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3일 수요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떡을 떼심

 

성 경: [24:28-31]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24: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 엠마오가 그들의 최종 목적지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왜냐하면 그들은 갈릴리 사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착하려고 했던 장소에 거의 다 왔음을 말하고 있다.

 

'가까이 가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기조''도착 했다''거의 다달았다'

두 가지 뜻을 포함한다.

 

이처럼 도착 시간에 대한 언급은 출발 시각처럼 자세히 언급되고 있지 않으나

29절의 내용을 보면 날이 거의 저물고 있는 때임을 말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일요일 즉 안식 후 첫날이 거의 끝나는 시각쯤인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시니 - 13절에서 언급한 대로 그들의 목적지

엠마오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머물고자 하였을 것이고

예수는 목적지가 엠마오가 아니어서 더 걸어가려 했을 것이라는 이해는 쉽게 가능하다.

 

(13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여기서의 강조점은 예수가 계속 길을 가려고 했다는데 있기 보다는 29절에 나오는 내용,

즉 예수가 그들 두 사람과 함께 머물게 된 동기가

두 사람의 간절한 요청 때문이었음을 뒷받침해 주는 데 있다.

 

본래 예수는 엠마오에서 유숙(留宿)하려는 계획이 없었음을 암시하여

두 사람의 강권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24: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 '강권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파라비아조마이''압력을 넣어 강제로 하게 하다'의 뜻을 가진 단어이나,

여기서는 절박한 간청(懇請)으로 봄이 적절하다.

 

예수가 글로바의 일행과 엠마오에서 머물게 된 동기는

그 두 사람의 간절한 요청에 의한 것임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강권이 있었다'는 것은 사양하는 말도 있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들이 이와 같이 예수를 붙잡고 머물기를 간청한 이유는 날이 저물어

더 이상 여행이 어렵다는 점뿐만 아니라 길을 함께 걸어오면서 나눈

대화 속에서 그들은 어떤 감명을 받았음에 틀림없고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존경하는 마음까지 생겨났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와 함께 유숙하면서 더 많은 가르침을 듣고자 하여

예수를 강권하였을 것이다.

 

 

 

[24: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에 - 저녁 식사 때인 것으로 보이는데

앞 구절에서 날이 저물고 기울었다는 언급이 있었다는 점을 보아

점심 식사라는 주장은(Bornhauser) 적절하지 못하다.

 

이 저녁 식사는 글로바 일행이 준비한 것으로 보이며

그들의 집인지 아니면 여관이나 민박하는 집에서 만찬을 베푼 것인지는 정확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갈릴리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여관이나 민박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이 저녁 식사는 일상적인 평범한 식사이었음에 틀림없다.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 이 같은 식사 장면은 오병 이어의 기적과

 

(9:10-17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유월절 식사를 연상케 한다.

 

(22: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글로바 일행은 유월절 식사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열두 제자들과 예수가 함께한 만찬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식사를 주제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 들판에서

오병 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던 그 때가 생각났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31절에서와 같이 이 두 사람이 예수를 알아보게 된

요인(要因) 중의 하나가 이 식사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 글로바 일행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눈이 가리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16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와의 저녁 만찬 도중 눈이 열려지게 되어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게 되었다.

 

개역 성경에서 '밝아졌다'(their eyes were opened, NIV)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디에노이크데산'(디아노이고)의 과거 수동형이다.

 

따라서 눈이 열려지게 된 원인이 타자(他者)에게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눈이 열려지게 된 원인은 앞 구절에서 언급된 바처럼

떡을 떼어 주는 행위가 될 수 있으며

알지 못하는 신비적 능력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 모두가 하나님에 의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I. H. Marshall).

 

이와같이 글로바 일행이 부활한 예수를 낯선 여행자로 보지 않고 생전의

예수의 모습으로 보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상징적 의미를 함축한다.

 

 

첫째, 식사 이전까지는 예수가 낯선 타인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훌륭한 선생으로도 생각하였을 것이다.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이는 이제까지의 유대인들이 예수를 이해했던 바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 떡 곧 예수의 몸을 진정으로 나눔으로써 그들은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떡을 떼는 만찬(晩餐)을 통해서 친교하고,

할 수 있다면 친교 속에서 예수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둘째는, 갑자기 눈이 열려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32절에서 그들이 고백하는 바와 같이 길을 걸으면서 그의 가르침을 들을 때

그들은 마음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받았다.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따라서 그들은 그의 가르침을 뜨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그 낯선 길손을 애써 대접하려고 했다는 것이 예수를 알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열게 했다.

 

즉 예수의 가르침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예수와 함께하기를 간절히 요청하는 마음이 부활한 예수를 만나게 한 동인(動因)이 되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 예수께서 더 이상 시각적으로

포착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본 구절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암시한다.

 

첫째,

부활한 예수는 시공(時空)에 제한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에게도 환상이 아니라 생생한 체험이었다.

 

부활한 예수는 살아있는 생생한 체험으로 만나되

시각적으로 보여 지는 제한된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새로운 존재로 만나게 된다.

 

둘째는,

우리가 예수를 만날 때 고유한 일정한 모습으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양으로 만난다는 점이다.

 

글로바 일행이 경험한 바처럼

낯선 길손과의 만남이 예수와의 만남이 될 수 있고,

 

(18:1-15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헐벗고 굶주린 이웃과의 만남이 예수와의 만남이 될 수도 있다.

 

(25:31-46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따라서 이제 예수와의 만남은

시간과 공간의 구분 없이 무한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초월적 사건인 동시에

어느 대상에 국한됨이 없이 구체적인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경험되고 찾을 수 있는 내재적 사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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