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베냐민 지파의 전투
성 경: [삿 1:19-21]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0) 무리가 모세의 명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삿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본 구절에서는 두 가지 대조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는 유다 지파가 신앙적으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산지 거민들을 쫓아낼 수 있었던 사건이고,
(9절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한 가나안 사람과 싸웠고)
다른 하나는 불신앙적으로 철병거를 두려워하여 골짜기의 거민들을 쫓아 내지 못한 사건이다.
▶ 철병거가 있으므로 - 인류가 철을 생산하여 사용한 것은 헷 족속(Hittites)에 의해서 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찍부터 가나안땅에 이주해 온 듯하며,
(창 23:3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26: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합금 기술의 개발을 통해 다른 어느 부족보다 더 막강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 철재무기는 사울 왕 시대에 블레셋의 기술에 의존하여 사용한 것이 고작이었으므로 당시 철재무기는 매우 구하기 힘들었다.
(삼상 13: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철병거로 무장한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한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던 그들이 철병거를 두려워하여 골짜기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불신앙이라는 말로 설명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전에 여호수아는 가나안족들에게 철병거가 있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그들을 쫓아낼 수 있다고 요셉 지파에서 주지시켰던 적이 있었다.
(수 17:16-18 요셉 자손이 가로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스안과 그 향리에 거하는 자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일러 가로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그리고 실제로 사사 시대에 드보라와 바락은 철병거 9백승을 가진 야빈 왕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
(4:13-16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 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16)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따라서 유다 지파가 철병거를 가진 적에 대해 미리 겁을 집어먹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불신앙으로 인하여 정복 사업을 완수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 이에 해당하는 원어 '로 레호리쉬'는 능력이 없어서 쫓아내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쫓아내지 아니한 직무 유기 내지는 고의적 회피 행위를 의미한다.
즉 유다 지파는 골짜기 거민들을 쫓아내 보려고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미리 겁을 집어먹고 아예 이 일을 포기했던 것이다(Lange).
[삿 1:20] 무리가 모세의 명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 모세의 명한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 일찍이 모세의 가나안 정탐꾼 파송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구절이다.
즉 과거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은 모세에게 회의적인 보고를 하였었다.
* 참조 : (민 13장).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은 이스라엘이 능히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민 14:6-9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그러자 모세는 갈렙에게 축복하기롤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수14:9)고 하였다.
그같은 약속에 근거해 갈렙은 여호수아 생존 당시 헤브론을 요구, 기업으로 받았었던 것이다.
(수 14:13-15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본 구절은 바로 그 사건을 다시금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 아낙의 세 아들 - 이미 10절에서 언급된 아낙 자손의 세 씨족인 세새, 아히만, 달매를 가리킨다.
한편 갈렙을 대장으로한 유다 자손이 이들을 무찌른 기사는 수 15:13,14에 상세히 나와 있다.
(수 15:13-14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 성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비였더라
14)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곧 그 세 아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삿 1: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본 구절에는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수 15:63에는 유다 자손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수 15:63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따라서 이 두 기록은 서로 상치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베냐민과 유다의 경계는 벤 힌놈 골짜기와 예루살렘 남쪽 지역에서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수 15:8 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가서 여부스 곧 예루살렘 남편 어깨에 이르며 또 힌놈의 골짜기 앞 서편에 있는 산 꼭대기로 올라가나니 이곳은 르바임 골짜기 북편 끝이며;
18:28 셀라와 엘렙과 여부스 곧 예루살렘과 기부앗과 기럇이니 십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이었더라).
그러므로 여부스 사람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지 못한 책임은 이 두 지파 모두에게 있었던 것이다.
(수 15:63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 여부스 사람 - 가나안 일곱 족속 중 한 족속으로서, 예루살렘 산악 지대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다.
(창 10:16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그래서 고대에는 예루살렘을 '여부스'라고도 불렀다.
(수 18:28 셀라와 엘렙과 여부스 곧 예루살렘과 기부앗과 기럇이니 십사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이었더라;
대상 11:4 다윗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여부스 토인이 거기 거하였더라).
한편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이같은 공격 실패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사사 시대 동안 이스라엘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다.
(19:10-12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아니하여 일어나 떠나서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11)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웠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사이다
12)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외인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러다가 다윗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완전히 정복된다.
(삼하 5:6-10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저희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9)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그러나 다윗의 정복 이후에도 부분적이나마 여부스 사람의 예루살렘 거주는 계속 허용된 듯하다.
(삼하 24: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 예루살렘이 완전히 정복당하고 여부스 족이 축출 당한 때는 다윗 시대이다.
따라서 여기서 가리키는 '오늘날'이란 B.C.1050-1000년경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연대는 본서의 기록 연대를 추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바, 본 사사기의 기록 연대 역시 이 시기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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