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일 화요일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 수족의 엄지 가락을 끊으매

  

가나안 정착의 초기 역사

 

성 경: [1:5-7]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서 그와 싸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죽이니

6)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 수족의 엄지 가락을 끊으매

7) 아도니 베섹이 가로되 옛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1:5]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서 그와 싸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죽이니

 

 

아도니 베섹 - '베섹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개인 이름이 아닌 베섹 성읍 통치자의 칭호이다.

 

이같은 칭호로는 애굽 왕을 가리키는 '바로',

 

(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랄 왕을 가리키는 '아비멜렉' 등이 있다.

 

(20:2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1:6]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 수족의 엄지 가락을 끊으매

 

그 수족의 엄지 가락을 끊으매 -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 포로를 다룸에 있어서 이처럼 불구로 만들거나 눈을 뽑아 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16:14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과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삼상 11: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왕하 25:7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갔더라).

 

이러한 형벌은 상대방에게 수치를 주기 위함이었음은 물론, 실제적인 목적도 지니고 있었다.

 

, 엄지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무기를 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엄지 발가락을 자르는 것은 도망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122).

 

그리고 눈을 뽑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의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실례로는 일찍이 페르시아 제국이 망하여(B.C. 331) 헬라의 포로가 되었을 때, 헬라인들이 포로들의 수족과 귀 따위를 잘랐던 사건을 들 수 있다(Lange).

 

아무튼 본 구절에서 아도니 베섹이 이같은 형벌을 당한 까닭은 일찍이 그가 동일한 방법으로 70명의 군왕들을 능욕했기 때문이다.

 

(7 아도니 베섹이 가로되 옛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나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진리를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1:7] 아도니 베섹이 가로되 옛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칠십 왕 - 이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왕에' 해당하는 '멜레크'는 종종 일개 성읍의 통치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14:1-2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10:3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가로되;

 

12:9-24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10)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11)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12)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13) 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14) 하나는 호르마 왕이요 하나는 아랏 왕이요

15) 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아둘람 왕이요

16) 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17) 하나는 답부아 왕이요 하나는 헤벨 왕이요

18) 하나는 아벡 왕이요 하나는 랏사론 왕이요

19) 하나는 마돈 왕이요 하나는 하솔 왕이요

20) 하나는 시므론 므론 왕이요 하나는 악삽 왕이요

21)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22) 하나는 게데스 왕이요 하나는 갈멜의 욕느암 왕이요

23) 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24)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도합 삼십일 왕이었더라).

 

따라서 이들은 아도니 베섹 당시 각기 가나안의 군소 성읍을 관장하던

군왕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 마치 개처럼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행위를 가리킨다.

 

(15: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는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가장 비참하고도 굴욕적인 대접 중 하나에 다름 아니다.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 p. 253).

 

 

하나님이 나의 행한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 타인에게 가한 손상만큼 가해자에게도 동일한 형벌이 주어지게 하는 동해 보복법(Rex Talionis)은 모세 율법 이외에 함무라비 법전에도 언급되어 있다.

 

(21:18-36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하나가 돌이나 주먹으로 그 적수를 쳤으나 그가 죽지 않고 자리에 누었다가

19) 지팡이를 짚고 기동하면 그를 친 자가 형벌은 면하되 기간 손해를 배상하고 그로 전치되게 할지니라

20) 사람이 매로 그 남종이나 여종을 쳐서 당장에 죽으면 반드시 형벌을 받으려니와

21) 그가 일일이나 이일을 연명하면 형벌을 면하리니 그는 상전의 금전임이니라

22)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좇아 낼 것이니라

23)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5)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26)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 대신에 그를 놓을 것이며

27) 그 남종의 한 이나 여종의 한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 대신에 그를 놓을지니라

28)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을 것이요 그 고기는 먹지 말 것이며 임자는 형벌을 면하려니와

29) 소는 본래 받는 버릇이 있고 그 임자는 그로 인하여 경고를 받았으되 단속하지 아니하므로 남녀 간에 받아 죽이면 그 소는 돌로 쳐 죽일 것이고 임자도 죽일 것이며

30)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명하면 무릇 그 명한 것을 생명의 속으로 낼 것이요

31) 아들을 받든지 딸을 받든지 이 율례대로 그 임자에게 행할 것이며

32)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에 맞아 죽을지니라

33) 사람이 구덩이를 열어 두거나 구덩이를 파고 덮지 아니함으로 소나 나귀가 거기에 빠지면

34) 그 구덩이 주인이 잘 조처하여 짐승의 임자에게 돈을 줄 것이요 죽은 것은 그의 차지가 될지니라

35)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산 소를 팔아 그 값을 반분하고 죽은 것도 반분하려니와

36) 그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줄을 알고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아니하였으면 그는 소로 소를 갚을 것이요 죽은 것은 그의 차지가 될지니라).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아도니 베섹의 이 한탄의 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회개한 말이라기 보다는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인과응보(因果應報)적 사상에 따라 자신이 처한 곤고한 상태를 한탄한 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 유다와 시므온 연합군이 아도니 베섹을 사로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간 사실은 아도니 베섹이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과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5>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 라이트(G.E.Wright)같은 학자는 예루살렘이 아도니 베섹의 왕도(王都)였기 때문에

유다 연합군이 그를 그곳으로 끌고 간 것으로 이해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어디까지나 추측적 견해일 뿐 뒷받침될 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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