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6일 수요일

그 몸을 내려다가 아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둔 적이 없는 돌무덤 곧 돌 속에 판 돌무덤에 그 몸을 두니라

  

무덤에 묻힌 그리스도

 

(23:50-56 보라,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공회원이며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51) (그들의 결의와 행동에 찬성하지 아니한 바로 그 사람이더라.) 그는 유대인들의 도시 아리마대 출신으로 역시 하나님의 왕국을 기다리더라.

52)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몸을 달라고 간청하여

53) 그 몸을 내려다가 아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둔 적이 없는 돌무덤 곧 돌 속에 판 돌무덤에 그 몸을 두니라.

54) 그 날은 예비일이며 안식일이 다가오더라.

55) 갈릴리에서부터 그분과 함께 온 여자들도 뒤를 따라가서 그 돌무덤과 그분의 몸을 어떻게 두었는지 보고

56) 돌아가서 향품과 기름을 예비한 뒤 명령에 따라 안식일에 안식하더라

 


이제 그리스도의 장사지내는 내용을 읽게 되었다.

 

그는 죽어야 하였을 뿐 아니라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명령에 따라

사망의 진토에 묻힘을 당해야만 하였다.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더 자세히 고찰해 보자.

 

 

. 예수를 묻은 사람에 대하여.

 

그를 아는 자들은 "멀리 서서 보고 있었다."

그들에겐 "장사를 치를" 돈도 없었을뿐더러

그를 정중하게 묻어 줌으로 받는 "비난"을 견딜 용기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돈과 용기로 겸비한 자를 세우셨으니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었다.

 

(50절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의 성품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선하고 의로운 자"였으며,

덕행으로나 자비로움에 있어 누가 되는 점이 없었던 자로서

누구에게나 "의로 왔고" 그의 도움을 요구하는 자에겐 언제나 선했던 자였다.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기대로써 "죽은 자를 묻어 주는" 배려를 보임으로

그의 선함과 너그러움을 표시하였다).

 

그는 높은 지위에 있던 자였고, 행정가이며

의원이고 산헤드린의 회원이고 유대교 장로였다.

그에 대해서 이처럼 말했다 하더라도 여기에 덧붙여 말할 것이 있었다.

 

즉 그가 비록 그리스도를 죽이게 만든 무리들 중에 하나였지만,

그는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하다 아니한 자"였다는 사실이다.

 

(51(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비록 대중에 이끌려 사건은 진행되었지만,

그는 그것에 반대하여 제동을 걸었고 악을 행하는 일에 대중을 따라 행하지 않았다.

 

우리가 따라서는 안 될 악한 교사나 행위로 우리의 행동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오히려 그리스도에 대적하는 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반대하였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과는 비밀로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메시야와 그의 나라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믿고 있었으며

그 예언이 성취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주 예수를 진심으로 경외하는 자로 그 모습을 드러낸 인물이었다.

 

세상엔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자들이 많음을 명심하자.

 

그런 이들은 그 사실을 밖으로 알려 과시하지는 않지만

기회만 있으면 오히려 크게 소란을 떨며 재던 자들 보다

진심으로 헌신하는 일에 참여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 예수를 장사지내기 위하여 한 일들에 대하여.

 

1. (아리마데 요셉)는 그리스도를 정죄한 재판관 "빌라도에게 갔다."

그의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폭력을 써서라도 시체를 가져 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부하가 있었지만

그는 법적인 절차를 거쳐 평화스럽게 그 일을 추진하였다.

 

2. 그는 자기 손으로 "이를 내려 세마포로 쌌을" 것이다.

우리가 어린애들을 "배내 옷"으로 싸두듯이 유대인들의 풍습은

죽은 시체를 "싸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내용의 글이 기록되었던 것이다.

또 한 구절엔 깨끗한 세마포단을 원단으로 샀다가 시체를 싸기 위해

그가 여러 조각을 내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요한복음 1144절에 나사로의 모습에 대해서도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라고 묘사되어 있다.

 

성도들에게는 "수의"(壽衣)"배내 옷"과 같은 것이어서

그들이 "완전한 사람에 이르게" 되면 헤어져 버리게 될 것들이다.

 

 

. 장사지낸 곳에 대하여.

 

"바위에 판 무덤에.“

 

무덤은 누구도 침입할 수 없도록 견고하였을 것이다.

이는 교회가 "판 바위로 갇혀" 어둠 속에 묶이게 된 경우와 같다.

 

그러나 그 무덤은 "아직 사람을 장사지낸 일이 없는" 무덤이었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아무도 장사지낸 일이 없는 무덤에 묻힌 이유는

단지 예수께서 자신의 권능으로 3일 만에 부활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또한 죽음을 정복함으로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성취하기로 되어 있었다.

 

 

. 장사지낸 시기에 대하여.

 

"이 날은 예배일이요 안식일이 기의 되었더라"(54).

 

여기서 그들이 왜 그렇게 장사지내는 일을 서둘렀는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안식일"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다른 일에 손을 써야 되었으며,

안식일을 준비하고 맞이하기 위해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눈물로 씨앗을 대신할 수 없음을 유의하자.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인하여 눈물을 흘렸으나

한편으로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일에 신경을 써야만 되었다.

그리고 안식일이 다가오자 "준비"를 서둘러야만 하였다.

 

우리가 하는 세상적인 일들도 이런 식으로 명심하여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종교적인 마음을 늘 염두에 두어 차질이 없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 장례에 참여한 자들에 대하여.

제자들은 한 사람도 없었고 다만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만" 있었다.

 

(55절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그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는 동안 그 곁에 서 있었던 것으로 보아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그를 "따라왔고",

무덤이 어디인지, 어느 길로 가는지, "어떻게 묻혔는지" "지켜 본 것"이 틀림없다.

 

호기심으로 따라 온 것이 아니라 주 예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따라 온 것이다.

 

그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한 것"이어서 "아무리 물로도 씻기지 않을 것"이었다.

조용한 장례식이었다.

그다지 장엄한 장례식은 아니었으나

"이후로 시작될 그의 앞날은 영광스런 것이었다".

 

 

. 예수를 장사지낸 후 그의 시체를 위해 마련된 준비물에 대하여

 

(56절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이것은 그들의 신앙의 증거라기보다는 사랑의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가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리라"

수차 그들에게 한 그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거나 믿었더라면",

그처럼 "값비싼 향유"를 준비하기보다는

얼마 안 있어 그의 부활의 영광으로

그의 육신에 보다 큰 향기가 나게 될 것을 믿음으로

그와 같은 "낭비""수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준비로 바빴을 터이지만 그들은 "안식일에 쉬었다.“

 

아무도 이 일을 위하여 안식일에 뛰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 민족의 습관에 따를 뿐 아니라 시대는 바뀌더라도

그 능력을 잃지 않는 하나님의 "계명을 좇아" 행한 것이다.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히 지키라."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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