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8일 월요일

너희가 어찌하여 불안해하며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염려하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열 한 제자에게 나타나심

 

 

성 경: [24:36-43] 그들이 이같이 말할 때에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의 한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라.

37) 그러나 그들이 무서워하고 놀라며 자기들이 영을 본 줄로 생각하매

38)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불안해하며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염려하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니라.

40)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들에게 자기 손과 발을 보이시니라.

41) 그들이 기뻐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할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여기에 너희에게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그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과 벌집 한 조각을 그분께 드리매

43) 그분께서 그것을 받으사 그들 앞에서 잡수시더라.

 

 

[24:36] 그들이 이같이 말할 때에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의 한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라

 

이같이 말할 때에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의 한가운데 서서 - 부활한 예수의 출현이

세 번째 언급된다.

 

이 이야기는 부활 예수에 대한 체험의 체험적이고 종합적인 묘사라고 할 수 있다.

구성상으로 베드로와 글로바 일행이 각각 경험한 부활 예수의 체험은

이 세 사람이 한 자리에 있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까지

증인으로 선 가운데서 종합되고 확인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의 부활을 최종적으로 선언하려는

누가의 치밀한 의도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글로바가 경험한 부활한 예수가,

시공(時空)을 초월한 영적 만남을 제시한 것이라면,

여기서의 부활한 예수는 육체적 부활을 증명하는데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요 20:19에 따르면 문을 닫아 두었는데도 들어왔다고 표현함으로써

영육(靈肉)에 구애를 받지 않는 신비한 모습을 말하고 있으며

여기서도 영과 육을 종합하여 영과 육의 부활을 균형 있게 언급하려고 하는 듯하다.

 

(20:19 그 뒤 같은 날 곧 주의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한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이 인사는 요 20:19,20에서 두 번 거듭되고 있는데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 나타났을 때 하는 인사의 형태이다.

 

(20:19-20 그 뒤 같은 날 곧 주의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한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라.

20)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자기의 두 손과 자기의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이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주를 보고 반가워하더라)

 

그런데 이 인사는 단순한 인사말 이라기보다는 부활한 예수의 시대에

평화(平和)가 임하게 될 것이라는 축복의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하늘에서 온 천사들이 땅 위의 평화를 노래하였듯이,

 

(2:14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와 사람들을 향한 선하신 뜻이로다, 하니라)

 

부활한 예수가 머무는 곳, 그리고 예수를 만나는 모두에게

'평화'(에이레네)가 있으라는 축복의 말씀이다.

 

 

 

[24:37] 그러나 그들이 무서워하고 놀라며 자기들이 영을 본 줄로 생각하매

 

그들이 무서워하고 놀라며 - 그 자리에 모여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공포에 싸여 무서워했지만

베드로나 글로바 등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 구절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모두 놀랐으리라는 생각이 적절하다 하겠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같은 놀라운 체험에 익숙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두 번째 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갑자기 예수가 나타났을 때 놀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할 수 있다.

 

영을 본 줄로 생각하매 - 그들이 그렇게 놀라고 무서워한 것은

갑자기 나타난 예수가 ''(프뉴마)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예수를 육체가 없는 유령(幽靈)과 같은 존재로 오해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어떤 사본에서는 본 구절의 '' 대신 '유령'(판타스마)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24:38]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불안해하며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염려하느냐?

 

어찌하여 불안해하며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염려하느냐? - 예수의 출현에 대해

놀라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왜 의심하고 무서워하느냐'

반문 형식으로 책망하신다.

 

이 말은 제자들과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의 모습을

부활한 예수로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일로 생각하며

부활한 사실을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그만큼 그들은 예수가 말했고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24:39]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니라.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 부활한 예수를 의심하고 유령으로 오해하는 제자들에게

 

(37-38 그러나 그들이 무서워하고 놀라며 자기들이 영을 본 줄로 생각하매

38)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불안해하며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염려하느냐?)

 

예수는 자신이 참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그 예수이며,

유령이 아니라 참으로 육신을 가진 완전한 사람임을 확인시키고자 증거를 제시하신다.

 

증거로 제시된 것은 자신의 손과 발인데

왜 그것이 증거가 되는지 누가는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요 20:25-27에 못 박았던 자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25-27 그러므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였으나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분의 두 손의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분 옆구리에 넣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6) 여드레가 지나서 그분의 제자들이 다시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그들과 함께 있더라. 그때에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한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그 뒤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고 내 두 손을 보며 또 네 손을 이리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으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시니)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두 번째로 제자들에게 확인시키는 것은

육신의 실재(實在)이다.

 

이것은 자신이 유령이 아님을 나타내려는 의도적 말씀이니

유령은 살과 뼈가 없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살과 몸을 직접 확인시킴으로써 유령이 아님을 선언하신다.

 

이 같은 부활 증명은 영적인 부활이냐 아니면 육적인 부활이냐 하는 문제를 연상시킨다.

 

(고전 15:31-52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로 인한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들의 방법대로 에베소에서 짐승들과 싸웠을진대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을 주겠느냐? 내일 우리가 죽을 터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자.

33)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

34) 의에 대하여 깨어 있고 죄를 짓지 말라. 어떤 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므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하노라.

35)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어떻게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느냐? 그들이 어떤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것이 죽지 아니하면 살아나지 못하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으로 말하건대 네가 앞으로 있을 그 몸을 뿌리지 아니하고 밀이든 다른 곡식이든 다만 알갱이를 뿌리되

38) 하나님께서 친히 기뻐하시는 대로 그것에게 몸을 주시며 또 모든 씨에게 그것의 고유의 몸을 주시느니라.

39) 모든 육체가 같은 육체는 아니니 한 종류는 사람의 육체요, 다른 것은 짐승의 육체요, 다른 것은 물고기의 육체요, 다른 것은 새의 육체라.

40) 또한 하늘에 있는 몸들도 있고 땅에 있는 몸들도 있으나 하늘에 있는 것들의 영광과 땅에 있는 것들의 영광이 서로 다르니라.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들의 영광이 다르니 이 별과 저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라. 그것은 썩는 것 가운데 뿌려지고 썩지 않는 것 가운데 일으켜지며

43) 수치 가운데 뿌려지고 영광 가운데 일으켜지며 연약함 가운데 뿌려지고 권능 가운데 일으켜지며

44) 본성에 속한 몸으로 뿌려지고 영에 속한 몸으로 일으켜지나니 본성에 속한 몸이 있고 영에 속한 몸이 있느니라.

45)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46)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 번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 번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하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신 주시니라.

48) 땅에 속한 자들은 또한 땅에 속한 그 사람과 같고 하늘에 속한 자들은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과 같으니

49) 우리가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닌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

50) 형제들아,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상속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그러나 여기서의 강조점은 영적 부활이냐 육적 부활이냐 하는데 있기 보다는

부활은 완전히 새롭고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로 나타난다는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글로바 일행이 경험한 것처럼 부활은

영과 육의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존재가 되는 것이지

영이냐 아니면 육이냐 하는 일차원적인 선택적 사고로 부활을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육체를 확인 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육적인 부활을 강조하는데 있지 않고

부활이 유령이나 환각현상(hallucination)이 아님을

확인 시키고자 하는데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24:40]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들에게 자기 손과 발을 보이시니라

 

손과 발을 보이시니라 - 예수가 증거로 제안했던 것은 손과 발,

그리고 자신의 육신을 직접 만져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손과 발만을 보여준 것으로 당시 상황 묘사를 끝내고 있으며

보기만 했는지 직접 만져 확인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요 20:20에서는 손과 옆구리만 언급하고 있으며

 

(20:20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자기의 두 손과 자기의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이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주를 보고 반가워하더라)

 

20:24-27에서는 도마의 요구에 의해 예수께서 직접 만져보라고 말씀하신다.

 

(20:24-27 그러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아니하더라.

25) 그러므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였으나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분의 두 손의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분 옆구리에 넣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6) 여드레가 지나서 그분의 제자들이 다시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그들과 함께 있더라. 그때에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한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그 뒤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고 내 두 손을 보며 또 네 손을 이리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으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시니)

 

그러나 도마 역시 직접 만져 확인하였다는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본문은 사본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어떤 사본에서는 본문이 삭제되고 없고,

또 어떤 사본에서는 괄호에 묶어 언급하고 있다(I. H. Marshall).

 

아마도 요한복음과의 내용이 일치되지 않아 삭제(削除)하였을 수도 있고(Jeremias),

앞 구절(39)과 중복되는 내용이라고 생각되어 삭제한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K. Aland).

 

그러나 요한복음과의 일치성이 문제되지 않고 앞 구절과 중복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

 

중요한 것은 보여주고 확인시켰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있다.

이는 요한복음과 일치하고 있는데 누가는 목격자들의 충격과 의심이 큰 만큼

부활한 예수가 유령이나 환상이 아님을 단계적으로 확인시켜 나가고 있다.

 

 

[24:41] 그들이 기뻐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할 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여기에 너희에게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기뻐서 아직도 믿지 못하고 - 손과 발을 확인한 제자들의 반응은

처음으로 긍정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그 기쁨 때문에 믿어지지 않았다.

이 같은 표현은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확인하면서 느끼는

감격과 놀라움(amazement)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의심에 강조점이 있지 않고 놀라와하며 기이히 여기는 제자들의 기쁨에 강조점이 있다.

 

이제 제자들은 의심과 두려움의 고개를 넘어서 기쁨과 놀라움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 같은 누가의 묘사는 매우 극적이고 치밀한 문학적 능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

 

여기에 너희에게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 부활 사실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극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제자들의 기쁨이 터져 나올 때 식사를 제안함으로써

제자들의 확신을 움직일 수 없는 믿음으로 굳히려 하고 있다.

 

 

[24:42] 그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과 벌집 한 조각을 그분께 드리매

 

구운 생선 한 토막 - 제자들이 제공한 먹을 것은 구운 생선(broiled fish)

한 마리였는데,

어떤 사본에서는 꿀을 찍은 떡이라는 구절을 첨가시키고 있다(Metzger).

 

아마도 필사(筆寫)자들이 요 21:9에 제시된 음식인

물고기와 떡을 염두에 두고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M. Alford).

 

또한 이 같은 물고기를 언급한 것 때문에

장소를 갈릴리로 볼 수 있는데 (Creed, Klostermann )

내륙 지방 예루살렘에도 소금절인 생선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Jeremias)

예루살렘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24:43] 그분께서 그것을 받으사 그들 앞에서 잡수시더라.

 

잡수시더라 - 예수가 생선을 제자들 앞에서 먹어 보임으로써

예수 자신이 유령이나 환상이 아님을 최종적으로 확인시키고 있다.

 

부활한 예수가 식사를 했다는 사실을 두 번 언급하면서

 

(30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누가는 예수가 유령이 아니라 분명 죽었던 나사렛 예수가 되살아났음을 강조하고 있다.

부활한 예수가 식사를 했다는 점에서 누가의 독특한 강조라고 볼 수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