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요일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사사 옷니엘의 활약

 

성 경: [3:7-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3: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 '잊어버리다'에 해당하는 원어 '솨카흐'의 기본 뜻은 '잘못 놓다'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지 않고,

마음 바깥에 내다 놓으므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망각한 것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마음 중심에 여호와가 아닌 다른 것을 모시고 살 때에는

하나님과 그분의 교훈을 잊어버릴 수 밖에 없다.

 

바알들과 아세라들 - 여기서 '바알''풍요''다산'(多産)을 관장하던 가나안의 고위 신이다.

 

그리고 '아세라'는 엘(El)의 아내이자 바알을 포함한 70명의 신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이처럼 복수형으로 쓰여지고 있는 까닭에 대하여서는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추측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장엄 복수형으로서 신의 이름에 흔히 사용되던 히브리어법의 한 형태이다.

 

즉 신의 존엄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복수형으로서 모양은 복수지만

그 뜻은 단수로 쓰인 경우이다.

 

그 한 예로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로힘'을 들 수 있다.

이는 복수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은, 결코 아니다.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둘째,

이것은 여러 모양,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섬겨지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들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복수형이다.

 

본문의 문맥상 위의 두 가지 이유 가운데 후자의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이스라엘은 당시 지역에 따라 여러 모양, 여러 이름으로 섬겨지던 바알과 아세라를 자기의 이웃들과 더불어 섬겼던 것이다.

 

(2: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3: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메소보다미아 - 메소보다미아는 '두 강 사이'라는 뜻으로서 유브라데(Euphrates) 강과 티그리스(Tigris) 강 사이의 광대하고도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그처럼 북방에 한정시킨다면, 이곳의 왕인 구산 리사다임이 '팔레스틴' 가장 남쪽 지파인 유다의 지도자 옷니엘과 싸우기에는 그 거리상 지나치게 멀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9-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때문에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곧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문서들이 메소보다미아를 가리킬 때 주로 북방 메소보다미아를 의미했지만 간혹 그것은 오론테스(Orontes)강이 있는 하맛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틴 북방 지역에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오론테스 강 유역으로 보면 구산 리사다임 왕과 옷니엘의 싸움에 별다른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구산 리사다임 - 이 왕에 대한 기록을 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리사다임'에 해당하는 원어 '리쉬아타임''두 배나 악하다'는 뜻인데, 아마도 이스라엘이 그에게 붙여 준 칭호인 듯하다.

 

그리고 '구산'이란 이름은 바벨론왕 '니므롯'의 부친인 '구스'란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Pulpit Commentary, Keil & Delitzsch Commenary, Vol. II, p. 293).

 

(10: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손에 파셨으므로 - '팔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마카르'로서 사람을 노예로 파는 것을 가리킨다.

 

(21:14 그 후에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그 마음대로 가게 하고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네가 그를 욕보였은즉 종으로 여기지 말지니라;

 

28:68 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실으시고 전에 네게 고하여 이르시기를 네가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그 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대적에게 노비로 팔려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

 

(2: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그런데 이 말은 간혹 사람이 죄의 노예가 될 때에도 사용되었다.

 

(50:1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보냄을 입었느니라).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상과 달리 '항복하게 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의 지배하에 놓이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 '부르짖다'에 해당하는 원어 '자아크''힘을 다해 외치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이것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것을 의미한다(Lange).

 

과거에도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바로의 압제로 인해 힘든 노역을 할 때 그 고통을 참지 못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은 적이 있다.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그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이방 우상숭배 죄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그러한 회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다시금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는 것이다.

 

 

한 구원자를 세워 - 여기서 구원자라 함은 사사(Judge)를 의미한다.

그런데 본서에서 사사들에 대해 구원자란 명칭이 사용된 것은 사사들이 문자 그대로 단순히 재판만을 수행하는 재판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4: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대신 그들은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려움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주위의 적들로부터 구해 주는 구원자의 직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15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5:14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요 그 다음에 베냐민은 너희 백성 중에 섞였으며 마길에게서는 다스리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도다;

 

8:22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2:16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 - 옷니엘(Othniel)이 정확히 갈렙의 아우인지

아니면 조카인지 하는 학자들 간의 이견에 대해서는 이미 1:13에서 살펴보았었다.

 

(1:13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한고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 - 본 구절을 그대로 번역할 경우,

옷니엘은 갈렙의 동생이 되며 갈렙은 그나스의 아들이 된다.

이러한 견해는 KJV, 영어 성경도 따르는 바이다.

(Othniel the son of Kenaz,Caleb's younger brother).

 

학자들 간에는 옷니엘이 갈렙과 정확히 어떠한 관계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이 중 대표적인 견해를 들자면 곧 다음과 같다.

 

(1) 옷니엘은 갈렙의 이복(異腹)동생이라는 견해(Bertheau):

 

이는 갈렙이 '여분네의 아들'인 데 반해 본 구절에서 옷니엘은

'그나스의 아들'인 것으로 나와 있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13:6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14: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2)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라는 견해(De Wette, Ewald, Pulpit Commentary):

 

이는 갈렙과 옷니엘간의 현격한 연령 차이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옷니엘이 드빌을 정복하고서 갈렙의 딸을 아내로 맞이할 때, 갈렙의 나이는 85세였다.

 

(14: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

 

그러나 당시 옷니엘은 혈기 왕성한 젊은 용사였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두 사람은 형제간이 아니라 숙부와 조카 간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3) 옷니엘과 갈렙은 다같이 그나스 집안의 사람들로서 친척이라는 견해(Lange):

 

이는 민 32:12에 갈렙이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로 나와 있으며 본 구절에선 옷니엘이 '그나스의 아들'인 것으로 나와 있는 점에 근거한 주장이다.

 

(32:12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시고)

 

이상과 같은 세 견해 중 오늘날 대체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견해는 두 번째 것이다.

 

한편 성경에는 그나스란 이름과 관련하여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에돔 사람 '그나스'가 나온다.

 

(36:11 엘리바스의 아들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보와 가담과 그나스요)

 

따라서 이 자를 옷니엘의 아비인 '그나스'와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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