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6일 화요일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그리스도의 승천

 

(24:50-53)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이 복음서 기자는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그의 제자들과 만난 중요한 사건은 생략하고 있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여기에선 부활하신 그날 밤 제자들과 만난

첫 번째 방문의 기록을 첨부시키고 있다.

현재로선 그리스도의 승천보다 더 중대한 사건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승천에 대해 우리는 아주 간단한 내용으로 읽게 된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 그리스도는 엄숙하게 제자들과 작별을 고하셨다.

 

그리스도의 목적은 하늘과 땅을 화해시키고 그 사이에

중개자의 역할을 계속하는 것이었으므로 그의 손을 하늘과 땅에 두시며

그 일을 위하여 "오셨다"가 다시 "가셔야"만 하였다.

 

그에겐 하늘과 땅의 두 군데에서 하실 일이 있으셔서

성육화되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셔서 이곳에서 그의 일을 수행하셨으며

이제 그 일을 마치시고 하늘로 돌아가사 그곳에 계시며

우리의 일을 아버지께 고하는 일을 하시게 되었다.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1. 승천한 장소.

 

그곳은 예루살렘 가까운 곳. "감람산"과 연해있는 "베다니"란 곳이었다.

그는 전에 그곳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크신 일을 하셨으며

이제 그곳에서 그의 영광으로 들어가셨다.

 

그곳엔 그의 수난이 시작된 "동산"이 있었으며,

그가 고통 중에 빠지게 된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베다니란 말은 "슬픔의 집"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하늘나라에 가고자 하는 자들은 마땅히 슬픔과 고통의 집을 거쳐

그곳으로 가야하며 괴로움을 통하여 기쁨으로 나가야 한다.

 

감람산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리스도가 승천하실 곳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14: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리고 얼마 전 이곳은 그가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던 바로 그 장소였다.

 

(19: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승천을 목격한 이들.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승천하는 그를 보게 하셨다.

 

아마도 그가 승천한 시간은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 이른 새벽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 후 자신을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신 것이 아니라

"선택된 목격자들"에게만 보여 오셨기 때문이다.

 

제자들도 무덤에서 부활하는 장면은 보지 못하였다.

그것은 후에 그들에게 나타나 보이심으로 부활이 충분히 증거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천하는" 그리스도는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승천을 보지 않고는

다른 식으로 그의 승천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승천하는 그를 볼 목적으로 이끌려 나갔으며

그들의 눈은 승천하는 그에게 고정되었고 다른 곳으로 돌려지지 않았다.

 

3. 제자들에게 하신 작별의 인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그리스도는 불쾌하게 떠난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떠나갔다.

뒤에 남아있는 자들에게 축복을 남겨 두고 떠났다.

 

그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축복할 때하는 것처럼 "손을 들었다".

 

* 참조 : (9:22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

 

그는 권위있는 자로서 축복하였으며 그가 값을 주고 산 축복을 내려 주었다.

야곱이 그의 아들들을 축복하듯 "그들에게 축복하셨다".

 

사도들은 이제 열두 지파를 대표한 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을 축복하심으로 그리스도는 모든 그의 영적인 이스라엘을 축복하신 것이며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내리신 것이다.

 

그는 모세와 야곱이 임종할 때 각기 자기의 아들들과 족속들에게 축복하신 것처럼

그들을 축복하셔서 세상에 있을 때 사랑한 것처럼 끝날까지 사랑할 것을 보여 주셨다.

 

4. 떠나는 장면.

 

"축복하실 때에 저희 떠나셨다".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떠나듯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날지라도 그들을 축복하시는 그 축복이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하늘에 오르사

그곳에서 계속 축복을 내리실 것을 암시하시듯 떠나 가셨다.

 

그는 땅에서 그들을 축복하기 "시작하셨으나",

이제 하늘에 오르사 그 일을 "계속 하시게" 되었다.

 

이제 그리스도는 사도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그들 자신을" 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 자기를 믿을

"모든 백성"에게 베풀어질 축복을 내리셨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땅 위의 모든 백성들이 축복을 받기로 되어 있다."

 

5. 승천에 대한 묘사.

 

(1) "저희를 떠났다."

엘리야가 엘리사의 머리 위로 떠나갔듯이 그는 제자들의 머리 위로 떠났다.

 

가장 절친한 친구는 헤어져야만 된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를 가르치던 친구들은 "우리를 떠나야만 한다".

 

몸으로 볼 수 있는 그리스도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서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육으로 그를 찾던 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2) 그는 "하늘로 올리우셨다."

강제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행위로 오르셨다.

 

부활하셨을 때와 같이

그가 자신의 능력으로 승천하실 때에도 천사들이 둘러 쌓였다.

불 마차나 화마(火馬)는 필요 없었다.

그는 "하늘에서 오신 주님"이었기 때문에 길을 알고 있었으며 스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노아가 제사드릴 때 연기 속으로 천사들이 올라간 것처럼

그리스도는 구름 속으로 올라가셨다.

 

(13:20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 제자들은 그가 떠나갔음에도 계속해서 그를 기쁜 마음으로 섬겼으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드렸다.

 

1. 그들은 그가 떠나갈 때 그에게 경배를 드림으로

비록 그가 먼 세계로 간다할지라도 계속 그에게 충성을 다할 것이며

언제나 그의 통치를 받기를 원하고 있음을 표현하였다.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52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축복을 받은 자들로부터

"경배"받기를 원하고 계심을 명심하자.

 

"그는 자기를 예배한다"는 조건으로 그들을 "축복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영광을 새롭게 나타냄으로 그것에서 새로운 지혜와 예배가 비롯된다.

그들은 비록 그가 "그들을 떠났지만" 자기를 예배하는 그들의 행위를 지켜보시며,

보실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린 구름도

그리스도의 눈을 가릴 수 없어 그들의 예배는 숨기워질 수 없을 것이다.

 

2. 그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갔다."

성령이 그들에게 내리기까지 그들은 그곳에 머물러 있도록 명령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이 위험한 곳 인줄 알면서도 그곳을 향해 갔다.

그곳으로 가서 그들은 "큰 기쁨으로" 그곳으로 머물렀다.

이것은 놀라운 변화이며 그들의 마음이 열린 결과였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떠나야만 한다고 말씀하실 때 그들의 마음엔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떠나가신 것을 보고도 "큰 기쁨으로 가득 찼다".

 

이제야 비로소 그리스도는 떠나야만 했으며

그가 보혜사를 보낼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모든 성도들의 기쁨, 넘치는 기쁨이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도 기뻐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날, 그 곳에서 영광중에 계신

그를 보게 될 때 얻는 기쁨이야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으랴.

 

3. 그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는 동안 경건한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53절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1) 기도 시간마다 성전 예배에 참석하였다.

하나님께서 아직은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 늘 하셨던 대로 "그들은 늘 성전에 있었다".

 

"주님께선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그들에게 "좋은 감정을 품은" 몇몇 레위인들에게 속한 성전 방을 빌려

제자들처럼 그들 나름대로의 회당이 있었다고 하지만,

 

또 다른 학자들은 그런 회당은 대제사장이나 "성전관리들"에게

"비밀로 하거나" "묵인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그런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2) 성전 제사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필요 없는 것이 되었지만

성전 찬송엔 함께 참여하였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동안엔 찬송으로 그를 맞이하도록 명심하자.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일은 따로 시간을 정해해야 할 성질의 일이 결코 아니다.

성령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있어 거룩한 기쁨과 찬송보다 더 나은 준비는 없다.

걱정은 사라지고 슬픔은 위로 받으며 희망만이 계속된다.

 

끝맺는 "아멘"은 교회와 복음서를 읽은 교인들의 복음의 진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진심으로 마음이 일치됨을

나타내기 위하여 후에 첨부된 듯하다.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돌릴지어다. 아멘

 

 

*이상으로 누가복음의 대단원 공부를 마감합니다.

 

다음 프로그램은 구약성경 다니엘서를 공부할 것입니다.

 

성경공부의 폭을 더 잘 알기 위해서 세 권의 권위 있는

주석서들을 참조하여서 연재 할 것입니다.

(호크마 주석, 메튜헨리 주석, 내촌감삼 주석 기타)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에서의 빛과 소금된 삶에

하나님의 풍성한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삶이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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