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31일 월요일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그리스도의 예루살렘의 입성

 

(19:28-40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더라.

29) 그분께서 올리브 산이라 하는 산에서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자기 제자들 중의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들어가라. 거기로 들어가면 너희가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매여 있는 나귀 새끼를 보리니 그것을 풀어서 이리로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그것을 푸느냐? 하고 묻거든 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주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이라, 하라, 하시매

32) 보내어진 자들이 자기들의 길로 가서 그분께서 자기들에게 말씀하신 그대로인 것을 보니라.

33) 그들이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것의 임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하매

34)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그것을 필요로 하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옷을 나귀 새끼 위에 벗어 놓고 예수님을 그 위에 태우니

36) 그분께서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들의 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제 그분께서 올리브 산의 내리막까지 가까이 오시니 제자들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모든 능력 있는 일들로 인해 기뻐하며 큰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매

39) 무리 가운데서 바리새인들 중의 몇 사람이 그분께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꾸짖으소서, 하거늘

40)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즉시 소리를 지르리라, 하시니라.(한글 KJV)

 

 

여기에서 우리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께서 말을 타시고 승전한 장군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심을 보게 된다.

 

여기서는 다만 다음의 사실을 기억하기로 하자.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가셨다.

 

주님은 그곳에 가시면 당신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아주 잘 아시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심령의 매임을" 받아 나아가셨다.

더구나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었다.

 

(28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주님께서는 무리들보다 맨 앞장서서 가셨다.

마치 그 고난의 자리를 기다리고 계시기나 하셨던 것처럼,

가고 싶은 곳이나 가시듯,

경기장에 나가시듯, 권투장에 들어가시듯 앞으로 나아가셨다.

 

주님께서 그처럼 우리를 위하여

고난당하시고 죽기 위하여 앞으로 나아가셨는데,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능히 할 수 있는 일에서 물러서야 할까?

 

 

. 주님께서 죽으시기 조금 전에 예루살렘으로 공공연하게 들어가신 것은,

주님의 겸손하심으로나 주님이 당하고 계신 굴욕의 상태로 보나

조금도 모순된 일이 아니었다.

 

주님은 이렇게 하심으로써 당신을 보다 들어 나게 하셔서

받으시는 죽음의 치욕을 보다 크게 나타나게 하셨다.

 

 

.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창조물을 처리하실 자격을 가지셨고,

언제나 원하시는 대로 이용하실 수 있으시다.

 

아무도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

언제나 주님이 우선권을 가지셨고 그 만물을 쓰실 수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소유인 산에 있는 모든 짐승 또한

집에서 길들인 모든 가축을 위하여 봉사하시고

또 마땅히 그렇게 하셔야 할 때가 이르렀을 때에,

한 나귀와 망아지를

"임자와 주인의 구유"로부터 끌어오라고 사람을 보내셨다.

 

 

.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당신의 눈으로 살펴보시고 수중에 넣으시고 주관하신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귀와 망아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감화 시키셔서 그것들을 끌어가는 것을 찬성하게 하시되

주님께서 그것들을 쓰실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듣자 곧 허락하였다.

 

 

. 주님께서 필요하셔서 다른 사람의 나귀와 망아지를 끌어오는 주님의 제자들은,

이 때까지 없던 처음 당하는 일이라 탐탁하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섬김을 받으셔야 하고 존귀를 받으셔야 할 분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것들을 필요하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끌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 주님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은 빨리 해야 한다.

 

(32절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보냄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이 찾아야 할 것과 함께 하기 원할 짐승들의 주인을 찾았다.

그리스도의 사자들이 사실 주님께서 필요하다고 여기실 때에

그것을 가져오도록 보냄을 받았을 때에

그 필요한 것을 가져오는 일은 유쾌한 일이다.

 

 

. 주님께서 요긴하게 여기시는 것이 자기들에게는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서 가져오는 주님의 제자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서 무엇이든지 주님께서 섬김을 받으시고 존귀함을 받으셔야 될 때에는 즉시 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그들 자신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바치려는 생각도 없는

다른 사람들의 비용을 들여서 주님을 섬기려고 하는데,

이때의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위하여 나귀새끼를 끌어올 뿐 아니라

망아지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깔고 그 겉옷으로 말안장까지 하기를 원했다.

 

 

. 그리스도의 승리는 주님의 제자들이 찬양할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님의 제자 전체,

12제자 뿐 아니라 아주 많은 제자가 다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37절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그리고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폈다.

이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기쁨의 표시로써 장막절 때에도 이렇게 기뻐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다음과 같다.

 

1. 무엇이 그들을 기쁘게 하여 찬양을 돌리게 한 조건이었는가.

 

이들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

특히 요한복음 1217, 18절에 기록된

나사로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일을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었다.

 

(요한 12:17-18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새로운 기적과 자비를 받고 감명을 가졌던 사람은 그 일을 늘 기억하게 마련이다.

 

2. 그들은 어떻게 자기들의 기쁨과 찬양을 표현하였는가?

 

(38절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였다.

 

그리스도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시다.

하나님의 권위로 옷 입으시고

하늘로부터 평화의 율법과 큰 기쁨을 주려고 오신 분이시다.

 

주님을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자.

하나님께서 주님이 형통하게 하시기를 빌자.

주님은 영원히 찬송 받으시리니 그를 칭찬할 것이다.

 

"하늘에는 평화로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하시는 일에 평화와 성공을 보내시고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늘과 땅에서 다 찬양이 있을 것인데,

천사들은 말하기를 땅에는 평화로다 하면서

땅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화를 누림으로써 기뻐하고,

성자들은 하늘에는 평화로다 말하면서

하늘의 천사들이 그리스도를 맞게 됨으로써 즐거워한다.

 

이와 같이 땅에 있는 우리들은

하늘의 거룩한 천사들과 교통하여 땅에서의 평화를

천사들이 즐거워하게 되고,

땅에 있는 우리들은 하늘의 평화를 누리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25:2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땅에서나 하늘에서 다 그리스도께 모든 일에 화해를 이루어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다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 그리스도의 승리와 주님의 제자들의 즐거운 찬양은 주님과 주님의 나라 그 교만한 자들의 경멸적인 태도를 무시하셨으므로 주님께서는 오히려 겸손한 무리들의 찬양을 그대로 받아들이셨다.

 

 

.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찬양하든 안하든 주님께서는 찬양 받으실 것이며 또한 찬양 받으셔야 할 분이다.

 

(40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만일 이 사람들이 자기들의 평안을 중히 여겨서

메시야의 왕국을 찬양하지 않고 잠잠하면,

주님께서 찬양을 받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돌들이 곧 소리 지를 것에 대한 거만한 바리새인들의 두통거리가 되었다.

 

즐거워하는 무리 속에는

그들과 공동행동을 취하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먼 약간의 바리새인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느낌으로,

 

그리스도는 겸손하기로 유명한 모범적인 분이었으므로

그와 같은 환호 갈채를 용납하지 않으시리라고

바리새인들은 생각했으므로 주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시리라고 기대했다.

 

(39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그러나 그 환호 갈채는

그리스도의 영예이며,

주님은 다 이 일을 실제로 문자 그대로 이루셨다.

 

곧 인간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찬양하기보다도

욕을 돌리며,

주님의 제자들까지도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잠잠했을 때에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다".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를 찬양함을 못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 자손들의 입으로 완전한 찬양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메튜 헨리의 주석을 참조 함.

Beethoven’s Ninth: Symphony for the World | Music Documentary

[한글,이탈리아자막]Tosti-Ideale(토스티)(이상)

2022년 1월 30일 일요일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귀족과 그의 종들 2

 

(19:11-27)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c. 두 종은 다 충성과 근면으로 일할 것을 명령받았다.

 

(17절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주님은 다른 종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였다.

 

(19절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선을 행한 사람은 이와 같은 칭찬을 받는다는 것이다.

 

잘하자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잘하였다"하고 말씀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잘하였다"고 말씀하시면 달리 무엇이라도 그 이상 가는 것이 없다.

 

*참조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d. 종들은 그들이 한 선행에 비례하여 우선권을 받았다.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므나을 가지고 장사하러 감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과 같으니

이렇게 적은 밑천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하고 말씀하지 않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적은 돈을 맡았지만 이()를 남기기 위하여 힘을 썼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일어나기를 순조롭게 하는 사람들은

낮게 시작하기를 기꺼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다"(딤전 3:13).

 

여기에서 사도들은 두 가지 언약을 받았다.

 

(a) 사도들이 많은 교회를 세우느라고 고통을 받을 때에는

그들에게 통할하는 만족함과 존귀함을 받을 것이며 교회를 다스릴 것이며,

교회들에게 큰 존경을 받을 것이고

또 선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중에 큰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은 배나 존경을 받으리라".

 

(b)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자기들의 세대를 위하여 봉사할 때는

비록 이 세상에서 경멸함을 받고 짓밟히며 또 혹시는 사도들이 당했던 것처럼

치욕과 핍박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저 세상에 가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같이 나라를 다스릴 것이며

주님과 함께 왕좌에 앉아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게 될 것이다.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하늘나라의 즐거움은 선한 전도자나 그리스도인에 대해서는 훨씬 큰 것으로써

한 가난한 장사가 많은 수고를 하여 10 므나를 얻게 되어

10 도성(都城)의 장관이 되는 것보다도 더 큰 즐거움이다.

 

5 므나의 이를 본 사람도 다섯 성을 통치하게 되었다.

이것은 하늘나라에서는 영광의 등급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릇마다 다 같이 꽉 찼다고 해서 크기도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영광의 등급이 이용도의 정도에 따라서 다르다.

 

둘째, 한 므나를 받은 좋지 못한 결산 보고를 한 사람은

그의 나태함과 불성실로 인하여 저주의 판결을 받았다.

 

(20절 이하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a. 그는 자기에게 위임된 한 므나를 가지고 장사하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사실입니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이를 남기지도 않고 손해를 보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이 말은 은사를 받고도 그것을 가지고

선을 행하려고 계획하지 않는 부주의한 사람을 표현한다.

이 태도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사업이

닫쳐 버리느냐 헤엄쳐 나가느냐, 뒤로 물러가느냐 앞으로 나아가느냐가 달려 있다.

 

이런 조심성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왕국 사업에 관심도 없어서 고통도 받지 않고,

손해를 볼 것도 없으며 위험성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선행은 못하더라도

해로운 일은 안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므나를 수건에 싸 두는 종들이다.

 

b. 나쁜 종은 나쁜 일도 안하고 선한 일도 않았다는 것을 변명 삼아서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정당화했다.

 

(21절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헬라어로 "아우스테레"란 말은 날카로운 사람이란 뜻이다.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나이다".

 

그는 자기의 주인이 므나를 주면서 이를 남기기를 요구하고 기대할 때에

자기에게 어려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심지 않는 것을 거두나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은

심은 데서 거두고 주인이 기대한 대로 그가 심은 것에 비례하여 거두는 것이다.

그는 주인의 준엄함을 두려워하거나 그의 기대를 책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속이는 것뿐이었고 달리 변명할 수 없는

그의 게으름을 하찮게 근거없이 변명하려는 것뿐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검사를 받게 되었을 때에 게으른,

자칭 신앙인의 변명은 자기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기보다는

수치를 더 드러내게 될 뿐이라는 사실이다.

 

c. 그의 변명은 그에게로 되돌아갔다.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악한 종아".

 

(22절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는 범죄로 인하여 정죄 받을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는 변명하므로 죄를 더욱 악화시켰다.

(장사만 했다면 틀림없이 이익은 남았을 것이다)

 

"만일 네가 장사를 하여 이익을 보는 것은 어렵게 여기었다면 나의 이를 중하게 생각하여 나의 돈을 은행에 예금을 하였더라면 나의 돈 뿐 아니라 이자가 있을 것이니 비록 적긴 하더라도 얼마간의 이익을 있을 것이라"라고 말했다.

 

그가 원금을 잃고 주인에게 변명을 하는 것이 두려워 장사를 감히 할 수 없었다는

그의 말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변명은

이익이 확실히 보장되는 장사를 하지 않은데 대한 변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게으른 신앙 고백자의 꾸밈이

그의 게으름을 변명하기 위하여 어떠한 말이나 모양으로 나타나더라도

그 진정한 이유는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무관심하고 그에 대하여 냉담한 것이다.

 

이들은 종교에 대하여 기초가 잡혀 있느냐 기초가 없느냐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안이하게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

 

d. 게으른 종의 므나는 빼앗겼다.

 

(24절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은사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은사를 잃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은사를 잘못 다루는 사람은 더 이상 신임 받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자기들의 주님께서 맡겨 주신 것으로 주님을 섬기지 않은 사람들이

그 받은 것을 가지고 자신을 섬기는데 왜 고통을 당해야 될까?

 

"그에게서 므나를 빼앗으라".

 

이 빼앗은 므나는 10 므나를 가졌던 사람에게 주었다.

이미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왜 또 주느냐고 옆에 있던 사람이 반대했을 때에 (주여 저에게 이미 10므나가 있나이다. 25) 주님은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26).

이것은 정당한 법이다.

 

(a) 가장 부지런한 사람과 선행을 하는데 헌신한 사람은

보다 선행을 많이 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보다 높은 범위가 큰 일을 할 지위에 놓여져야 한다.

이익을 낸 사람, 더 이익을 낼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진다.

 

(b) 은사를 받아서 갖고 있는데도 마치 그 은사를 갖지 않고 있는 것처럼

아무 목적도 없어서 그 은사를 가지고 선행을 하지 않은 사람은

은사를 빼앗을 수밖에 없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은사를 늘이려고 힘쓰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은사를 더 주시고,

그 은사를 경멸히 여기는 사람들과 그 은사를 못쓰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은사를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요긴한 경계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셔서

그들이 지상에서의 명예를 탐냄으로써 자기들이 할 일을 경시하다가

하늘나라에서의 행복을 받지 못하게 되지 않도록 하셨다.

 

(c) 주님의 제자들이 또 한 가지 기대했던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유대인의 국가는 즉시 그 나라와 하나가 되고, 그 나라에 순복되어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사상과 주님의 복음을 싫어하는 일이 다 없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떠나신 뒤에는 완고함과 패역함으로 유대인의 대부분이

빠져 들어가 결국은 멸망하고 말리라고 하셨다.

 

이 사실로 다음의 기사로 알 수 있다.

 

(d)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었다"(14).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어려운 처지에 계실 때에 주님을 반대할 뿐 아니라,

당신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시려고 영광의 자리로 들어가신 뒤에도

유대인이 계속하여 주님을 적대시하고 주님의 주권을 반대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다.

 

[a]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뒤에

유대인들의 심한 배신행위와 복음 왕국의 건설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그들의 목을 주님의 멍에에 복중하지 않고,

주님의 주권에도 순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2:1-3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b] 이 사실은 모든 불()신앙자들이 하는 말이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구원할 것을 흡족히 여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자기들을 다스리시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들의 유일한 왕이시며

그들의 구주이시고 그들이 마땅히 순종해야 될 분이시다.

 

(3) 주인은 돌아와서 종들에서 선언을 내렸다.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27절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주인의 신실한 종들이 칭찬 받고 상급을 받을 때에,

주인의 원수들에게는 앙갚음을 하고 특히 유대 국민에게는 멸망이 올 것을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복음의 나라를 세우시고

복음 사업의 명성이 드날릴 때에는

주님께서 오셔서 그 유대인들과 회계하시고,

그들이 특히 주님의 왕권을 부정하고 반항한데 대하여 기억하실 것이다.

 

이때에 그들은

 

"우리에게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으며 그리스도를 왕으로 삼기를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호소했으며, 가이사에게로 갈 것이다.

가이사는 그들의 멸망을 줄 것뿐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대하여

조화될 수 없는 원수들에게 복수가 취해진 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고, 그들을 끌어다가 주님 앞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유대인들의 싸움에서처럼,

많은 죽음을 당하는 일은 어느 전쟁에서도 일찍이 없었다.

 

주님의 복음과 나라에 대하여 적대시하고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이방 세계에서 그리스도교의 승리적 번영을 볼 수 있도록 남아 있는 나라는

이 때에는 헌 쓰레기처럼 버림을 받게 된다.

 

(살전 2:15-16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그리고 그들의 멸망은 그리스도의 영예와 교회의 평화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이 사건은 완악함을 고집하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어

틀림없이 이로 인하여 멸망될 것이다.

 

알아 둘 일,

 

[1] 그리스도의 원수들은 틀림없이 전부에게 멸망이 임할 것이며,

앙갚음하는 날에는 그들은 모두 끌어다가 주님 앞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들을 주님 앞으로 끌어다가 성인들과 천사들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게 할 것이다.

 

* 참조 (10:22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들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24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그들은 주님 앞으로 끌어다가 그들이 미워하고 핍박하던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의 영광과 즐거워함을 보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쓰잘 데 없이 변명했던 것이 뒤집히고

자기들이 한 짓에 따라서 선고를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아각이 사무엘 앞에서 당한 것처럼 그들을 끌어다가 주님 앞에서 죽이게 된다.

그들이 경멸히 여겼던 구주께서는

옆에 서서 그들이 죽는 것을 보시면서도 본체만체하실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지 못할 사람들은 다 주님의 원수로 여겨지고 다루어질 것이다.

 

우리들은 생각하기를

우리는 하나도 그리스도의 원수이거나 그리스도교의 핍박자도 아니고,

적어도 냉소자도 아니라고 하기 쉽다.

 

그러나 구원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길을 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은사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진노에 의하여 불가불 멸망당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이다.

 

 

*메튜헨리의 주석을 참조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