 젊고 담대하지 못하였고,

 

(딤전 4:12 아무도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너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영과 믿음과 순결에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라;

 

딤후 1: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주지 아니하시고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주셨느니라;

 

2:1 그러므로 내 아들아, 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 안에서 강건한 자가 되고),

 

고린도 교회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역은 미미한 성과밖에 거두지 못였거나 거의 실패했었다.

 

(고전 4:17 이런 까닭에 내가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주 안에서 신실한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나니 내가 모든 곳,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그가 너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길들을 기억나게 하리라;

 

16:10-11 이제 디모데가 이르거든 주의하여 그가 두려움 없이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라. 그가 나처럼 주의 일을 행하느니라.

11) 그러므로 아무도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그를 안내하여 내게로 오게 하라. 그와 또 형제들을 내가 기다리느니라).

 

이런 일에 대하여 바울은 그의 신앙의 아들이자 가장 절친한 동역자로서 자신과 함께 계속 사역해야 할 디모데의 권위를 다시금 세워주어야 할 필요를 절감하였을 것이다(Harris).

 

또한 비록 과거에 디모데가 고린도에서 바울 반대파로 인해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을 했던 일이 있지만,

 

(고전 16:10-11 이제 디모데가 이르거든 주의하여 그가 두려움 없이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라. 그가 나처럼 주의 일을 행하느니라.

11) 그러므로 아무도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그를 안내하여 내게로 오게 하라. 그와 또 형제들을 내가 기다리느니라),

 

그럼에도 블구하고 바울이나 디모데는 그들에 대하여 여전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본 서신의 서두에서 보여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한편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모범적인 젊은이였으며,

 

(16:1-2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에게는 아들이라고 불릴만큼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딤전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딤후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 후서, 빌레몬서의 서두에 언급될 만큼 절친한 동역자이기도 했다.

 

(16:1-3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 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2:19-22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 여기서 '하나님의'라는 소유격은 교회의 소유자가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고린도 교회에 침입해 들어와 바울의 권위를 깍아 내리고 추천장을 내세워 자기들의 권위를 주장하며 자기들만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고 주장하여 고린도 교회에 문란을 일으켰던 적대자들과,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10: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그에 동조했던 사람들은 교회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알아야 했다.

 

한편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 함은 본 서신의 수신자가 고린도 교인들뿐만 아니라 고린도 지역과 그 주변에 있는 교인들이 모두 해당함을 암시한다.

 

즉 이 표현은 여러 수신처를 포괄(包括)하는 대표적인 언급이라 하겠다. 이러한 견해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서신의 초두에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문구에 이어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고전 1:2)라는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도 충분히 지지될 수 있다(Tasker).

 

바울은 두 개의 고린도서신이 고린도와 그 이외의 지역에서도 읽혀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가야 - 로마가 헬라를 지배할 당시 로마는 헬라 전체를 마게도냐(Macedonia)와 아가야(Achaia) 두 지역으로 구분하여 통치하였다.

 

에피루스(Eqirus), 데살리(Thessaly), 갈시디스(Chalcidice)를 포함하는 중북부 지역이 마게도냐에 속하고 아덴(Athens)과 펠로폰네수스(Peloponnesus)를 포함하는 남부 지역은 아가야에 포함되었고 아가야의 행정 수도는 고린도(Corinth)였다.

 

바울이 본 서신을 보내면서 고린도뿐만 아니라 고린도를 포괄하는 아가야 전지역의 성도들이 읽기를 희망했던 것은 아덴에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는 행 17:34의 기록과

 

(17: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겐그레아에 한 교회가 있었다는 롬 16:1의 기록과 부합되는 것이니,

 

(16: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아덴과 겐그레아는 모두 아가야 지역 내에 위치한 곳이었다.

 

성도 -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은 다른 이방 민족들과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었고,

 

(23:9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147:20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따라서 그들의 삶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제사장 직분의 삶이어야 했다.

 

(11:44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신약의 성도는 성별된 구약 이스라엘의 영적 계승(繼承)자로서,

 

(벧전 2:9-10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소극적으로 죄악으로부터 분리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헌신, 봉사해야 할 자들이다.

 

 

[고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은혜와 평강이 - 본절에서 하나님은 아버지로 불리며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로 불리는데,

 

이는 ''(퀴리우)가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지칭할 때 사용된 것임을 고려할 때(아도나이) 예수는 곧 하나님이심을 제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본 절은 삼위일체의 근거가 되는 구절이다.

 

본절과 동일한 내용과 형식을 가진 구절이 고전 1:3에도 나오는데,

 

(고전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는 전통적인 헬라식 문안 인사말과 히브리식 문안 인사말을 결합한 바울 특유의 전형적인 인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은혜'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존재근거인 하나님의 선재적(先在的)인 행위로, 받는 자의 행위나 자격에 의해 정당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호의' 또는 '선물'이다.

 

특히 여기서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화목하시기 위하여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고 예수께 지우신 것을 의미한다.

 

(5:19-20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평강'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구원이 보증된 영혼의 평안한 상태를 가리킨다.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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