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
성 경: [고전 16:1-9]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
본문은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연보 문제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어려움에 처한 자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특별한 이유로는
(1) 원래 빈민층이 많았고,
(2) 여러 차례에 걸친 팔레스틴 지방의 흉년으로 인해 기근으로 처해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고전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행 11:28에 보면 글라우디오 때에 흉년이 들 것이라는 아가보의 예언이 전해지고 있고,
(행 11: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갈 2:10에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비참한 빈궁 속에 빠져 있음이 나타나 있다.
(갈 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예루살렘 교인들을 도운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곤궁에 처한 예루살렘 형제들을 도우라고 권면한다.
▶ 연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게이아'는 여기에서만 쓰였는데, 후대에 이 말은 세금과 관련되어 쓰여졌다.(Barrett).
'로게이아'의 이러한 용법 때문에 혹자는 바울의 헌금에 대한 가르침이 예루살렘 성전에 비친 유대인들의 세금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고 주장한다.(J. Jeremias).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세금은 강제성이 부여된 징수인데 반해,
연보는 사랑에 기초하여 어려움을 당한 교회를 돕기 위한 자발적인 헌납이기 때문이다. (Kittel).
연보는,
(1) 대가 없이 주는 '선물'(카리스, '은혜')이며,
(3절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고후 8: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2) 서로 나누는 '교제'(코이노니아, '동정')의 방편이며,
(롬 15: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3) '섬김'(디아코니아)의 진정한 표현이고,
(롬 15:31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고후 8: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4) 다른 사람에게 복을 기원해 주는 것(율로기아, '축복')을 합당하게 구체화 시키는 것이다.
(고후 9: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를 권면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으나, 본문은 갈 2:10에서 결정된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갈 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당시의 많은 교회들은 예루살렘의 결정에 따라 연보에 동참하였다. 이러한 전체 교회의 전체 운동은 단순한 구제 운동에 그친 것이 아니라,
(1) 교회의 단일성과 통일성을 고취시켜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연합을 도모하며,
(2)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랑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한편 갈라디아는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 당시 개척한 안디옥, 마게도냐 지방을 통틀어 생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Barrett).
여기에 대한 근거는 고후 8:1이하에 마게도냐 교인들이 궁핍한 중에서도 최선을 다해 풍성한 연보를 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한 사실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소개할 때, 마게도냐 지방을 넓은 의미에서 갈라디아 지방으로 해석한 데 있다 하겠다.
[고전 16: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 '매주일 첫날에'은 '매 안식 후 첫날에'라는 뜻으로 오늘날의 '주일'(Lord's day)에 해당한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주로 안식일에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으나,
(행 15: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그것을 기리며 '안식 후 첫날'에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행 20: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이처럼 초기에는 주일과 안식일에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지만, 유대교인의 기독교 박해로 두 종교간의 갈등이 심화 되면서 4세기 초부터 기독교는 주일을 정규적인 교회의 집회일(集會日)로 정했다.
한편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연보를 드리는 세 가지 원칙을 말하고 있다.
(1) 연보를 드리는 시기가 '주의 날'임을 밝힌다.
(2) 연보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각자의 형편에 따라 하도록 하였다.
이는 연보를 하는 사람들이 어떤 특정 부류의 계층에만 제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모든 사람이 연보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모두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3) '이를 얻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오도타이'는 '유오도오'의 현재 수동형으로 '번영된다', '바르게 인도되다'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해 주시는 대로' 또는 '기회 주어지는 대로' 연보하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겠다.
[고전 16:3]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도착한 후 연보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갔지만, 바울 자신이 직접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니고 고린도 교회에서 추천한 사람이 가져가도록 하였다.
바울이 이렇게 한 이유는 교회 재정을 취급함에 있어 호리라도 의심을 살 만한 여지를 남겨두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 너희의 은혜를 - '은혜'에는 '즐거움을 주는 어떤 것', '친절한 호의' 등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보낼 선물로 친절하고 자비로운 '사랑의 연보'를 가리키며(Lenski), 이러한 구제의 연보는 대가를 전혀 생각지 않는 선물이다.
[고전 16: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
▶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 바울의 계획은 불확실하였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인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다만 고린도 교회가 드린 연보의 액수가 크면 그 분배(分配)를 위해 전달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갈 것이라고 밝힌다.
사실 나중에 살펴보면, 고린도 교회가 연보한 금액은 상당히 많은 것이었으며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과 동행하여 예루살렘에 간 것으로 나타난다.
(행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오와 드로비모라;
룸 15: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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