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의 위자(慰藉)
누가복음 23장 4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문(問) : 선생님,
누가복음 23장 43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옆 십자가에 달린
도적 한 사람에게 한 말씀의 뜻을 말해 주십시오.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란 무엇일까요?
답(答) : 그렇습니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에 의해 많은 '신학'설이 세워졌습니다.
혹은 '오늘'이라고 있는 데서,
사람은 죽으면 즉시로 천국에 들어간다든가,
혹은 '낙원'이라고 있으므로,
천국은 어떤 일정한 장소이라든가,
혹은 천국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건설될 것이므로,
낙원은, 그때까지의 죽은 선인의 일시의 휴식소라든가,
주의 죽을 때(임종)의 일언(一言)이
많은 신학자의 두뇌를 번거롭게 하게 된 것은 실로 기이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도의 정성을 생각하지 않는 데서 온
오상(誤想)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에 처하여 신학설을 주창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죄를 뉘우치는 한 죄인을 위로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 죄인은 아마도 무지 무학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물론 신학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천국의 복음조차,
일찍이 들은 바 없는 자였을 것입니다.
그는 다만 당시의 평인의 1인으로서,
사후에 낙원이 있음을 희미하게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무지한 자를 위로함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이상 또는 신앙을 말씀치 않고
평인이 해득할 수 있는 말로서
평인의 마음을 위로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도 도적에게 있어서도,
숨이 막 끊어지려는 순간입니다.
그 때,
예수는 어린이를 위로하는데 어린이의 말로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뉘우치는 죄인에게 말씀했습니다.
'나는 네 회개를 듣고서 아주 기뻐한다. 위로 받으라.
네가 들은 대로, 너는 죽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이 말씀을 들은 도적은 얼마나 기뻐했을 지요?
그에게는 죽음의 고통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물론 그렇게 하여 뉘우친 죄인을 속이신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 중에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죄인은 실로 그리스도와 함께 그날 낙원에 있었던 것입니다.
실로 그가 죄를 뉘우친 그 시각,
그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유루(omission)없이
다 말할 수 있는 인간의 말이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말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모두 갓난아이의 말입니다.
즉 표호(a sign)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경우에 있어서는,
그의 천국의 복음을 무지한 죄인의 말로 역하신 것입니다.
신약성서 중에 낙원(paradise)이라는 문자가 사용되어 있는 곳은,
여기 외에 고린도후서 12장 4절과 계시록 2장 7절입니다.
(고후 12장 4절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계시록 2장 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모든 후세의 사람이 쓴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이 말을 쓴 것은 다만 이곳뿐입니다.
그는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낙원'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마도 특별히 이 말을 피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치 오늘 우리들이 일본에 있어서
'극락'이라는 것과 같아,
이는 많은 물질적 의미가 붙어 있어,
그리스도의 순연한 영의 세계를 나타내는 데는
가장 부적당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말의 선택의 경우는 아닙니다.
지금 한 영혼이 죄를 뉘우치고 죽으려고 하는 경우입니다.
그때 예수는 사자(死者)에게
천국의 오의를 풀이하여 들려주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은 신앙의 적자(baby)에게
갓난아이의 말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진정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이신 예수는, 그러한 경우에 있어서
신학자의 태도를 취하여 십자가상에서 설교하려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또 우리들 그리스도의 제자 된 자에게 많은 귀한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닐지요?
우리들도 역시 어떤 때는 이교신자의 죽음의 베갯머리로 불리어 가는 것 아닌 지요?
그리고 그런 때 우리의 어떤 이는, '극락'을 말하고,
'다까마가와라'(고천일-본신화에 사후 영혼이 영주한다는 곳)를
입으로 말하는 것을 대죄악인 것으로 느끼고,
몰염치하게도 외국선교사나 또는 그들에게 고용된 목사 전도사의 본을 따라,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설교하려지나 않는지요?
그리고 그러한 위선자의 태도로 나가면서,
우리들은,
하나님 위해 무언가 대 선사(善事)라도 하는 것처럼 믿지나 않는지요?
그렇지만, 이것은 인류의 친구인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은 아닙니다.
불교도의 임종에 극락을 말하여 그를 위로하는 것은 결코 죄는 아닙니다.
천국이라 않고서 다까마가와라(천고원)라고 했대도,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도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의 진정은 거룩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 요구에 주저 없이 응해야 할 것입니다.
필경, 십자가상의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도적위자의 말씀은,
그의 진정을 잘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누가가 이 말씀을 그의 붓으로 남겨준 일에 대하여
깊이 그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휴매니티를 탐구하면 탐구할수록,
그가 하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내촌감삼의 (1907년 1월 '성서지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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