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는 것과 다시 사는 것 2
(고린도 전서 15:35-50)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에 반대하는 그럴싸한 주된 반대에 대하여 답변한다.
반대의 제안을 관찰하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35절).
그들이 어떻게 일어날까? 무슨 능력으로 일어날까?
그것이 이방인들 중에서 유행하던 사상이며 사두개인들은 죽은 인간을 영생시키며 죽은 자를 재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범위 내에 있지 않다고 믿는 것 같다.
죽은 자의 부활을 반대하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그들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전연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반대의 다른 하나는 부활할 몸의 성질이다.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같은 몸으로, 같은 모양으로, 같은 크기와 지체로, 같은 성질로 오느냐 여러 성질로 오느냐?"
먼저 반대는 교리를 반대하는 자들의 것이고, 후자는 호기심의 의심하는 자들의 것이다.
Ⅰ. 전자의 반대에 대하여 바울은 매년 씨가 죽고 다시 살아나는 신령한 능력과 같이 죽은 자도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은 자의 부활이 그와 같은 능력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은 너무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토이다.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고"(36절)
다시 살아나기 전에 썩어야 한다. 죽은 후에 싹이 돋아날 뿐 아니라 살기 위하여 죽어야 한다.
매년 씨앗이 살아나는 그러한 힘으로 죽은 자가 살아날 것을 상상치 못함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것이 첫째 질문에 대한 사도의 답변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가 죽은 것이 살아나서 재생하는 것은 매일 보면서 죽은 자를 일으킬 신령한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Ⅱ. 바울은 둘째 질문에 더 상세히 대답한다.
1. 심지어는 씨가 변화하는 것을 지적한다.
뿌리는 것을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밀이나 알갱이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형체를 부여하신다. 서로 다른 종류를 구별하시기 위함이다.
뿌려진 모든 씨는 고유의 형체를 가지고, 그 종류에 알맞는 성질과 모양을 가진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모르는 것과 같이 씨앗이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분명하다. 죽은 자가 죽은 후에 그들의 몸으로 일어나는 모양도 이와 같다는 것이 이 절에 암시되어 있다.
2. 계속해서 식물에 있어서 여러 종류가 있는 것과 같이 육체에 있어서도 여러 종류가 있다.
(1) 육체의 종류.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요“
사람의 육체도 있고 짐승의 육체도 있고 물고기의 육체도 있고 새의 육체도 있다(39절).
모든 종류에는 고유한 형체가 있어서 서로 다른 것이다.
(2) 땅의 육체도 있고 하늘의 육체도 있다.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과 다르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의 참 영광은 지위와 상태에 적당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땅의 육체는 하늘에 어울리지 않고 하늘의 육체는 땅에 어울리지 않는다.
(3) 하늘의 육체 중에도 여러 영광이 있다.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41절).
이 모든것이 다음을 암시해 준다.
죽은 자의 부활도 안전히 변하여 하늘에 적당하게 되며 해와 달과 별들의 영광이 있듯이 죽은 자의 부활도 여러 영광이 있을 것이다.
같은 재료에서 여러 종류의 식물과 육체를 형성하는 것과 같이 죽은 자와 썩어질 육체를 일으키는 능력도 하나님에게는 있음을 암시한다.
태양과 별들도 지구와 같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으나 하나님의 교묘한 기술로써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같은 재료에서 그렇게나 많은 것은 만드시는 분이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없겠는가?
3. 문제에 대하여 직접 말한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다"고 말한다.
썩어질 씨앗에서 식물이 자라나는 것과 같이 하늘의 육체를 입게 된다. 별들의 영광이 다른 것과 같이 다시 사는 육체도 영광이 다르다.
(1)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산다."
그것은 심어진다. 죽은 자를 묻는 것은 심는 것과 같다.
심어지는 우리의 육체는 썩어지며 부서지기 쉬우나 우리가 다시 살 때에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 되어 다시는 썩지 아니한다.
(2)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산다."
현재의 우리의 육체는 나쁜 육체이다.
(빌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죽은 시체보다 더 싫은 것은 없다. 아무런 줄거움이 없는 경멸받고 깨어진 그릇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시에 영광이 더하여진다.
우리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된다. 땅의 모든 찌꺼기에서 정결하게 되어 맑은 물질이 되고 주님의 몸과 같이 빛이 나게 된다.
(3)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그것은 가련한 물건으로 사망의 지배하에 모든 활력과 생명과 힘을 박탈당하여 땅에 묻힌다. 그것은 움직일 수도 없다.
우리가 다시 살아날 때에 우리의 육체는 신령한 생명을 얻어 새 힘을 가진다. 그들은 건장하고 굳세며 영원하여 연약함과 부패를 당하지 않는다.
(4) "육의 몸으로 심는다."
즉 동물과 같은 몸(sw/ma fuciko.n), 신령한 상태와 기쁨에 비교하면 거치른 천한 상태와 감각적인 쾌락에 적당한 몸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일어날 때에는 전연 다르다. 우리의 육체는 신령하게 된다.
육체가 육체 아닌 것이 되며 물질이 비물질이 된다는 말이 된다.
표현이 비교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부활 때에는 우리의 몸이 최고로 순결하여지고 밝고 민활하게 된다. 비록 그들이 영이되지 않더라도 영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무에서 창조하시고 같은 물질에서 여러 종류의 물질을 만드시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썩어질 생명이 없는 몸에서 불후의 영광스러운 생명의 몸을 만드실 능력이 없겠는가?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며" 불가능일 수가 없다.
4. 바울은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의 비교로써 설명한다.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몇 가지의 예로써 설명한다.
(1) 첫째 아담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육의 몸을 가진 것과 같이, 둘째 아담에서 신령한 몸을 기대한다. 이것이 전체의 비교에 내포되어 있다.
(2) 이것은 이 두 사람이 가진 다른 성질에 위치한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즉 우리들 자신과 같이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번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자기보다 더 낫지도 않고 다르지 않는 자기와 같은 육의 몸과 성질을 물려 주었다.
“둘째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 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그에게는 생명이 있고 원하시는 자를 살리신다.
(요 5:21-22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그의 육체는 땅에 알맞다. 그러나
"둘째 아담은 하늘에서 난 주이시니"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땅에게 생명을 준다.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자는 하늘에 계셨던 자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주이시다.
첫째 아담이 우리에게 육의 몸을 전하여 줄 수 있다면 둘째 아담이 우리의 몸을 신령한 몸으로 만들 수가 없겠는가?
이 하계의 대리적인 주가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하늘과 땅의 주님께서 그 일을 하실 수 없을까?
(3) 우리가 둘째 아담으로부터 신령한 몸을 얻기 전에 첫째 아담으로부터 육의 몸을 가져야 한다(49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이것이 섭리의 질서이다.
우리가 살아있고 영적이며 불멸의 몸을 둘째 아담의 살리는 능력으로 받기 전에 약하고 깨어지기 쉽고 죽어야 하는 육체를 첫째 아담에서 받아야 한다. 우리는 다시 죽지 않고 살기 위하여 먼저 죽어야 한다.
(4)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다운 신자는 육의 몸을 가진 것과 같이 영의 몸을 가질 것도 그만큼 확실하다. 우리는 첫째 아담을 닮아 땅에 속했으며 둘째 아담을 닮아 하늘에 속했다. 육의 몸을 가진 확실성만 영의 몸을 가질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다시 살 만 아니라 영광스럽게 변화한다.
5. 이 변화의 이유를 지적하면서 바울은 논술을 종합한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50절).
자연의 몸은 육이요 피요 뼈와 근육과 신경과 혈관과 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육체는 썩어질 구조요 부패하기 쉽다. 이런 것이 하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는 없다. 썩을 것이 썩지 못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으면 모순이다.
하늘 나라는 썩지 않으며 시들지 않는다.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이것이 어떻게 육과 혈로써 소유되겠는가?
이것이 하늘나라를 이어받기 전에 영원한 물질로 변화되어야 한다.
종합하면 성도들은 다시 살 때에 현재의 상태에서 크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썩어질 혈과 육이지만 그때에는 썩지 아니할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이 되어서 하늘의 세계와 상태에 적합하게 된다. 그곳에서 영원한 나라에서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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