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일 일요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큰 죄와 작은 신앙

 

누가복음 171-10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개정개역)

 

 

 

'실족케 하는 것'(유혹을 오게끔 하는 사람-일개역),

신앙을 손상당하는 일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의념을 품고,

세속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에 이르는 일이다.

세상에 무서운 일로서 이 같은 것은 없다.

 

'반드시 오리라',

악마가 세력을 가지는 이 세상에 있어서,

신앙의 타락은 면할 수 없는 일이다.

오인은 무슨 까닭에 그러한지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그것이 슬픈 사실임을 미리 말씀해주셨다.

 

'작은 자'(미미한 자)

그리스도의 제자를 가리켜 말함이다.

진정한 그리스도 신자는 실로 '작은 자'(미미한 자)이다.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이신 크신 하나님께 대하여 작은 자이다.

그들은 또 세상에 의지할 자 없는 까닭에 작은 약한 자이다.

그들은 특히 무저항주의를 취하는 까닭에 특히 약하고 작은 자이다.

 

그러한 자에게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빼앗아 가는 것은,

이는 죄악의 지극이다.

 

'연자맷돌'은 당나귀로 끌게 하는 것으로서

통상(ordinary) 우리나라에 있어서 사용되는 것보다도 훨씬 크다.

이것을 목에 달면, 누구도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바다에 던지는 것',

바다에 던져져 있는 것으로 개역 할 것이다.

그러한 자는 지상에 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바다 속에 있는 일,

훨씬 그 사람 위해 좋다는 뜻이다.

 

'스스로 조심하라',

실족 당할 위험 있는 제자에게 향하여 말한다.

실족 당하지 않도록 삼가라는 뜻일 것이다.

 

만약 형제가 네게 죄를 범하면 먼저 이것을 조심(경계)하라.

그리고 그가 만약 뉘우치면 이것을 용서할 것이다.

 

만약 하루에 일곱 번 죄를 네게 범하고,

하루에 일곱 번 네게 향하여 죄를 뉘우친다고 하면 용서할 것이라고.

 

그리스도 신자라 해도 이유 없이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죄인으로서 뉘우칠 것인가,

그는 몇 회라도 이것을 용서할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의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죄인에 대한 복수, 무자비한 정신이다.

 

이 정신 있을 것인가?

그는 매우 유혹(실족)당하기 쉽다.

그는 언제나 믿음과 사랑과의 호심경(방패)으로서

그의 마음을 지켜야 할 것이다.

 

*참조 (데살로니가 전서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자기의 신앙을 굳게 가지는데 가장 좋은 법은 언제나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다.

 

'사도, 주께 아뢰기를,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해 주소서'라고.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만약 겨자씨만큼의 믿음이 있다면.

 

사도는 신앙이 더(증가)해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주는 신앙의 증감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고서,

신앙의 유무에 대하여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주는 말씀하셨다.

 

'너희는 신앙의 증진을 원하는가?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먼저 신앙을 얻기를 구하라.

그 한 알(일립)만큼이라도 가졌는가'.

 

신앙은 대 세력이다.

그 가장 작은 것이라 해도, 능히 큰일(대사)을 할 수 있다.

우리들이 큰일을 할 수 없음은 신앙이 적어서가 아니라,

신앙이랄 만한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뽕나무',

시카모르라고 하는 팔레스틴(1299역주)산의

상수(mulberry tree)의 일종으로서 대목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장목 또는 느티나무라고 칭하는 유이다.

그러한 대목에 명하여,

뽑혀 바다에 심기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마태복음 1720절에는

 

'이 산에게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해도 반드시 옮겨질 것이다.'라고 있다.

 

산을 옮긴다거나, 뽕나무를 뽑는다는 것이나,

한가지로 난사를 행함의 뜻이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 재세 당시에,

난사를 하는 것을

'산을 움직이는 자'라 했다고 한다.

예수는 속담을 이용하여 여기서 이 가르치심을 내렸을 것이다.

 

신앙은 실로 산을 움직임의 능력이다.

큰 나무를 뽑음의 세력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전 국민이

전부 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것을,

한 신도가 능히 그 독력으로서 하는 일이 있다.

 

신앙은 능히 대목 같은 사회의 폐해도 그 근저에서 뽑아버릴 수가 있다.

세상의 정치가는 이것을 보고 놀라고

세상의 사회개량가들은 이것을 듣고서 의아해 한다.

 

하지만 이것 조금도 이상히 여길 것 못된다.

그리스도 신자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이 대사를 행하는 것이다.

 

신앙은 지상에 있어서의 신력의 응용이다.

 

 

*내촌감삼의 (19054'성서지연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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