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복된 가나안 성읍
성 경: [삿 1:27-30]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29)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하였더라
30) 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가나안 사람이 그들 중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
[삿 1: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본 구절은 벧엘의 운명과는 대조적으로 므낫세의 영토내에 있는 많은 가나안 인들의 성읍들이 그대로 존속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들 성읍들은 '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스르엘과 에스드렐론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이 도시들 중 몇몇은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되었으나,
(수 12:21 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23 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나머지 성읍들에 대한 정복기사는 아무 데도 없다.
아마 그들은 철병거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의 공격을 쉽게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Goslinga).
그리고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성읍들까지도 곧 독립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본 구절의 끝 부분에 나오는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라는 말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저항이 막강하였음을 의미한다.
▶ 벧스안 - 요단 계곡과 이스라엘 골짜기의 교차 지점, 곧 요단 강 서쪽 약 10km 지점에 위치한 주요 요새이다.
라암세스 3세 때(B.C.1175-1144)까지 이곳에 애굽 수비대가 상주했었으며, 그 후 블레셋이 이곳을 점령했었다.
▶ 그 향리 - 즉 큰 성읍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형성되었던 촌락이나 위성 도시를 가리킨다.
▶ 다아낙 - 므깃도 남동쪽 8km 지점에 위치한 가나안의 주요 성읍이다.
역사상 이 성읍은 당시 에스드렐론 계곡에서 샤론 평야에 이르는 남서 통로를 지배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 돌 - 가이사랴 북방 약 13km 지점의 갈멜 산 남쪽, 팔레스틴 해안에 위치한 요새화된 성읍이다.
이곳에는 그 해안을 따라 자주빛 물감의 원료가 되는 조개가 많이 났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들이 정착해 살았었다.
한편 솔로몬 당시 돌과 그 인근지역은 솔로몬 왕국의 제 4행정 구역에 편입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이블르암 - 샤론 평야 동쪽, 이스르엘 골짜기 남쪽에 위치한 가나안의 주요 성읍이다.
오늘날에 '길벳 빌 암메'(Khirbet Billameh)와 동일시 되는데, 이는 므깃도 남동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 므깃도 - 하이퍼 남동쪽 약 30km 지점의 이스르엘 평원에 위치한 고대 도시이다.
이곳은 B.C. 12세기 중반까지 애굽의 지배 하에 있었다.
고고학자 스트라툼(Stratum)7세는 므깃도가 갑자기 멸망당했음을 밝혀냈는데, 그것은 5:19에서 암시하고 있는 드보라의 숭리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lbright)
(5:19 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열왕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삿 1: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본 구절에서 사사기 기자는 므낫세 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까지 포함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가나안 인들을 그 땅에서 다 쫓아내지 못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강성해져 충분히 가나안 인들을 쫓아낼 수 있을 즈음에는, 가나안인들을 쫓아내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부려먹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즉 강성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 보다, 가나안 인들의 사역을 통하여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성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 - 정확히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물른 이스라엘의 국력이 최고로 신장(伸長)된 때는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 시기(B.C.1005-931)이다.
그러나 사사 시대 동안에도 이스라엘은 꾸준히 국력을 길러 왔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이때는 이스라엘이 충분히 가나안 인들을 다 쫓아낼 수 있을 만큼 국력이 신장된 때 였을 것 만은 분명하다.
▶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 이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 인들을 사역시킨 경우는 이미 여호수아 당시에도 있었던 일이다.
즉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속여 화친 조약을 맺었던 기브온 거민들을 이스라엘의 노예로 삼았었던 것이다.
(수 9:22-27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일러 가로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거늘 어찌하여 우리는 너희에게서 심히 멀다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23)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가 되리라
24)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 모든 거민을 당신들의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을 인하여 우리 생명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25) 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26) 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27)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로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단을 위하여 나무 패며 물 긷는 자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또한 솔로몬은 자신의 건축 사업에 가나안 인들을 동원, 인부로 사용하기도 했었다.
(왕상 9:19-22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20) 무릇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남아있는 자
21)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군을 삼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22) 오직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저희는 군사와 그 신복과 방백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장관이 됨이었더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가나안땅에서 모든 원주민들을 멸하고 쫓아내는 것이었지,
(신 20:16-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신 20: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 대로 하라
(신 20: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
결코 그들을 남겨, 이용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여기에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잘못이 있었는 바, 이후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이방 우상 숭배 행위와 사악한 풍습에 점차 물들어 가고 말았던 것이다.
[삿 1:29]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하였더라
▶ 게셀 - '쉐펠라', 즉 가나안 평지의 돌출부에 위치한 전략 도시로서 예루살렘 서쪽 3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9절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한 가나안 사람과 싸웠고)
특히 에브라임의 영토 중 최 남서쪽 경계와 맞물려 있는 이곳은 지중해변에서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주요 길목이기도 하다.
한편 이 게셀은 애굽의 문서들에서도 여러번 언급되고 있는데, 애굽의 바로가 솔로몬에게 결혼 선물로 이 성읍을 줄 때까지
(왕상 9:15-17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여호와의 전과 자기 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16)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17)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이 성읍은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들어오지 않았었다.
[삿 1:30] 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가나안 사람이 그들 중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
스불론의 영토에 있는 두 성읍 기드론과 나할롤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 기드론 - 예루살렘과 감람 산 사이를 흐르는 시내인 '기드론'과는 엄연히 틀린 곳이다.
(삼하 1: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하이퍼(Haifa)의 남동쪽에서 1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엘 파르(Tell el-Far)인 듯하다.
▶ 나할롤 - 또는 '나할랄'으로도 불리우던 성읍이다.
(수 19:15 또 갓닷과 나할랄과 시므론과 이달라와 베들레헴이니 모두 십이 성읍이요 또 그 촌락이라;
21:35 딤나와 그 들과 나할랄과 그 들이니 네 성읍이요).
아크레 평원 남단, 하이파 동쪽 8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텔 엔 나흘(Tell en-Nahl)로 추측된다(Alb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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