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4일 월요일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운명하심 2

 

성 경: [23:47-48]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56)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백 명의 군대를 지휘하는 백부장의 고백을 통해

예수의 의로움을 증언하는 내용으로서

앞서 41절에서 사형수가 고백했던 예수의 의로움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사형 집행 책임자로 보이는 백부장의 이같은 고백은

이제까지 당했던 예수의 수치스러움과 고난이 정당(正當)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예수의 모든 말과 행동이 옳았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여기서 백부장이 예수를 의인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 된 일'(토 게노메논)이란 세 시간에 걸쳐 해가 빛을 잃고

땅에 어둠이 덮인 사건과 휘장이 찢어진 사건을 말한다.

 

(44-46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한편 마태는 휘장이 찢어진 사건 외에 지진이 일어나고 무덤이 열려

부활하는 성도와 예수의 성도들이 부활하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27:51-53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같은 일을 보고 백부장외 예수를 지키던 사람까지 함께 고백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백부장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이 표현은

하나님의 은총과 신적능력의 나타남에 대한 누가의 독특한 반응이다.

 

(2;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5:25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3: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8: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또 평행본문 마 27:54; 15:39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는 반면

 

(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누가는 '의인'(디카이오스)이라고 말하는 데,

이방인을 주로 염두에 둔 누가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보다는 '의인'이라는 법정 용어가

이방인에게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23: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

백부장의 증언을 소개한데 이어 누가는 사형 집행을 구경하러 모인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다.

 

'구경'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오리아'는 신약 성경에서는 여기에만 나오며

일반적으로 극장의 쇼(show)를 구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무리들 중 대부분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생각하고 몰려들었지만,

너무도 참혹한 예수의 모습과 형 집행 과정에서 되어진

여러 사건들을 목격하고는

저마다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돌아갔던 것이다.

 

과연 이들이 예수께 대항하며 소리쳤던 전날의 과오(過誤)를 뉘우치며

진정한 회개를 나타내었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양심이 심하게 아팠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 장면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당시의 상황과 연결시켜볼 수 있다.

 

(2:22-24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다'고 하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서

많은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서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며 회개의 길로 돌아섰던 것이다.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23: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예수의 아는 자들과 및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 - 누가는 십자가 처형에 관한

이야기를 예수의 측근자와 고향 사람들을 목격자로 언급함으로써 마무리 짓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아는 자들'은 예수와 가까이 지냈던 자들

특히 예수의 제자들까지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에 관해서는 마태와 마가는

몇몇 여인들의 신분을 밝히며 구체적으로 언급하나

 

(27:55-56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15:40-41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누가는 여기서 어떤 여인들인지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

이미 8:2,3에서 여자의 이름을 언급했기 때문에 더 이상 밝히지 않은 듯하다.

(8:2-3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 멀리서 바라본다는 것은 관망의 의미로 해석되거나

두려워하는 비겁함으로 비칠 수 있다.

 

따라서 베드로가 무서워하며 멀직이 따라갔다는 말처럼,

그들도 예수의 일당이라고 붙잡힐까 하는 두려움으로 예수의 죽음을

멀리서 바라보았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추측은 다소 사실과 거리가 멀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떠나갔지만 이들 만큼은 떠날 수 없어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흠모했던 분의 시신을 바라보며

그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삭이고 있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예수의 처형대(處刑臺)로 좇아가고 싶었으나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를 지키고 있어 또 주위의 일정한 공간을

경비하고 있었으므로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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